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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선] 영화배우? 탤런트? 난 배우다

<완벽한 파트너>로 17년 만에 스크린 복귀한 김혜선

김혜선이 17년 만에 복귀했다. <대장금>(2003), <왕꽃 선녀님>(2004), <소문난 칠공주>(2006), <조강지처클럽>(2007), <동이>(2010), <신기생뎐>(2011) 등 수많은 드라마를 통해 안방극장 시청자에게 얼굴을 내비쳐왔는데,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냐고? 김혜선이 <화엄경> <참견은 노, 사랑은 오예> 이후 오랜만에 영화에 출연했다는 것이다. <완벽한 파트너>에서 그는 요리연구가 ‘희숙’을 맡아 20살 어린 제자와 화끈한 로맨스를 펼친다. 데뷔 이래 처음으로 선택한 노출연기다. 억척스러운 엄마, 단아하고 세련된 중년 등 여러 드라마에서 구축한 자신의 이미지를 180도 뒤집는 어려운 결정이었다. 인터뷰 내내 그는 “나는 영화배우로 출발했다. 항상 영화에 목말라 있었다”라는 말을 힘주어 했다.

-영화가 야하더라. =지루하진 않았나?

-야하더라. 영화는 봤나. =현장 편집한 것만 봤다. 나도 저런 걸 할 수 있구나 싶더라. 매번 열중해서 찍어서인지 후회는 없다.

-시나리오가 마음에 들었다고. =40대 여성 요리연구가가 20대 제자와의 관계를 가지면서 영감을 받는다는 설정이 짜릿했다. 그간 했던 드라마에서 스승과 제자 관계는 많이 있었지만 이 영화처럼 연인 관계를 맺는 건 없었다. 신비로웠다.

-젊었을 때 연하남과 연애를 안 해봤나. =전혀. 그때는 남자가 당연히 나이가 많아야 한다고 생각되던 시절이었다. 두살 어린 남자와 연애하던 친구가 있었는데, 주변 사람들 전부 그 친구를 이상하게 쳐다봤다. 그런 시대에서 자랐던 까닭에 연하남을 남자로 생각해본 적이 한번도 없었다.

-경험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영화 속 설정이 외려 흥분됐을 것 같다. =어. 한살만 어려도 남자가 아닌 동생으로 생각하는데, 영화에서는 무려 20년 차이잖나. 호기심이 발동하더라. 실제로 할 수 없지만 있어서도 안되고, 가능한 일도 아니지만 영화에서만큼은 김혜선이라는 배우가 어떻게 행동할지 궁금하더라.

-바로 출연을 결정했겠다. =중간 중간에 좀 야하다, 어떤 배우가 어울릴까 생각만 하고 시나리오를 덮었다.

-왜? =벗는 걸 안 해봤으니까. 그런 생각 자체를 안 했다. 시간이 지난 뒤 감독님께서 ‘대본 준 지가 언제인데 답이 없냐’고 전화를 하셨다. 그러면서 나보고 ‘희숙’을 맡으라는 거다. 나보고 이걸 하래. 어쩜 좋아. 내가 (베드신을) 어떻게 찍는지 알아야 되는 거 아냐. 영화 속 베드신은 조리대, 분장실 등 전부 침대가 아닌 곳에서 이루어지는데, 그런 걸 안 찍어봐서 모른다고 하자 감독님께서 ‘누구는 그런 거 찍어봤냐’면서 ‘처음 찍는 사람끼리 만나서 잘해보자’고 하더라. 20여년 동안 연기를 해왔다. 지금까지 예쁜 연기를 했다면 이제는 40대로서 완숙한 여성을 보여줄 때가 됐다고 생각했다. 매번 비슷한 연기를 하다보니 획기적인 변신에 목말라 있기도 했고. 이슈가 되기 위해 벗는 게 아니라 40대 여성의 고민과 애환을 그리는 작품이라면 해볼 만하겠다 싶었다.

-그간 드라마에서 단아하면서도 억척스러운 엄마 역할을 주로 맡았다. 스스로 구축한 이미지를 뒤엎는 데 대한 부담감은 없었나. =출연은 결정했지만 잘할 수 있을까가 걱정이었다. 드라마 <조강지처클럽>에서 생선장수로 캐스팅됐을 때 방송국 국장님께서 미스 캐스팅이라고 하신 적이 있다. 단아한 역을 주로 맡은 김혜선이 과연 억척스러운 엄마 역을 소화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그런데 1, 2회를 보시고는 인정해주셨다. 이번에도 역시 젊은 남자를 만나면서 바뀌게 되는 여자, 이게 잘만 그려진다면 김혜선이라는 배우의 또 다른 가능성을 보여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나이 들면 그런 기회조차 안 생길 것 같더라.

-출연을 결정하자마자 체중 감량에 들어갔겠다. =여배우니까 아름답게 나와야 하는데 어떻게 할 것인가. 내가 예뻐져야겠더라. 그때 마침 운동을 하고 있었다. 사실 운동하는 걸 그렇게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할 때는 열심히 하는데 하기 전까지 귀찮아하고, 피곤하다는 핑계로 안 가기도 하고. 그런데 갑자기 목표가 생기니까 정말 열심히 했다. 동생과 함께 개인레슨 끊어서 두달 동안 독하게 했다. 덕분에 두달 동안 10kg 감량했다.

-몸매가 젊은 여배우 못지않게 아름답더라. =그렇지? 거봐. 40대가 되어야 진정한 여자로 거듭나는 거다. 그런데 남자들은 그걸 잘 몰라. 사실 나도 내 (벗은) 모습을 잘 모른다. 평소에 잘 보지 않잖아. 이번에 찍은 걸 보고 깜짝 놀랐다.

-<화엄경> <참견은 노, 사랑은 오예> 이후 17년 만의 스크린 복귀다. 그간 드라마에서만 활약했다. =결혼을 한 뒤 미국으로 건너갔다. 2년 반 정도 있다가 돌아오니 영화판이 바뀌었다. 알고 지내던 감독들은 어디로 갔는지 없고 젊은 감독들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었다. 매니지먼트 산업도 새로 생겨났고. 당시 나이가 30대 초반이었는데, 내 나이에 맞는 시나리오도 거의 없었다. 그러다보니 드라마를 먼저 하고 때가 되면 영화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1년, 2년, 3년 지나간 게 벌써 17년이 된 거다.

-중간에 영화 출연 제의가 한번도 없었나. =없었다. 나중에 친해진 감독님들께 여쭤봤다. ‘나는 연기를 쉬지 않고 하는데 영화감독들은 왜 나를 쓰지 않냐’고. 그래서 돌아온 대답이 영화감독들은 TV를 잘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주중 저녁 8시40분, 주말 저녁 9시40분에 드라마를 봐야 김혜선이라는 배우를 확인할 수 있잖나. 참 속상했다.

-배우 김혜선 정도의 위치가 되면 감독들을 알려고 하면 다 알 수 있지 않나. =등잔 밑이 어둡다고. 중이 제 머리를 못 깎는 것처럼 영화를 하고 싶다고 해서 영화사를 찾아가서 들이댈 수는 없는 노릇이다. <춤추는 딸>(1986)이라는 영화로 데뷔했다. 당시 17살, 고등학교 2학년 때다. 결혼하기 전까지 20대를 주로 영화계에서 보냈는데,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영화배우 김혜선’이었다. 그런데 최근까지 드라마에서만 주로 활동하다보니 언제부터인가 ‘탤런트 김혜선’으로 변해 있더라. 사실 탤런트와 영화배우는 큰 차이가 없는데, 그렇게 구분해서 부르는 게 싫다. 사실 나도 배우인데….

-오랜만에 간 영화현장은 어떻던가. =예전에는 영화현장이 거칠다고 생각했다. 버스 한대에 배우, 스탭 모두 함께 타고 다니고. 지금처럼 세트장도 없었고. 가족 같은 분위기였다. 그러나 집에 들어가지 못할 만큼 고생이란 고생은 다 하고, 마음이 참 안쓰러웠다. 반면 당시 드라마 현장은 깔끔하고 세트장도 있고 사람들은 전부 신사 같고. 어린 나이에 ‘내게는 역시 드라마가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오랜만에 영화현장에 가니 예전과 느낌이 또 다르더라.

-어떻게 다르던가. =세상을 살다보니 예전에 거칠게 느껴졌던 것들이 인간적으로 다가온다. 영화현장의 소박하고 가족 같은 분위기가 지금은 참 좋다. 항상 함께 모여서 회의하고, 대화하고.

-첫 촬영 기억나나. =한강 둔치에서 민수(김산호)와 키스하는 장면과 요리실에서 함께 와인을 마시는 장면이다.

-첫날부터 그런 장면을. =그것도 키스신부터 찍었다. 아무래도 내가 나이가 한참 많은 선배이다 보니 산호씨가 많이 얼어 있었다. 감독님도 ‘키스를 하든 뽀뽀를 하든 알아서 하세요’라고 하고. 어색할 수밖에 없는 분위기였다. 마음 편하게 먹고 그냥 해, 그냥 연인 사이야라고 얘기하면서 찍었는데 감이 오더라. 이런 식으로 하면 절대 영화가 나올 수 없다고. 다음 신을 위해 부천의 한 요리실로 장소를 옮겼다. 촬영 준비하는 동안 20분 동안 산호씨를 풀어줘야 했다. ‘나중에 시사회나 개봉할 때 우리 스스로 부끄러운 장면이 있으면 안된다. 그러려면 우리가 서로 부끄러워하면 안된다. 나를 두려워하지 말고 만지고 싶은 대로 해. 누나가 오케이할 테니까’라고 말했다.

-리드가 제법 능숙하다. 스스로는 안 떨렸나. 왜 안 떨렸겠나. =속으로 굉장히 떨렸다. 그러나 여자가 유혹하는 이야기잖아. 확 넘어오게끔 해야 하잖아. 또, 산호씨가 후배니까. ‘누나 이렇게 하시죠’라고 먼저 말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내가 먼저 풀어주지 않으면 그 친구가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거였다.

-하이틴 시절 찍은 사진을 보면 이슬만 먹고 살 것 같은 이미지인데. =…참이슬? (일동 웃음)

-얼마 전 두 번째 이혼 사실이 알려지면서 힘든 시기를 겪었다. =인생이라는 게 내 뜻대로 되는 게 아니구나. 그런 아픔을 겪고 싶어서 겪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거다. 살다보니 그런 경험을 또 한번 더 겪었다. 그게 어떤 사람들에게는 가십거리가 될 수 있겠지만 나는 열심히 살았다. 열심히 살았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면 그건 잘 선택한 거라고 생각한다. 그 점에서 후회하지 않는다. 그게 아픔이라면 아픔이지만 시련을 겪으면서 인생의 쓴맛을 느낀 것에 대해서는 배우로서 감사할 일이다. 배우는 간접적인 경험보다 직접적인 경험을 통해 내면이 많이 영글어지는 법이니까. 혼자 사시는 선배들도 많잖나. 그런 것들을 표현해낼 수 있는 것도 아픔을 겪었기 때문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한다. 하늘이 배우가 되라고 그런 시련을 준 게 아닐까라는 생각도 하고. 다행스럽게도 힘든 시기를 당당하게 이겨냈다. 지금의 아픔은 아무것도 아니다. 먼 훗날 우리 아이들에게 더 당당한 모습으로 섰을 때 아이들이 나를 안아줄 거라고 믿는다.

-영화와 드라마를 오가고, 피부미용 사업도 하며 바쁘게 지내는 지금은 외려 행복할 것 같다. =잠이 좀 부족하긴 해도 일하고 집에 들어가면 뭔가 보람되고 에너지가 풍부해진다. 일을 하면 잡생각이 없어지기도 하고. 내일을 향해 걸어가고 있구나라고 생각하면 또 행복하다.

-최근 방영하기 시작한 드라마 <내일이 오면>에서는 고두심으로부터 길용우를 뺏는 역할이다. =불륜녀도 안 해본 역할이다. <조강지처클럽>에서는 남편을 다른 여자에게 뺏겼다. 항상 뺏겨서 소주 마시면서 엉엉 우는 역만 했는데 이번에 제대로 빼앗는 거다. 욕을 먹더라도 제대로 욕먹으면서 즐겁게 연기하고 싶다.

-<완벽한 파트너>처럼 실제로 연하남과 연애하고 싶은 마음은 없나. =그런 마음이 생기기 시작했다. 좋은 사람이 있으면 얼마든지… 그런데 있겠나.

-아직 팔팔한 것 같다. 몇살까지 커버 가능한가. =나이는 상관없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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