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년 전 어머니가 편찮으셨다. 증상은 정신이 깜빡깜빡하는 것으로 시작하더니 급기야 주위 사람들도 잘 못 알아보는 지경에 이르렀다. 급한 마음에 ‘빽’을 써서 서울대병원 외래진료를 잡았다. 오래 기다려서 마침내 의사를 만났는데, 이 의사는 대뜸 간호사에게 “또 초진이야? 누가 잡았어?”라면서 버럭 소리를 질렀다. 환자를 앞에 두고 무슨 짓인가 싶었지만 혹여 ‘의사 선생님’ 심기를 불편하게 할 것 같아 꾹 참았다. 그런데 의사는 증상을 건성건성 듣더니 “지금은 잘 모르겠으니까 한달 뒤에 다시 오라”고 말했다. 진료시간은 모두 1분 정도 됐을까. 쫓겨나듯 진료실 밖으로 나와 초점 잃은 어머니의 표정을 봤을 때 열이 확 올랐다. 그 뒤 어머니는 친절하고 비용도 싼 시립병원에서 완쾌했지만 서울대병원에 대한 분노는 아직도 가시지 않는다.
다큐멘터리 <하얀 정글>을 보면서 다시 ‘뚜껑’이 열렸다. 이 영화가 고발하는 한국 대형병원의 실태는 이렇다. CT, MRI, PET-CT 같은 비싼 검사를 마구 남발한다. 의료수가가 싼 위 내시경 검사를 할 때는 조직검사를 덧붙인다. 의사들은 매일 당일 외래환자 수와 다음날 예약환자 수, 총병상 대비 입원환자 수를 문자메시지로 통보받는다. 매달 간부회의에서는 과별 매출 실적을 순위 매겨 발표한다. 한 대학병원의 외래진료를 몰래카메라로 찍은 장면에서는 한숨이 난다. 여러 명이 진료실을 들락거리는 모습을 ‘롱테이크’로 찍었는데, 6명의 환자가 의사와 함께한 평균 시간은 31초에 불과했다. 한마디로 병원이 의사로 하여금 ‘장사’를 하게 만든다는 얘기다. 병원의 영리 추구가 어제오늘 이야기는 아니지만 의사들의 부끄러운 고백과 환자들의 안타까운 사연을 듣고 있자니 그동안 병원에서 겪었던 온갖 짜증과 분노가 밀려왔다.
이 영화를 보고 얼마 뒤 한-미 FTA가 최루탄 속에서 통과됐다. 정부는 국민건강보험 체제를 흔들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하지만 모를 일이다. 일단 미국식 의료보험이 FTA의 물결과 함께 밀려올 것이고 약값은 껑충 뛸 게 틀림없으며 영리병원에 대한 논의도 재개될 것이다. 마이클 무어의 <식코>를 보면서 미국에 살지 않는다는 사실에 가슴을 쓸어내렸지만 <하얀 정글>을 보고 있자니 다시 암담해진다. 결국 아프지 말거나 돈이라도 많아야겠다는 다짐을 하지만 그게 말이 안된다는 건 알고 있다. 내 주변에는 왜 의사 하나 없는 걸까 한탄도 해보지만 다 소용없는 일이다.
문제는 정치다. <하얀 정글>이 지적하는 것처럼 한국의 병원이 이 따위가 된 건 결국 정책 탓이다. 공공의료에 대한 개념이 희박한 탓에 공공 의료보험으로 민간 의료기관을 먹여 살리는 이상한 시스템이 만들어진 것이다. 바꿔야 한다. 당장 프랑스나 캐나다처럼 공공 의료를 전면화하자는 것도 아니다. 최소한 돈이 없어서 죽어나가는 사람만큼은 없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2012년이 기다려지는 이유가 또 하나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