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기에 만화가 에르제의 <땡땡의 모험> 시리즈는 수월하게 영화로 만들 수 있는 작품은 아니다. 1930년대에 태어났고 1940∼60년대에 전성기를 누린 틴틴과 일당의 모험은 다분히 그 시대의 유물에 가깝다. 이걸 영화화하기 위해서는 보다 21세기적인 액션, 기승전결이 확실한 이야기, 현대적인 유머감각이 필요하다. 그보다 더 골치 아픈 요소도 있다. 미키마우스만큼 아이콘적인 캐릭터들을 우스꽝스럽지 않게 실사 배우로 대체하는 게 과연 가능하기나 할 것인가? 이 모든 걸 한번에 해결하기 위해 스티븐 스필버그가 선택한 틀은 퍼포먼스 캡처를 활용한 CG애니메이션이다. 실사가 아닌 애니메이션이라면 원작의 만화적인 특징을 크게 해칠 필요도 없고, 주연을 맡을 실제 배우의 캐스팅에 전전긍긍할 필요도 없다. “드디어 틴틴을 실사화할 기술이 나왔기 때문”에 <틴틴: 유니콘호의 비밀>을 만들었다는 스필버그의 호언장담에는 다 일리가 있는 것이다.
<틴틴: 유니콘호의 비밀>은 에르제의 원작 중 <유니콘호의 비밀>(1943), <라캄의 보물>(1944) 연작을 중심으로 <황금 집게발 달린 게>(1941)를 덧붙여 각색한 이야기다. <유니콘호의 비밀> <라캄의 보물> 연작과 거의 상관없는 독립적인 책 <황금 집게발 달린 게>를 이어붙인 건 필수적인 동시에 효과적인 선택이었다. 이 책은 주요 주인공인 하독 선장을 처음으로 소개하는 동시에, 지중해와 사하라 사막을 배경으로 한 인상적인 액션 시퀀스로 넘쳐난다. 스필버그가 철저하게 세권의 책을 해체하고 재조립해서 만들어낸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특종기자 틴틴(제이미 벨)은 우연히 유니콘이 박힌 모형배에서 숨겨둔 보물의 위치가 암호로 표시된 지도를 발견한다. 지도의 메시지를 확인하려다가 사카린(대니얼 크레이그) 일당에 의해 배로 납치된 틴틴은 주정뱅이 하독 선장(앤디 서키스)을 만나 탈출을 감행한다. 지중해와 사하라 사막에서 모험을 계속하던 둘은 17세기에 보물을 싣고 난파한 해적왕 레드 라캄(역시 대니얼 크레이그)의 배 유니콘호의 위치가 지도에 숨겨져 있다는 걸 깨닫는다.
이건 그리 완벽한 이야기는 아니다. <틴틴: 유니콘호의 비밀>은 전혀 다른 책에서 인상적인 액션만 가져다 이어붙인 흔적이 강한 편이다. 그걸 잘 아는 스필버그는 주인공 틴틴이 끊임없이 자신의 입으로 상황을 설명하도록 만든다. 어린 관객을 위한 배려겠지만 설명조의 대사가 적은 스필버그의 전작을 기억하는 성인 관객이라면 이게 꽤 당황스러울 것이다. 살짝 당기면 뜯어질 듯한 이야기의 이음새를 잠시 잊어버리게 만드는 건 웨타 디지털의 기술적 성과다. 특히 스필버그는 생애 최초로 퍼포먼스 캡처를 구사해서 만든 애니메이션 <틴틴: 유니콘호의 비밀>을 어떤 기술적 실험으로 여기고 있는 게 분명하다. 사실 스필버그는 제임스 카메론 같은 기술적 선구자는 아니다. 그는 오히려 이미 만들어진 특수효과를 가장 유려한 방식으로 이야기 속에서 활용하는 데 능한 남자다(이를테면 <쥬라기 공원>의 공룡들 말이다). 그의 연출력과 웨타 디지털의 솜씨가 화룡점정을 찍는 건 중동의 항구도시에서 벌어지는 추격 시퀀스다. 이 장면에서 카메라는 댐에서 터져나온 물줄기와 캐릭터들이 도시를 관통하며 벌이는 추격전을 한번의 편집도 없이 롱테이크로 담아내는데, 시각적인 황홀감의 절정이라고 일컬을 만하다.
그런데 이 영화의 기술적 성취들은 동시에 어떤 함정이기도 하다. 원신 원컷의 롱테이크로 벌이는 액션이나 과장된 슬랩스틱 코미디들은 실사영화처럼 컷을 솜씨있게 나누고 세련된 유머를 구사하는 픽사나 드림웍스의 CG애니메이션들에 비해서 덜 영화적이라는 느낌이 강하다. 하이퍼 리얼리즘을 추구하면서도 종종 극단적인 애니메이션 고유의 기법을 보여주는 <틴틴: 유니콘호의 비밀>의 아이러니는 처음 대하는 매체의 특성을 최대한으로 밀어붙인 스필버그의 결단에서 나오는 듯하다. 이런 아이러니는 캐릭터 디자인에서도 마찬가지다. 이 영화가 현재까지 ‘언캐니 밸리’(Uncanny Valley: 인간에 가깝지만 인간과 완벽하게 같지는 않은 인공체에 사람들이 혐오감을 느낀다는 개념)를 가장 훌륭하게 뛰어넘은 퍼포먼스 캡처 영화라는 건 분명한 사실이지만, 인간과 흡사한 캐릭터와 만화적인 캐릭터가 이리저리 섞여 있어 종종 리얼리티 자체에 혼동이 벌어진다. 물론 이런 기술적 아이러니 자체가 <틴틴: 유니콘호의 비밀>의 기묘한 매력 중 하나이긴 하다.
필연적인 몇몇 기술적 허점과 이야기의 약점에도 불구하고 처음 보는 장난감을 이리저리 건드려본 스필버그의 유희정신이 107분의 썩 괜찮은 롤러코스터를 타는 듯한 즐거움을 제공한다는 건 분명하다. 적어도, 스필버그식 모험담의 팬이라면 전례없이 뭉툭했던 <인디아나 존스: 크리스탈 해골의 왕국>의 기약없는 속편은 잊어버리고 틴틴의 모험에 탑승하는 게 훨씬 낫다. 게다가 <틴틴: 유니콘호의 비밀>은 이후 피터 잭슨과 손잡고 만들어낼 남은 두 속편을 위한 서막에 가까운 영화다. 후속편을 감독할 피터 잭슨은 이번 영화의 득실을 잘 따져본 뒤, 더 나은 기술과 더 영화적인 이야기를 찾아낼 게 틀림없다. 우리 시대의 인디아나 존스가 시작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