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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액션배우다 / 내 눈을 바라봐
강병진 남민영 2012-03-20

<하울링>의 시라소니

우리는 이미 질풍이를 어디선가 본 적이 있다. 티끌 한점 없는 순수한 영혼이었으나, 냉혹한 사회에서 괴물이 됐고, 결국 시스템에 의해 패퇴하고 마는 비극적인 운명의 주인공 말이다. 죽음을 맞는 순간, 누군가의 친구였던 시절을 떠올리는 질풍이의 눈빛에 살인 뒤 어린 시절의 추억을 더듬는 <초록물고기> 속 막동이의 모습을 겹쳐본다면 어떨까. 지칠 줄 모르는 육체로 질주하고 또 질주하는 괴물의 이미지로 본다면 <황해>의 구남을 연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질풍이를 묘사하는 늑대개 시라소니의 연기 또한 내적 고통을 육체적인 감각으로 드러내는 하정우의 연기와 닮아 보인다. 스크린을 정면으로 육박하는 속도와 몸무게를 실어 상대배우의 몸을 제압하는 타격감에 관객은 압도당했다.

시라소니는 집념과 인내심을 키워드 삼아 질풍이란 캐릭터에 몰입했다. 연기에 앞서 그가 제일 먼저 연마한 것은 고독감을 참는 것이었다. 텅 빈 도로 위에 홀로 남겨진 그는 점점 멀어져가는 주인을 보고도 달려가거나 짖지 않았다. 100m 전방으로 사라진 주인이 “소니야!”라고 외쳤을 때, 그는 장거리 경기에 출전한 단거리 선수처럼 달렸다. <하울링>의 후반부, 오토바이를 탄 이나영과 함께 도로를 질주하는 장면은 그러한 마인드 컨트롤과 반복훈련을 통해 만들어졌다. 봉고차를 운전하던 송미경을 물어죽이는 장면도 수차례의 리허설을 통해 감을 익힌 뒤에 촬영에 들어간 장면이다. 소녀와의 행복한 시절을 연기하기 위해 배우 남보라와 교감의 시간을 가진 것도 주효했다고 한다. 연기하는 순간마다 최선을 다했지만, 그는 모든 장면에서 에너지를 소진시키는 과한 연기만은 거부했다. 질주장면을 연기할 때는 2, 3번의 테이크를 마무리한 뒤 곧장 자신이 타고온 트레일러로 들어가 재충전과 장면 검토의 시간을 요구했다고. 괴기서린 눈빛과 영민함, 단단한 육체를 지닌 액션동물배우는 그렇게 탄생했다.

<비기너스>의 코스모

올해 골든칼라어워즈는 귀여운 점박이 무늬가 돋보이는 잭러셀테리어의 활약이 두드러졌다. 가장 대표적으로 영예의 ‘톱 도그’를 차지한 <아티스트>의 어기를 들 수 있지만 함께 후보에 오른 <비기너스>의 코스모(Cosmo, 어기와 똑같은 잭러셀테리어종이다) 또한 숨은 실력자다. <강아지 호텔> <폴 블라트-몰 캅> 등으로 이미 얼굴을 알린 코스모는 <비기너스>에서 올리버(이완 맥그리거)의 반려견 아더로 등장해 차세대 견공 스타로 등극했다. <비기너스>의 아더는 그를 통해 모든 인물의 감정이 이어진다고 말할 수 있는 극의 방점이자 메신저다. 놀라운 점은 코스모가 이런 중요한 역할을 오로지 눈빛 하나로 이뤄냈다는 것이다. 매 순간 코스모는 올리버와 아더의 교감을 풍부한 감정을 담은 눈빛으로 표현해낸다.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면서 설렘과 불안과 혼란에 휩싸인 올리버에게 위로와 충고를 건네는 아더의 눈빛은 인간 그 이상의 무엇이다. 물리적으로 서로 말이 통하지 않기에 침묵 속에서 이뤄지는 교감이지만 이는 단어 하나가 전할 수 있는 깊이를 뛰어넘어 더욱 경이롭다. 또한 작품 안에서 코스모는 이완 맥그리거의 감정을 고스란히 받아내는 도화지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다. 이완 맥그리거가 어떤 감정을 표현하느냐에 따라 코스모는 그가 그리는 불안의 그림이 되기도 하고 설렘의 그림이 되기도 한다. 상대배우와의 호흡을 놓치지 않으며 눈빛 하나로 모든 것을 표현해내는 코스모의 연기에 대해 <비기너스>로 올해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을 차지한 크리스토퍼 플러머는 “코스모는 어기보다 인간적이고 전문적인 연기를 보여줬다”라고 밝혔을 정도다.

라이벌로 손꼽히는 <아티스트>의 어기가 재치와 총명함, 개인기로 관객을 사로잡았다면 코스모는 그 모든 것을 아우르는 그리고 인간을 이해하는 진심어린 눈빛으로 사람의 마음을 끌어당긴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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