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9월3일, 노동자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께서 그토록 그리던 아들 곁으로 가셨다. 고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로 투쟁의 장에 뛰어든 이후 노동운동계의 대모로 버텨온 40년 인고의 세월은 그녀를 한 사람의 어머니에서 모두의 어머니로 바꾸어놓았다. 이제 그녀는 떠났지만 부조리 앞에 망설임이 없었고 스스로 낮은 곳에 머물기를 자처했던 인간 이소선의 삶은 여전히 향기롭게 우리 곁에 머무른다. <어머니>는 이제는 볼 수 없을 어머니 이소선의 마지막 2년간을 담은 기록이다.
이소선은 이미 하나의 상징이다. 반세기를 함께한 노동운동의 역사 속에서 그녀는 자식을 가슴에 묻은 슬픈 어머니였고, 아들의 부탁을 끝까지 지켜낸 강한 어머니였으며, 민주화 투쟁의 가시밭길을 걷는 모두를 위로하고 보듬었던 자애로운 어머니였다. 하지만 <어머니>는 이소선 여사를 우상화하거나 미화하고자 하는 욕망을 억누르고 대신 절룩거리는 그녀의 발걸음을 뒤따르며 인간 이소선의 친밀한 일상을 보여준다. 수시로 낮잠을 자는 노곤한 얼굴이나 노조 간부가 고스톱치라고 가져다준 동전 묶음을 보여주며 자랑하는 아기 같은 표정, 카메라를 들이대자 민망해하며 수줍게 돌아서 담배를 피우는 장면들은 마치 이웃집 할머니의 모습처럼 친근하다.
이소선 여사는 영화 내내 걷는다. 다리가 좋지 않아 지팡이를 짚거나 다른 이에게 기대어 걸음을 옮기는 그녀의 뒷모습은 지극히 개인적인 풍경에 불과하지만 그녀가 머무는 곳에서 그녀를 둘러싼 사람들과 함께 찍은 사진 한장 한장이 고스란히 한국 현대사를 관통하는 밑그림이 된다. <어머니>는 이소선 여사가 돌아가신 날부터 출발하여 시간을 거꾸로 돌리면서 진행하는데, 이는 단순한 플래시백이라기보다는 이미 우리 곁을 떠나간 그녀를 다시 살려내고 싶은 욕망처럼 보인다. 시간이 흐를수록 생기를 더해가는 이소선 여사의 모습을 지켜보는 기쁨은 비단 감독의 희망만이 아니라 관객의 바람이 된다. 그렇게 카메라는 결국 그녀가 끝내 보지 못했던 전태일 열사 40주년 기념 연극 <안녕, 엄마>와 교차하는 순간까지 그녀와 동행한다.
영화의 분위기는 전체적으로 편안하다. 기술적으로 매끈하지도 않고 목적의식을 가지고 특정 메시지를 실어나르지도 않는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가슴 뜨거워지는 어떤 것을 확실히 남기고 간다. 자신의 몸이 고단하고 힘든 와중에도 한진중공업 김진숙을 걱정하는 모습은 그저 평범한 어머니의 모습인 동시에 시대의 아픔을 제 몸처럼 함께해온 투사의 진심어린 분노이기도 하다. 대한민국에서 전태일에게 유일하게 빚이 없는 사람인 그녀조차 그러할진대 우리가 ‘염치’라 불리는 감정을 가지고 있는 한 이를 외면하기는 힘들다. 때문에 “나를 낮추고”, “하나가 돼라”는 이소선의 마지막 목소리에 실린 위안과 각오는 깊은 울림으로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