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계급의 절망과 구원. 이 주제를 지구상에서 가장 잘 다루는 나라는 영국이다. 우리는 켄 로치와 마이크 리의 영화들을 사회주의적 리얼리즘이라는 말로 표현해왔다. 세계화의 지옥이 진행되고 있는 지금 그 단어는 ‘노동계급 리얼리즘’이라는 포괄적인 단어로 이해하는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 배우 출신인 패디 컨시딘 감독의 <디어 한나> 역시 켄 로치, 마이크 리 같은 선배들의 전통을 잇는 영화다.
조셉(피터 뮬란)은 쓰레기다. 덩치가 커서 ‘티라노사우루스’(원제인 Tyrannosaur)라고 불리던 아내가 죽은 뒤 그는 술과 분노의 힘으로 살아간다. 어느 날 도망치듯 자선가게에 숨어든 그는 기독교 신자인 점원 한나(올리비아 콜먼)의 기도로 마음을 달래고, 그녀와의 만남을 통해 삶의 온기를 찾아간다. 한나의 삶도 완벽하지는 않다. 폭력적인 남편에게 일상적으로 구타당하던 그녀는 갑자기 조셉의 집을 찾아온다. 두 영혼은 서로를 치유해가지만 조셉은 한나에게 어두운 비밀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패디 컨시딘은 노동계급 동네의 현실과 두 주인공의 멜로드라마적인 관계를 절제된 손길로 촘촘히 엮어낸다. 특히 파국과 구원으로 나아가는 격정적인 후반부를 과감한 생략과 여백의 미학으로 다듬는 솜씨는 과용을 부리기 쉬운 신인감독으로서는 보기 드문 장점이다. 물론 영국 노동계급 리얼리즘 영화들은 감독의 힘으로만 전통을 이어오진 않았다. 감독만큼 중요한 것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다른 계급의 영혼에 빙의하는 능력을 갖고 있는 듯한 영국의 배우들이다. <워 호스>의 피터 뮬란과 <철의 여인>의 올리비아 콜먼은 엄격한 태도로 인물들의 고통을 관객의 심장에 전이시키고, 결과는 언제나처럼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