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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블록버스터영화 제작 10계명① - 재미를 모르는 복제품은 가라

장르를 모르는 감독은 좋은 장르영화를 만들 수 없다

<7광구>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건 이 나라 영화판에는 장르영화 시사회에서 감독이 “난 장르에 대해 잘 모르고 심지어 싫어한다!”라고 말하는 것이 왜 당연시되고 용인되고 있느냐는 것이다.

이건 그냥 솔직하다고 말하고 넘어갈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장르에 대해 잘 모르고, 심지어 싫어하기까지 한다면 양심상 그 감독은 처음부터 일을 하지 말았어야 했다. 그래도 억지로 일을 떠맡았다면 여전히 장르를 싫어한다고 해도 모른다는 소리는 나오지 않을 정도로 노력을 하고 공부를 했어야 했다. 그런데도 이들은 억지로 법정에 끌려나온 부역자들처럼 변명한다. “전 장르에 대해 잘 모르고….”

정리해보자. 장르란 철저하게 경험의 누적에 의해 존재한다. 추리물을 예로 들어보자. 에드가 앨런 포가 명탐정이 사건을 해결하는 공식을 만든다. 여기에 아서 코난 도일이 나타나 내레이터 역할과 과학수사를 강화한다. 여기에 리처드 오스틴 프리먼 같은 작가가 나타나 범인을 미리 밝히는 도서추리물을 만들고 대실 해밋이 나타나 하드보일드 분파를 만든다. 장르의 발전은 작가들이 선배의 어깨 위에서 새로운 무언가를 첨가하는 과정의 반복으로, 이를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최근작들만 대충 봐서는 안된다. 장르 시작부터 이어지는 누적의 과정 전체를 이해해야 한다. 그래야 온전한 팬질이 가능하고 그다음에야 창작이 가능하다. 모두 상당한 애정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이들은 애정도 없고 관심도 없단다. 아마 그들은 그런 것 없이도 충분히 영화를 만들 수 있나 보다. 기껏해야 장르물이니까.

장르팬들이 영화를 무조건 더 잘 만든다는 이야기는 않겠다. 멀리 갈 필요도 없이 <전설의 고향>의 암울한 예가 있으니까. 하지만 그래도 장르에 대한 기본 애정은 여전히 필수다. 당신이 이런 것들을 경험 없이 오로지 영화적 직감으로 꿰뚫어보는 천재가 아니라면. 그리고 당신이 그럴 가능성이 몇 퍼센트나 되겠는가. 그리고 당신이 정말로 그런 천재라고 해도 당신의 영화적 고안이 이미 다른 천재들과 수많은 범재들이 발굴해놓은 것이 아니라고 어떻게 확신할 수 있는가. 모르고 흉내내는 것과 알고 흉내내는 것 사이의 차이는 엄청나다.

여기서부터는 미스터리의 영역으로 들어간다. 분명 이 나라에도 (호러이건, SF이건, 판타지이건 간에) 개별 장르의 팬덤들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들 중 영화를 직접 만드는 사람들 역시 상당수 존재한다. 하지만 정작 한국에서 장르물이 나오는 경우, 자신이 장르의 팬이라고 밝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정작 관심을 보이는 사람들은 장르물을 만들지 않는다.

아마 장르물을 기획하는 사람들은 장르팬들이 지적하는 세세한 문제점들은 넘길 수 있는 것들이고, 그들이 타깃으로 삼은 대부분의 관객은 이를 눈치채지 못할 것이라 생각할지도 모른다. 타깃의 수준을 그렇게 잡아놓는다면, 딱 그 수준만큼의 사전 조사로 관객을 속일 수 있지 않을까.

미안하지만 그렇지 않다. 장르는 완성품의 리스트만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지난해의 망작 <7광구>가 속해 있는 SF/괴물 장르만 해도 <에이리언> 시리즈를 독파하는 것만으로는 얻을 수 없는 수많은 요소들이 들어 있다. 그건 영화가 뻔뻔스럽게 무시했던 생물학과 물리학에 대한 기초지식에서부터 기능성 캐릭터들의 활용과 서스펜스의 구성, 심지어 제작비 절감의 트릭까지 다양하다. 영화로만 계산해도 70, 80년이 넘는 경험의 보고가 장르라는 이름의 금고 안에 저장되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를 DVD 몇편을 보는 것으로 커버하고 넘어설 수 있다고 믿는다? 그 낙천주의는 감탄스럽지만 동의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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