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스 폰 트리에의 나치 발언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열린 제64회 칸영화제는 <멜랑콜리아>의 커스틴 던스트를 여우주연상의 수상자로 지목했다. 그녀가 연기한 ‘저스틴’은 우울증에 걸렸지만 유능한 능력을 지닌 광고계의 카피라이터이다. 한 시간에 걸친 1부에서의 성대한 결혼연회 챕터에서 그녀는 극도의 우울감을 경험하며 파혼을 선택하게 된다. 이어지는 2부에서 저스틴은 요양차 언니네 저택에 머무는데, 그곳에서 본격적으로 ‘멜랑콜리아 행성’과 지구의 충돌을 예고한다. ‘우울’이라고 명명된 이 거대한 행성이 지구로 다가오자 사람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각자 미래에 대한 견해를 피력한다. 대다수 과학자들의 긍정적 전망과 달리 저스틴의 부정적 예측은 언니를 불안하게 만든다. 그런데 그의 발언에 힘이 실리는 사건이 발생한다. 예식에 쓰였던 콩의 개수를 그녀가 정확하게 맞히면서 감춰진 예언 능력이 입증된 것이다.
저스틴의 캐릭터는 그리스 신화 속 ‘카산드라’와 꽤 흡사해 보인다. 아폴론의 구애를 승낙해 예언 능력을 얻지만 결혼 약속을 이행하지 못해 불운의 예언을 하게 되는 인물 말이다. 프롤로그에 사용된 바그너의 오페라곡 역시 영화를 푸는 중요한 열쇠가 된다. 정치나 종교적 관념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다만 숙명과도 같은 괴로움에서 기인한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비극, 이는 저스틴의 우울과 몹시 닮아 있다. 감독의 전작 <안티크라이스트>의 아르누보적인 화면을 즐겼던 관객이라면 이번 역시 만족할 거란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이 사치스러운 눈요깃거리가 여전히 감동적인지에 대해선 의문이다. 탐미적 유행의 짧은 유효기간을 우린 수없이 경험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