록페스티벌이라는 건 종종 상상과는 다르게 마련이다. 뽀송뽀송한 잔디밭에서 좋아하는 밴드의 음악에 맞춰 몸을 흔들며 노는 게 전부는 아니다. 화학약품으로 분변을 처리하는 간이 화장실은 푹푹 찌는 태양 아래서 오묘한 냄새를 발산한다. 비라도 올라치면 스테이지와 스테이지를 이어주는 길은 곤죽이 되기 마련이다. 숙소는 부족하고, 겨우 숙소를 구해도 가격은 평소의 두세배가 넘는 바가지고, 그렇게 바가지를 쓰고 숙소를 구해도 예닐곱명의 냄새나는 친구의 친구들과 방을 함께 써야 한다. 그럴 때면 근방의 근사한 콘도를 빌려서 자가용으로 왔다갔다하는 사람들이 어찌나 부러운지. 말인즉슨, 록페스티벌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육체적인 고행 또한 준비를 해야 한다는 소리다. 물론이다. 당신이 음악을 사랑한다면 그 정도 고행은 웃어넘길 수 있다. 돈도 없고 텐트도 없고 자가용도 없고, 무엇보다도 태양 아래 고행을 견뎌낼 재간이 없다면? 당신을 위한 최적의 록페스티벌이 있다. KT&G상상마당시네마음악영화제다.
올해로 5회를 맞이한 KT&G상상마당시네마음악영화제는 6월1일부터 10일까지 홍대 KT&G상상마당에서 열린다. 미개봉 신작 음악영화들, 라디오헤드 특별전, 홍보대사와 객원 프로그래머들이 선정한 음악영화들, 음악단편 특별전, 한국 뮤지컬영화 특별전 등 모두 다섯개 섹션 스물아홉편의 영화가 준비됐다. 라디오헤드와 대한민국 밴드들의 만남인 <원 썸머 나이트 콘서트>와 음악과 영화에 관련된 모든 물건을 사고 팔 수 있는 벼룩시장 ‘원 썸머 나이트 마켓’ 등 꽤 구미가 당기는 이벤트도 함께 열린다. 자세한 일정은 KT&G상상마당 홈페이지(sangsangmadang.com/cinema)에서 확인 가능하고, 티켓은 KT&G상상마당 홈페이지, 예스24, 맥스무비, 인터파크에서 구매할 수 있다. 모든 섹션과 행사에 다 참여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냐마는 나도 알고 당신도 알다시피 그런 건 불가능하다. 그래서 다섯편의 추천 신작을 관객 성향별로 뽑았다.
왜 한국에는 쓸 만한 일렉트로니카 페스티벌이 없냐고?
<캔 유 필 잇>Can U Feel It: The UMF Experience 미국 / 2011년 / 60분 / 찰리 프래드릭스
일렉트로니카 뮤지션들만을 초청하는 페스티벌은 여전히 한국에서 보기 드물다. 매년 열리는 글로벌 개더링 코리아가 있긴 하지만 겨우 하루 열리는 행사로는 갈증을 해소할 길 없다고 한탄하는 일렉트로니카 팬이라면? <캔 유 필 잇>이 제격이다. <캣 유 필 잇>은 미국 마이애미에서 지난 14년간 이어진 UMF(Ultra Music Festival)의 안과 밖을 담아낸 다큐멘터리다. UMF는 일렉트로니카계의 글래스톤베리쯤 되는 행사로, 3일 내내 지금 전세계에서 가장 뜨거운 일렉트로니카 뮤지션들이 모조리 무대에 선다. <캔 유 필 잇>에도 데이비드 게타, 칼 콕스, 아프로잭, 보이스 노이스 등 진정으로 ‘울트라’한 디제이들이 모조리 튀어나와 격정적으로 무대를 흔들어댄다. 60분이라는 짧은 상영시간이 조금 아쉬워 보일 수도 있다만, 딱 적당한 길이다. 60분이 넘어간다면 극장 매너 따위 잊어버리고 발로 앞좌석을 걷어차고 팝콘을 뒷자석으로 뿌려가며 몸을 흔들고 싶어질 수도 있다.
진짜 록페스티벌을 대리 체험하고 싶다면?
<락 앤 러브>You Instead 영국 / 2011년 / 80분 / 데이비드 매킨지
<할람 포>와 <퍼펙트 센스>의 데이비드 매킨지는 멜랑콜리한 분위기 속에서 피어오르는 사랑의 흔적을 잡아채는 데 능하고, 그걸 위해 음악을 선별하는 귀도 탁월한 감독이다. <락 앤 러브>에서 데이비드 매킨지는 아예 스코틀랜드의 록페스티벌인 T in the Park로 카메라를 들고 뛰어들었다. 이야기는 간단하다. 각각 다른 밴드의 일원으로 페스티벌에 참여하게 된 아담(루크 트레더웨이)과 모렐로(나탈리아 테나)가 싸움에 휘말렸다가 서로의 손목에 수갑을 채우게 된다. 티격대던 두 사람은 결국 수갑을 찬 채로 공연을 하고, 백 스테이지에서 놀고, 그러다가 사랑에 빠진다. 2010년에 개최된 페스티벌을 무대로 재빨리 찍어낸 영화인 만큼 팔로마 페이스나 뉴턴 포크너 같은 영국 뮤지션들의 무대를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가장 신나는 건 아담과 모렐로가 무대에서 부르는 신스팝 무대인데, 이건 실제로 음악 경력이 있는 주연배우 두명이 직접 작곡한 노래란다.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그룹의 노래라니. O.S.T 구매 충동이 강렬하다.
돈도 못 벌면서 힙합하는 것들 다 철부지 아니냐고?
<투 올드 힙합 키드> 한국 / 2011년 / 97분 / 정대건
맞다. 돈도 못 벌면서 힙합하는 것들은 다 철부지다. 그런데 영원히 철부지로 살아가는 게 그렇게 나쁜 일인가? <투 올드 힙합 키드>의 힙합 키드에는 어느 정도는 성공을 이룩한 키드, 여전히 성공을 위해 힙합을 하는 키드, 힙합을 버리고 공무원과 학원강사를 택한 키드, 그리고 정대건 감독처럼 힙합을 그만뒀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힙합의 정신을 간직하고 있는 키드가 나온다. 정대건 감독은 10대 시절을 함께했던 키드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카메라에 담고, 그들을 모두 모아 공연을 열기로 한다. 속 깊은 다큐멘터리다. 힙합 키드로 청춘을 보낸 감독은 “내 이루지 못한 꿈과 다시 마주하기 위해, 새로운 꿈을 위해, 마이크 대신 카메라를 들었다. 이것이 나의 힙합이다!”라고 말하며 근사한 포장지로 과거의 추억을 에워싸는 법 없이 홍대 언더그라운드 힙합 뮤지션들의 진짜 이야기를 들려준다. 힙합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이 다큐멘터리를 피해갈 이유는 없다. 이건 힙합영화인 동시에 지금 동세대 20대 청춘에 바치는 찬가이기도 하다.
언니네 이발관의 기타리스트가 연기를 한다니 믿을 수 없다고?
<설마 그럴리가 없어> 한국 / 2012년 / 95분 / 조성규
영화사 스폰지의 조성규 대표는 맛과 멋을 좇는 남자로 유명하다. 그의 첫 연출작 <맛있는 인생>이 맛을 좇는 이야기였다면 두 번째 장편 <설마 그럴리가 없어>는 멋을 좇는 이야기다. 잠깐. 그게 아니다. 사실 이 영화는 연애를 좇는 이야기다(가만 생각해보니 <맛있는 인생>도 결국 연애 이야기였던 것 같다). 하여간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개그맨 황현희에게 차인 게 들통이 나서 매니지먼트사로부터 연애 금지령을 당한 배우 윤소(최윤소)는 장난으로 온라인 데이트 사이트에 프로필을 올린다. 돈도 없고 성격도 소심한 뮤지션 능룡(이능룡) 역시 연애불능 상태를 벗어보고자 데이트 사이트에 프로필을 올린다. 그러면서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사람의 인연이 꼬이고 또 풀리기 시작한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인디영화와 인디음악계의 <노팅힐> 같은 영화랄까. 언니네 이발관 기타리스트인 이능룡과 몽구스의 몬구가 꽤 능청스러운 연기를 보여준다. 가끔 손발이 오그라들지만 그런 게 요런 연애영화의 참맛이기도 하다.
음악감독 조니 그린우드의 실력을 알고 싶다면?
<케빈에 대하여> We Need to Talk about Kevin 영국, 미국 / 2011년 / 112분 / 린 램지
지난해 칸영화제에서 화제를 모았던 신작이다. 에바(틸다 스윈튼)는 아들 케빈을 가지면서 일과 양육을 함께 해내야 한다. 그런데 케빈이 문제다. 이 아이는 이유없는 반항이 지나치게 심할 뿐만 아니라 행동을 통제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결국 10대 청소년이 된 케빈은 끔찍한 일을 저지르고 만다. 감독 린 램지는 그게 부모의 잘못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저 이렇게 질문을 던진다. 혹시, 어떤 인간들은 날 때부터 사이코패스인 걸까? 이 침울한 수작이 음악영화제에 속해 있는 이유는 음악감독을 맡은 라디오헤드의 조니 그린우드 덕분이다. <데어 윌 비 블러드>에서 섬세하게 인물의 감정을 드러내고 거칠게 삶의 야만을 끄집어내는 그의 음악에 놀랐던 관객이라면 <케빈에 대하여>는 필견(아니, 필청)이다. 올해 7월 지산밸리록페스티벌에 헤드라이너로 참여하는 라디오헤드의 공연을 미리 예습하고 싶다면 같은 부문 상영작 <라디오헤드 라이브 인 프라하>도 놓치지 말자. 체코 프라하에서 열린 라디오헤드의 라이브를 50여명의 팬들이 촬영한 뒤 편집한 다큐멘터리다. 심지어 이 다큐멘터리는 깜짝 무료상영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