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거짓으로 살던 사기꾼 필립(프랑수아 클루제)은 건설회사 직원으로 위장한 채 마을에 들어가 중단됐던 고속도로 공사가 다시 시작될 거라는 거짓말을 한다. 그의 지휘 아래 공사는 재개되고 한몫 챙기고 떠나려던 필립은 자신의 거짓말로 일자리와 희망을 되찾은 마을 사람들을 보며 고민에 빠진다. 그리고 생애 처음 찾아온 진실된 사랑이자 자신을 믿어주는 여시장 스테판(에마뉘엘 드보스)의 존재도 그를 머뭇거리게 한다. 그렇게 그 스스로 변해갈 즈음 그의 과거를 아는 옛 친구가 찾아온다.
이건 너무 덩어리가 큰 거짓말이다. 필립의 얘기에 마을 전체가 움직인다. 그런데 이것은 실화다. 2009년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된 <비기닝>은 무려 고속도로 공사로 사기를 친 남자의 이야기다. 얼핏 영화는 속고 속이고 종국에는 그것이 들통나 이전의 관계가 다시 제자리를 찾는 스릴러 구조처럼 느껴지지만 <비기닝>의 다른 점은 그것이 들통난 ‘이후’에 있다. 사기꾼은 끝까지 도로공사를 완수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고, 공사는 모든 규정을 준수했으며, 심지어 사기꾼은 개인적으로 어떤 이익도 챙기지 않았다.
말하자면 영화는 사건 자체(물론 그 자체로도 굉장히 흥미롭지만)보다 그로 인해 벌어지고 틀어지는 관계의 균열을 본다. 그런데 주인공을 비롯한 모든 사람들이 그 균열을 마치 반기는 것 같다. 선과 악이 분명한 이야기 안에서 이처럼 감동적이고 이상한 사기극은 처음이다. <마틴 기어의 귀향>(1982)에서 가짜 남편 행세를 했던 제라르 드파르디외가 반대로 필립의 정체를 아는 옛 친구로 등장하는 것도 묘한 즐거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