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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언 고슬링] 스티브 매퀸의 재림
신두영 2011-11-24

<드라이브>의 라이언 고슬링

입술을 꾹 다물고 있다. 7 대 3으로 가지런히 빗어 넘긴 머리를 한 이 남자가 굳게 닫혀 있던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깊고 푸른 눈 위에 자리한 눈썹을 살짝 올렸다 내린다. 됐다. 이제 당신은 라이언 고슬링의 팬이다. 팬이 됐으니 마땅히 그의 코스프레를 해야 한다. 운전을 할 때는 가죽 라이더 장갑을 끼자. 선글라스는 기본이다. 이쑤시개 하나 정도를 입에 물면 더 좋다. 가장 중요한 것은 보머 재킷이다. 등에는 사막에서도 살아남는 강한 생명력의 상징인 전갈 자수를 새겨 넣자. 이제 당신도 라이언 고슬링처럼 보일까. 그럴 리가. 우리에겐 그 입술, 눈썹, 눈동자, 그 미소가 없다.

보일 듯 말 듯 희미한 미소만으로 관객을 매료시키는 <드라이브>의 라이언 고슬링은 알고 보면 말수 적은 이웃집 아저씨다. 이름도 없다. 공식 직업은 카센터 직원이며 자동차 스턴트맨이지만 본업은 범죄자들을 실어 나르는 겟어웨이 드라이버다. 그저 드라이버라 불리는 408호의 과묵한 이 남자는 우연히 만난 405호의 유부녀 아이린(캐리 멀리건)과 그의 아들 베네치오와 친해지며 비로소 웃음을 되찾는다. 그런데 아이린의 남편 스탠다드가 출소하며 모든 걸 망치려 한다. 그는 오로지 아이린을 위해 스탠다드의 범죄에 동참하며 순식간에 영화를 R등급으로 바꿔버린다. 왠지 비슷한 영화를 본 것 같다. 이웃집 아저씨라는 설정부터가 2010년 최고의 화제작 <아저씨>를 떠올리게 만든다. 원빈과 라이언 고슬링을 비교해보면 어떨까. 여성 관객은 <아저씨>의 원빈을 보며 옆자리에 앉은 남자친구를 오징어로 둔갑시켰다. 이번엔 좀 다르다. <드라이브>를 보는 남자는 스스로 자신을 오징어로 비하할 것이다. 라이언 고슬링은 원빈에 비하면 남성성이 아주 강하다. 오히려 스티브 매퀸이 샘 페킨파 감독의 <겟어웨이>(1972)에서 슬로모션으로 샷건을 난사하는 장면과 연결시키는 게 낫다. 라이언 고슬링은 스티브 매퀸의 재림 같다. 그는 <드라이브>에서 쿨한 남자의 극대치를 보여준다. 놀라운 운전 실력, 과묵한 카리스마, 뛰어난 격투 실력과 배짱, 그리고 자신의 여자를 지키는 기사도까지. 남자들이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을 가진 남자다. 그렇기에 그의 미소에 남자의 가슴도 두근거린다.

덴마크 출신의 니콜라스 윈딩 레픈 감독도 라이언 고슬링에게 반하고 말았다. 레픈 감독은 라이언 고슬링을 이렇게 설명한다. “그는 제임스 스튜어트, 찰스 브론슨, 알랭 드롱, 리 마빈, 그리고 마르첼로 마스트로이안니를 조금 섞어놓은 같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인다. “만약 스크린 속의 그를 본다면 당신의 눈은 자동적으로 그에게 꽂힐 것이다. 아주 적은 수의 사람들만이 그렇게 태어난다. 그리고 아주 적은 수의 배우만이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영화를 이끌어가는 힘이 있다.” 그래서 <드라이브>는 ‘레픈 감독의 <드라이브>’가 아니라 ‘라이언 고슬링의 <드라이브>’라고 해도 무방하다. 온전히 라이언 고슬링의 매력으로 만들어진 영화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라이언 고슬링이 감독을 캐스팅했으니 말이다.

어디서 이런 쿨한 배우가 나타났을까. 국내에 알려진 라이언 고슬링의 작품은 365일 편지를 쓰는 로맨티시스트로 출연한 <노트북>(2004)이나 인형을 사랑한 소심남을 연기한 <내겐 너무 사랑스러운 그녀>(2007)가 고작이다. 사실 라이언 고슬링은 12살 때부터 연기를 시작한 틴에이저 스타였다. 정확히 말하면 될 뻔했다고 해야겠다. 라이언 고슬링은 1955년부터 방송되고 있는 디즈니의 어린이 버라이어티쇼 <미키 마우스 클럽>에 브리트니 스피어스, 크리스티나 아길레나, 저스틴 팀버레이크와 함께 출연했다. 저스틴 팀버레이크와는 친한 친구로 지냈다고 한다. 그러나 곧 라이언 고슬링은 그들과 다른 길을 간다. 그 스스로 자신의 재능을 잘 알았다. “나는 다른 친구들처럼 뛰어나지 못했다. 그들처럼 춤을 추고 노래할 수 없었다.” 쇼에 나가는 일이 점점 줄어들면서 라이언 고슬링은 밤에 혼자 디즈니 파크를 돌아다니며 놀이기구나 타며 시간을 보냈다. 확실히 그는 디즈니와는 맞지 않았다. “귀신의 집에서 기구를 타다가 춤을 추는 유령들을 봤다. 그게 나의 미래였다.”

디즈니쇼에서 놀던 아이에서 영리한 배우로

디즈니의 유령이 되기 싫었던 라이언 고슬링이 변신을 꾀한 건 19살 때다. 일찌감치 자신의 앞길을 개척한 그는 저예산영화에 출연하기 시작했다. 그 시작은 <빌리버>(2001)가 아닐까 싶다. 라이언 고슬링은 신나치주의에 빠진 유대인 청년을 연기하며 평단의 주목을 받는다. <노트북>의 성공 이후 의외의 선택이라 생각됐던 <하프 넬슨>(2006)에서 라이언 고슬링은 각종 매체의 극찬을 받았다. 인권을 설파하면서 화장실에서 몰래 마약을 하는 선생님이 그가 맡은 역할이었다. 라이언 고슬링은 이 영화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그의 저예산영화 출연은 2010년에도 이어진다. 데렉 시안프랜스 감독의 데뷔작인 <블루 발렌타인>으로 골든글로브를 비롯한 각종 비평가협회의 시상식에 초대받았다.

스스로 디즈니를 버렸듯이 주류 할리우드의 울타리에서 벗어난 라이언 고슬링은 연기 잘하는 배우로 성장했다. 그리고 2011년은 잊기 힘든 한해가 될 것이다. 대규모 예산이 투입된 코미디영화 <크레이지, 스투피드, 러브>에서 스티브 카렐과 호흡을 맞추며 큰 성공을 거두었고, 조지 클루니가 연출한 정치 스릴러 드라마 <디 아이즈 오브 마치>에도 출연했다. 심지어 이 영화의 포스터에는 <타임>에 실린 조지 클루니의 표지 사진과 라이언 고슬링의 얼굴을 절묘한 싱크로 담은 페이퍼 페이스가 사용됐다. 그리고 라이언 고슬링의 남성성을 재발견한 <드라이브>가 있다. 그의 다음 행보는 더욱 기대된다. 그는 <트리 오브 라이프>의 테렌스 맬릭 영화에 캐스팅됐다. 라이언 고슬링은 멜릭의 <무법자들>(Lawless)에서 크리스천 베일, 루니 마라와 함께 연기한다. 또 1940~50년대를 배경으로 한 루벤 플레셔의 범죄 드라마 <갱스터 스쿼드>에도 출연한다. 레픈 감독의 차기작 <온리 갓 포기브스>(Only God Forgives)에도 함께한다.

2011년 어느 것 하나 실패한 프로젝트가 없는 라이언 고슬링은 매우 영리한 배우다. 레픈 감독의 눈은 결코 틀리지 않았다. “나는 그동안 자동으로 조종되는 로봇처럼 살았다. 이제야 그러지 말았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지금까지 나의 역할에 대해 어떤 의견도 말할 수 없었다. 그때는 그게 좋은 생각인 줄 알았다. 하지만 그 생각은 틀렸다. 그렇게 되면 아무도 승리하지 못한다. 스튜디오도 지고, 관객도 지고, 나도 진다.” 진정한 승리의 법칙을 아는 그는 할리우드가 원하는 모든 걸 다 갖추었지만 과연 어떤 게 진짜인지 판단할 수 있는 배우다. 그는 다음에 디딜 곳이 어딘지 정확히 알고 있다. 라이언 고슬링은 결코 지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드라이브>에서 보여준 그 야릇한 미소는 우리를 모두 그의 편으로 만들어버렸다. 1960년대와 70년대가 스티브 매퀸을 가졌다면 2010년대는 라이언 고슬링을 맞이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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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판시네마(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