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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톡] 가족이라는 지옥 속에서
남민영 사진 백종헌 2012-02-02

<씨네21>과 CJ CGV 무비꼴라쥬가 함께하는 시네마톡: <밍크코트>

“우리가 가족에 대해 생각하는 부분을 정말 잘 보여주는 영화다.” <밍크코트>에 대한 김영진 영화평론가의 평을 시작으로 다소 무거웠던 분위기가 달아올랐다. 지난 1월13일, CGV대학로에선 <씨네21> 주성철 기자와 김영진 영화평론가, 그리고 <밍크코트>를 공동연출한 신아가, 이상철 감독, 배우 한송희가 참석해 새해 첫 시네마톡의 문을 열었다. 꽉 들어찬 객석이 영화에 대한 열띤 관심을 증명하는 듯했다.

<밍크코트>는 식물인간이 된 어머니의 ‘연명치료 중단’ 문제를 두고 벌어지는 가족간의 대립과 애증을 밀도있게 다룬 작품이다. 우유 배달을 하며 살아가는 중년의 여인 현순은 이단을 믿는다는 이유로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가족들에게 외면당하는 처지다. 어느 날 연로한 어머니가 의식불명에 빠지면서 가족들은 연명치료 중단을 심각하게 논의하기 시작한다. 현순은 어머니가 곧 깨어날 것이라는 계시를 받았다며 연명치료 중단에 합의한 언니, 남동생 등과 대립각을 세운다. 돈 때문에 자신들이 어머니를 죽이려 한다고 믿는 현순을 따돌리기 위해 형제들은 현순의 딸, 수진 내외를 부른다. 그리고 현순이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 그들은 계획대로 어머니의 호흡기를 떼려 한다. 이렇듯 <밍크코트>는 가족간에 흔히 겪는 갈등을 사실적으로 그려내는 것을 넘어 종교적 신념에 대한 문제까지 파고든다.

7년 전 외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겪었던 자신의 경험이 영화의 모티브가 됐다고 밝힌 신아가 감독은 “내가 만약 저 상황이었다면 쉽게 누군가의 죽음에 동의할 수 있었을까란 고민”에서 영화가 시작됐다고 했다. 신아가 감독의 체험에서 시작된 물음은 한국영화아카데미 에서 함께 연출을 전공하던 이상철 감독을 만나 더욱 증폭됐다. 신아가 감독의 중편 시나리오를 보고 공동연출을 마음먹은 이상철 감독이 그녀와 함께 의견을 조율하며 이야기를 더욱 크고 깊게 넓혀갔다. 두 사람의 의기투합으로 만들어진 장편 시나리오는 영화진흥위원회와 부산국제영화제의 제작지원을 받아 영화로 완성될 수 있었다. 그들이 던지는 깊은 물음에 대한 보답처럼 <밍크코트>는 ‘서울독립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대상을 수상하며 작품성과 감독의 뛰어난 역량을 인정받았다.

현순은 <미져리>의 캐시 베이츠 같은 캐릭터

“포스터에 나온 현순의 얼굴이 범상치 않다”는 주성철 기자의 말에 웃음이 곳곳에서 터져나왔다. 곧 이야기는 비호감으로 비쳐지는 현순이란 캐릭터에 초점이 맞춰졌다. “누군가는 포스터만 보고 현순이 가족을 모두 살해하는 영화인 줄 알았다고 하더라.” 농담이 오고갈 정도로 하얀 십자가를 배경으로 성경을 들고 서 있는 주인공 현순의 겉모습부터가 얼핏 공포스럽기까지 했다. 어머니를 위한 기도를 한다며 알아듣지 못할 방언을 쏟아내고 형제들에게 “그렇게 살다가 천벌받는다”란 폭언을 일삼는 현순을 두고 김영진 평론가는 “<똥파리> 이래 가장 파격적인 캐릭터”라고 칭하기도 했다. 이에 신아가 감독은 “우리는 현순을 비호감 인물이라기보다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 사는 독창적인 인물로 만들려 했다”며 현순에 대한 설명을 덧붙였다. 이상철 감독은 “<비밀과 거짓말>의 블렌다 블리신, <브레이킹 더 웨이브>의 에밀리 왓슨, <미져리>의 캐시 베이츠 같은 인물을 만들고 싶었다”고 이야기를 거들었다. 현순을 훌륭하게 소화해낸 배우 황정민에 대한 이야기도 빠질 수 없었다. 이상철 감독은 열연을 펼친 그녀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캐스팅 과정에서 자연스레 황정민씨를 떠올리게 됐다. 현순이란 캐릭터를 구축해나가는 데 결정적인 도움을 많이 줬다.”

수진을 맡아 자연스러운 임신부 연기를 선보인 배우 한송희에 대한 호평도 오고갔다. “나이 차가 한참 나는 선배들과 서로 공격하는 신이 많은데 힘들지 않았냐”는 주성철 기자의 질문에 한송희는 “선배들이 참 편하게 대해주셨다. 다 모여 있으면 코미디영화를 찍어야 할 정도로 즐거웠다”며 뛰어난 팀워크를 자랑했다. 이어 “선배들이 한참 후배인 나에게 너의 호흡대로 하라며 동등하게 대해주시는 것을 보고 같이 연기를 할 때는 후배라는 생각을 버리고 연기에 집중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이번 작품을 통해 얻은 깨달음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했다.

스토리, 캐릭터, 카메라워크의 합

이 영화가 극의 흐름을 끝없이 고조시키기 위해 택한 방식은 지독하다 싶을 정도의 클로즈업과 핸드헬드다. “클로즈업을 통해 독특한 인물들의 감정을 날카롭게 낚아챘다”는 김영진 평론가의 말처럼 <밍크코트>는 시종일관 긴장감 넘치는 카메라워크가 돋보인다. 특히 클로즈업은 감정의 균열을 고스란히 받아내는 역할을 충실히 해내며 현순을 비롯한 가족들의 심리를 거름망 없이 그대로 표출한다. 언뜻 거칠어 보이지만 그런 거침이 오히려 극에 사실감을 더하며 긴장감을 부추긴다. 김영진 평론가가 “클로즈업신이 많은데 보기 드물게 밸런스가 잘 맞는 영화”라며 좋은 평을 건네자 신아가 감독은 “스릴러영화들의 화법으로 가고 싶었다. 흔들리듯 인물을 따라가는 대런 애로노프스키의 <더 레슬러>를 참조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영화의 스토리와 캐릭터 그리고 카메라워크까지 합이 잘 맞았던 이유는 시나리오 단계부터 디테일한 이야기를 나누며 차근히 작품을 쌓아올린 두 감독의 공이 크다. 서로 어떻게 역할을 분담했는지에 관한 주성철 기자의 질문에 이상철 감독은 “자신의 이야기인 만큼 신아가 감독이 연출에 더 힘을 쏟았고 나는 프로듀서의 역할을 자처해 부족한 부분을 지적하거나 의견을 보탰다”고 했다.

당일 상영이 매진을 이룬 만큼 관객의 질문도 쉼없이 터져나왔다. 최근 독립영화의 전반적인 분위기에 대한 질문부터 영화의 디테일한 부분에 대한 사소한 질문까지 범위가 다양했다. “하나의 트렌드처럼 엇나가고 과장된 가족관계를 다루는 독립영화의 경향을 <밍크코트>도 따라가는 것 아니냐”는 한 관객의 질문에 신아가 감독은 “독립영화는 저예산이다 보니 시나리오 단계부터 촬영 가능한 신을 계산해서 쓰게 되고 제작지원에 기댈 수밖에 없다. 그런 상황에서 예쁘고 아름다운 영화보다는 드라마적이고 강렬한 작품이 더 주목받게 되는 것 같다. 그래서 강하고 센 이야기들이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 같다”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마지막 질문을 끝으로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서 말한 신아가, 이상철 감독은 기회가 된다면 계속해서 몇 작품 더 공동연출할 의사가 있음을 밝혔다. 신아가 감독은 “다음에는 이상철 감독이 현장진행을 하고 내가 서포트하는 쪽으로 논의하고 있다”며 차기작에 대한 간단한 계획을 이야기했다. 다음 작품인 영화 <앵두야 연애하자>가 곧 개봉한다는 배우 한송희는 <밍크코트>와 차기작 모두에 관객의 따뜻한 사랑을 부탁한다며 귀여운 끝인사를 건넸다. “그 무엇도 정답은 아니란 걸 말하고 싶었다”고 한 두 신인감독의 말을 되새길 때쯤 시네마톡의 마지막 정리를 맡은 김영진 평론가는 “독립영화스러운 클리셰는 그만 보고 싶었는데 이 작품은 그렇지 않아서 놀랐다. 영화가 보여주는 가족의 모습이 사실 평균 수준이라고 생각한다. 밖에서는 아무렇지 않아 하지만 집에 가면 지옥일 때가 있는데 그런 것들을 잘 보여준 것 같다”라고 평하며 시네마톡의 문을 닫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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