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감독 류승완 자막 영어, 한국어 오디오 DD 2.0 화면포맷 1.33:1 지역코드 3 출시사 스타맥스
미국에서 잠시 살고 있을 때 이른바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사건이 터졌다. ‘사건’이라 함은, 인터넷의 영화 사이트나 친구들을 통해 듣는 한국영화계 소식의 상당부분을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가 차지했기 때문에 혼자 명명해본 것이지만 말이다. 문제는 주위에서 그렇게 대단한 영화라고 얘기를 해주는데, 도무지 볼 방법이 없었다는 사실이다. 있던 곳이 워낙 시골 동네였던지라 구할 수 있었던 비디오 테이프는 TV드라마와 코미디 프로그램이 전부였고, 그나마 간간이 들어오는 영화들도 ‘대박’들에 국한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1년여를 ‘언젠간 보겠지’ 하며 체념하고 지냈는데, 이번엔 인터넷상에서 <다찌마와 리> 사건이 벌어졌다. 화면이 너무 작고 어두워 아쉽기는 했지만 그래도 기쁜 마음으로 재미있게 보았고, 그 결과 더욱더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가 어떤 영화인지 궁금해졌다.
그뒤 한국에 돌아와 매주 모 드라마에서 류승범의 매력적인 연기를 감상하면서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를 봐야겠다고 다시 생각하던 차에, 마침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DVD가 출시된다는 소식을 들었다. 사실 국내 DVD 시장이 지난해부터 기하급수적으로 확대되어 다양한 타이틀이 출시되고 있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상업적으로는 한계가 분명한 상황에서 ‘대박’도 아닌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가 DVD로 출시된 것은 어떤 의미에서 대단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게다가 잘 알려져 있다시피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는 16mm 필름에 모노 사운드로 제작돼 있어, 태생적으로 DVD에는 걸맞지 않은 한계까지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DVD를 보고 있노라면, 이상하게 호의적인 시선을 갖게 된다. 화면에 비가 스륵스륵 내리고 카메라 렌즈에 붙은 먼지가 눈에 거슬리는 것도 잠시뿐, DVD의 선명한 화질을 통해 전달되는 생동감 있는 액션과 피의 향연에 정신없이 빨려들어가기 때문이다. 사운드 또한 생각보다(이것은 아마도 기대 수준 자체가 없었기 때문일지도 모름) 효과음을 잘 전달해주고 있어 그다지 귀에 거슬리지 않는다.
하지만 무엇보다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DVD를 매력적으로 만드는 것은 그러한 태생적인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한, 동영상과 사운드로 무장한 오프닝과 메뉴화면 그리고 다양하고 치밀하게 기획된 서플먼트들이다. 특히 서플먼트 중에서 주요 출연진들의 인터뷰나 감독의 경쾌한 오디오 코멘터리 등은 팬들이 환호할 만한 수준이다. 또한 인터넷상에서 불편하게 보았던 <다찌마와 리> 전편이 깨끗한 화질로 담겨 있는 것도 이 DVD만의 매력으로 꼽을 수 있다. 이미 다른 매체를 통해 <다찌마와 리>를 보았던 이들이라 하더라도, 16mm영화와 디지털카메라로 촬영된 인터넷영화를 한 DVD에서 동시에 보며 비교해보는 색다른 맛을 놓치기는 어려울 것이다. 김소연/ DVD 칼럼니스트 soyoun@hipop.com▶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자세히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