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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인물 대본 보지 않고, 계산없는 리액션했다”

<다른나라에서>로 칸 레드카펫 밟은 유준상 인터뷰

“날씨가 참 좋지 않나.” 다들 비오는 칸을 불평하는데 칼튼호텔에서 만난 유준상의 얼굴엔 햇살이 한가득이다. 그러고 보니 칸의 흐린 날씨가 <다른나라에서>의 배경인 모항의 잔뜩 찌푸린 날씨와 똑 닮아 있다. “우리 영화 상영 반응이 그래서 더 좋아진 것 같다”는 게 유준상의 평이다. 직접 <씨네21>과 단독 인터뷰를 잡았다며, 로비까지 마중을 나온 유준상에게는 영화에서 이자벨 위페르를 향해 돌진하는 저돌적이고 무데뽀인 해양구조대원의 모습은 오간데없다. 마침 스타일리스트가 예쁘게 챙겨준 슈트까지 더해져 그의 모습은 <넝쿨째 굴러온 당신>의 젠틀한 귀남을 더 닮아 있다. 연일 이어지는 파티와 약속으로 식사도 제대로 한다는 그. “파티를 쑥스러워하는 건 홍상수 감독과 다행히 같은 취향이라, 인사만 하고 살짝 빠져나온다”는 유준상은 확실히 조용한 인터뷰 자리를 훨씬 편해하는 듯 그간의 다양한 에피소드를 스스럼없이 꺼내놓는다.

-드라마 <넝쿨째 굴러온 당신>이 한창 촬영 중이었는데. 칸 일정이 힘들었겠다. =감독님이 정말 많이 배려해주셨다. 오기 전에 새벽까지 많이 찍고 왔다.

-영화 속 텐트에서 노래 부르는 장면이 끝나고 극장에서 박수가 나왔다. 그 장면이 끝나고 나선 유준상만 나오더라도 관객이 이미 웃을 준비가 돼 있더라. =그 장면이 참 재밌다. 텐트장면은 부안으로 촬영간다기에 감독님한테 물어봤다. “감독님, 제가 집에 텐트가 하나 있는데 가져갈까요?” “기타도 가져가겠습니다.” 그걸 챙기면서 랜턴도 챙겼다. 영화에서 랜턴이 아주 중요하게 사용될지 그때는 꿈에도 몰랐다. 영화 속 장비가 다 내 거였다. (웃음)

-어느 정도까지 계획된 촬영이었나. 이자벨 위페르와의 작업이라는 건 당연히 알았을 테고. =정말 그것까지만 알고 간 거다. 감독님이 내가 맡은 인물 중 처음으로 해양구조대원이라는 색다른 캐릭터가 나온다며 좋아하셨다.

-참여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앞서, 같은 모항해변에서 촬영한 중편 <리스트>에 참여하기도 했다. =이 선생님(이자벨 위페르를 지칭)과는 그분이 서울에서 사진전할 때 감독님과 함께 가서 만나게 됐다. 감독님이 이상하게 그날 전화를 하셨다. 심심한데 같이 안 갈래 하면서. 그때 난 원래 다른 작품이 있었는데 미뤄져서, “감독님 이번 것도 같이 해야겠는데요”라고 했다. 감독님이 나보다 소심해서 다른 배우랑 하기로 했다가 그 말 듣고 하자시더라. (웃음)

-콩글리시를 구사하고 저돌적인 해양구조원의 캐릭터를 연기한다. =영어 구사를 층위별로 나눌 때 내 캐릭터가 최하위 영어를 구사하는 인물이다. 내가 영어를 그렇게 한다. 일부러 잘하려 하지 않는다. 영어는 내 세대의 몫이 아니니까. (웃음) 어느 정도 알아듣고 소심해지는 거다. 외국 나가서도 말 대신 보디랭귀지로 하고. 그러다 이런 작품을 만나니 정말 편하게 할 수 있는 거다. 일단 이 선생님이랑 신이 붙을 때도 부담이 크지 않았다.

-이자벨 위페르와의 작업은 어땠나. 워낙 강한 에너지를 연기로 표출하는 배우라서 부담도 있었을 텐데. =그 섬세함은 말로 설명이 안된다. 근데 배우라서, 서로 똑같다고 느끼는 지점이 있는 것 같다. 상대배우에 대한 배려도 많다. 내 액션에 따라 움직이더라. 대본에 있어서가 아니라 서로 상대의 액션에 따라서 반응하면서 연기했다. 그 순간은 서로 의지할 데가 상대배우밖에 없게 된다. 감독님이 둘이 서로 잘 맞는다고 칭찬해주더라.

-늘 물속에서 이자벨 위페르를 향해 등장하는데, 마치 바다동물 같다. 상영 뒤 고래, 바다표범 같은 수식이 나온 걸 아나. (웃음) =그러게. 상어 같다고 하는 분도 있더라. 근데 사실 내가 몸이 그렇게까지 좋진 않다. 근데 정지훈과 그전에 <비상>을 찍으면서 몸을 만든 게 남아 있는 상태에서 <다른나라에서>를 찍으면서 자연스럽게 근육이 좀 강조됐다. (웃음)

-홍상수 감독의 페르소나는 배우 유준상 이전과 이후에서 명확히 달라진 지점이 보인다. 쪼잔하고 비겁한 면모가 대폭 줄고 담백하고 직설적이다. <다른나라에서>의 해양구조대원도 그런 성향을 십분 보여준다. =영화제를 오면서 감독님이랑 항상 같은 방을 쓴다. 비용이 없으니. (웃음) 사실 한방을 쓴다는 게 쉽지 않은 일이다. 불편하면 못하는 일인데 다행히 코도 안 골고 방해도 안된다. <다른나라에서> 촬영 때도 함께 썼다. 아침엔 감독님의 담배 연기와 함께 깼다. 계속 같이 있다 보니 나도 감독님을 보게 되고, 감독님도 나를 보면서 서로 반영되고 영향을 받게 된다. 분명 그런 지점들이 있는 것 같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이후 홍상수 감독의 영화에 네편째 출연 중이다. =할 때는 아무 생각 없이 한다. 어떻게든 상황을 소화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열번, 스무번 한다. 내가 뭐하고 있나 생각도 하지 않고 그냥 이 인물이 돼 있는 거다. 찍고나서 감독님이 됐다고 하면 그걸로 끝이다. 편집본도 안 본다. 이번 작품은 다른 인물 대본도 안 봤다. 알게 되면 더 계산하고 리액팅을 염두에 두게 되는 것 같다. 오히려 이렇게 모르고 하는 게 자연스럽다. 그러니 극장에서 완성본을 보면 마냥 신기하다.

-여러 번 작업하면서 홍상수 감독의 방식을 좀 알게 되고 익숙해지는 지점들이 생겼을 텐데. =특별히 그렇진 않다. 재밌고 힘들다. 하는 동안 너무 힘들다. 정신은 너무 깨어 있고 행복한데 육체는 바닥을 친다. 두개가 같이 공존하니, ‘지금 이 상황이 뭐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계속 모르면서 하고 싶다. 이번 작품 보면서도 너무 행복했다. 영화가 끝났는데 내 주위에 바람이 불더라. 너무 아름다운 바람이 나를 감싸더라. VIP가 참여하는 갈라상영 때 무대인사하면서 “이 바람을 같이 느끼셨으면 좋겠다”고 했다.

-칸 경쟁작 진출뿐만 아니라 요즘은 드라마 <넝쿨째 굴러온 당신>의 댄디하고 능력있고 착하기까지 한 의사 ‘귀남’으로 인기를 얻고 있다. 스타성으로 치자면 지금이 최고의 지점이기도 하다. =요즘 그런 말을 한다. 40살 넘어서 이게 웬 복이냐. 너무 행복하다. 그런데 다행스러운 건 공연을 하면서 평정을 배웠다는 거다. 그간 힘들 때도 많았다. 관객이 기립박수를 쳐주면 온 세상을 다 준 것 같다. 그런데 기립박수 없이 갈 수도 있다. 오늘 공연 잘해도 내일은 외면할 수 있는 거다. 배우생활을 하면서 쭉 일기를 쓰며 오늘을 결산해왔다. 그림도 그리고, 글도 쓰고 그렇게 배우생활하는 동안 매년 일기를 썼는데 그걸 모아서 이번에 <행복의 발견>이란 책을 내기도 했다. 이런 습관이 나를 다잡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어느덧 배우생활만 20년이 다 돼간다. =그간 항상 마음가짐은 같았다. 그런데 홍상수 감독님 영화를 하면서 영화적인 것 말고 이외의 것에서 얻어가는 게 정말 많다. 감독님과 대화하면서 산다는 것, 연기를 한다는 것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감독님이 그런 걸 몸소 보여주신다. 배우라는 직업이 갑자기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면 나도 모르게 훅, 흔들릴 수 있다. 근데 40대가 되고 감독님과 만나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배우 이전의 사람으로서 삶을 고민하게 된다. 점점 좋은 쪽으로 긍정의 마인드를 더 발전시키게 되고 창작욕구가 열려가는 것 같다. 예전엔 깊이있는 얼굴이고 싶은데 일부러 표정을 만들 수도 없으니 어서 빨리 나이가 들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기도 했는데. 요즘은 나이도 자연히 들고, 한편으론 애 둘의 아빠가 아니라 신혼의 남자같이 젊게도 봐주시니 기분이 좋다.

-블록버스터부터 저예산영화, 드라마, 뮤지컬 등을 오가며 다양한 작업을 종횡무진한다. =사실 그 지점에서 가장 중요했던 건 강우석 감독님과 <이끼>를 작업하면서였다. 홍상수 감독님과 강우석 감독님은 극과 극의 작업이다. 둘 다 너무나 소중한 작업인데 알고 보니 이 두분이 비슷하다. 작업에 대한 열정, 배우에 대한 사랑, 이런 것들 말이다. 사실 내 연기만을 통해서 어떤 결과가 나오는 건 힘들다. 작업을 할 때 감독님들이 내게 주는 에너지가 가슴 벅찰 정도로 많았다. 이 상황에 감사하고 최선을 다하고, 거창하지 않게 하던 대로 하자는 게 내 다짐이다.

-앞으로의 계획은. =<비상>과 <터치>의 개봉이 기다리고 있다. <비상>이 100억원대 영화라면 <터치>는 민병훈 감독이 만든 적은 예산의 영화다. 독특하고 기대된다. 강우석 감독님과 <전설의 주먹> 촬영을 할 거고, 9월엔 <잭 더 리퍼> 도쿄 공연도 잡혔다. 저예산영화도 계속 하고 싶고 홍상수, 강우석 감독님과도 계속 작업하고 싶고 뮤지컬도 하고 싶고 좋은 드라마도 하고 싶고, 이게 반복되면 얼마나 좋겠나. 오랫동안 이런 나날이 유지되면 좋겠다. (웃음) 그렇게는 안될 거니까 중요한 건 중심이 흐트러지지 않는 거다. 기자님이 봐도 지난해나 지지난해나 내가 바뀐 게 없지 않나. 만약 바뀌면 나한테 말해 달라. 그래야 내가 정신을 차리지 않나. 홍 감독님에게도 부탁했다. 감독님이, 내가 널 사랑하니까 그런 일이 생기면 꼭 이야기해준다고 하더라.

-홍상수 감독과의 작업은 또 계획 중인가. =항상 하고 싶다. 이미 벌써 다음 작품은 찍었다. <하하하> 때 인물로 나와서 출연했다. 두세 신 정도 될 거다. 그나저나 우리 영화 수상 가능성 있는 것 같나.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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