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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트와 너트가 튀는 로봇 복싱 액션
안현진(LA 통신원) 2011-10-18

스티븐 스필버그, 숀 레비, 휴 잭맨이 함께한 7년 프로젝트 <리얼 스틸>

7년을 기다렸다. 스티븐 스필버그가 총괄제작한 <리얼 스틸>은 그가 직접 챙겨온 몇 안되는 프로젝트 중 하나다. 빛나는 소년 배우가 합류하면서 속도가 붙기 시작한 영화는 마침내 관객과 만날 준비를 마쳤고, 공개된 예고편은 로봇 복싱 액션의 쾌감으로 가득하다. 감독 숀 레비, 주연배우 휴 잭맨, 복싱 컨설턴트로 참여한 전설의 복서 슈거 레이 레너드의 LA 현지 인터뷰를 전한다.

할리우드 스포츠영화의 공식 첫 번째, 주인공의 승리하는 순간이 빛날 수 있도록 그의 인생이 나락까지 떨어질 필요가 있다. 공식 두 번째, 보통은 짐이지만 꼭 필요한 순간에 힘이 되는 가족이 곁에 있어야 한다. <박물관이 살아있다!>시리즈의 감독 숀 레비가 메가폰을 잡고, <슈퍼 에이트> <카우보이 & 에이리언> <트랜스포머3> 등 2011년 한해 동안 왕성한 제작활동을 보여주고 있는 스티븐 스필버그가 총괄제작한 영화 <리얼 스틸>은 스포츠영화의 공식에, 어린아이의 눈높이로 세상을 보는 스필버그식 가족영화의 특징을 잘 조합해 만들어낸 잘 빠진 영화다. 이를테면 디자이너의 컬렉션처럼 감각적이거나 난해하지는 않지만 누가 입어도 편안하게 잘 소화할 수 있는 기성복 같은 그런 영화랄까.

<리얼 스틸>의 시간적 배경은 2020년이다. 휴대폰이나 PC가 잘빠진 모양새를 뽐낼 뿐 지금과 특별히 다를 것 없는 2020년의 풍경에서 두드러지는 것은 사람이 조종하는 로봇이 링 위에서 펼치는 로봇 복싱이다. 로봇 복싱은 WRB(World Robot Boxing)라는 공식 리그를 가진 인기 스포츠다. 사람이 하는 경기에서 피와 땀이 흘렀다면 로봇의 경기는 볼트와 너트가 튀고, 산산조각이 난 패자가 링 위에 쓰러진다. 찰리 켄튼(휴 잭맨)은 한때 신문 1면을 장식했던, 앞날이 기대되는 복서였지만 지금은 복싱용 로봇을 조종하는 핸들러가 되어 전국을 떠도는 신세다. 공식리그 경기에 로봇을 올릴 형편 또한 안돼 지방 서커스를 전전하며 로봇과 황소를 대결시키는 그는 밑바닥 중에서도 밑바닥 인생이다. 경기 중 잠시 한눈을 파는 사이 황소의 뿔에 찔려 다리와 팔을 잃은 로봇을 추스르고 빚쟁이를 피해 도망치던 날, 찰리의 인생에 새로운 국면이 찾아온다. 11년 전 태어난 뒤로 한번도 만난 적 없었던 아들 맥스(다코타 고요)를 여름 동안 맡게 된 것이다.

예상했겠지만 11년 만에 처음 만난 부자 사이는 서먹하고 냉랭하다. 찰리는 맥스에게 잘해줄 의도가 없고, 11살이라 두 주먹으로 어른의 가슴을 두드릴 뿐 달리 방도가 없는 맥스도 울며 겨자 먹기로 찰리 곁에 있는다. 티격태격 지지 않으려는 두 사람의 유일한 공통분모는 로봇 복싱인데, 링에서 멀어진 뒤 감이 떨어진 찰리의 계획없는 경기가 맥스의 눈에는 실망스럽기만 하다. 그렇지만 부자간의 유대가 형성되는 것도 로봇 복싱을 통해서다. 맥스를 돌보기로 하고 받은 거액으로 마련한 최신형 로봇 ‘노이지 보이’를 경기에서 잃은 밤, 찰리는 맥스를 데리고 로봇 부품을 훔치려고 고물처리장에 숨어들어간다. 어둠 속에서 낭떠러지에 발을 헛디뎌 미끄러진 맥스는 구사일생으로 쓰레기 더미에 묻힌 로봇의 팔에 옷이 걸려 목숨을 구하고, 맥스는 그 로봇을 닦고 고쳐 쓸 만하게 만든다. 링 위를 점령한 최신형 스타 로봇들과 달리 인간에 가까운 모습으로 만들어진 1세대 로봇 ‘아톰’은 그 뒤 맥스의 가장 친한 친구가 된다. 그리고 불법 경기장보다도 더 밑바닥인 ‘동물원’에서 벌어지는 경기에서부터 시작해, 아톰은 한 단계 한 단계 더 좋은 링으로 승리를 이어간다. 곧 아톰과 맥스는 로봇 복싱 리그에서 유명해지고, ‘리얼 스틸’이라고 부르는 공식 챔피언십 경기에서 챔피언인 제우스와 맞붙는 기회를 얻는다.

<리얼 스틸>은 1960년대 미국에서 만들어진 TV시리즈 <환상특급>의 에피소드 중 한편인 <스틸>에서 ‘로봇 복싱’이라는 설정을 빌려왔다. 1956년 <The Magazine of Fantasy and Science Fiction>에 리처드 매드슨이 발표한 단편소설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스틸>은, 인간이 링 위에 오르는 것이 금지되고 인간의복싱경기를 로봇이 대신하는 1974년의 미래에, 복싱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된 전직 복서가 로봇으로 분장하고 링 위에 오른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러닝타임 22분의 TV시리즈 에피소드와 <리얼 스틸>이 만나는 지점은 거기까지다. <스틸>이 휴머니티를 이야기하기 위한 방편으로 SF라는 형식을 빌려왔다면 <리얼 스틸>은 SF와 액션은 줄이고 휴머니즘을 강조한다. <리얼 스틸>은 드림웍스가 2008년 파라마운트와 결별한 뒤 디즈니에 새 둥지를 틀 때, 스필버그가 직접 챙겨온 몇 안되는 프로젝트 중 하나였다. 영화화 논의가 시작된 뒤부터 7년이 지나서야 감독 숀 레비의 손에서 관객과 만날 준비를 마쳤다.

인터넷을 통해 영화의 예고편을 미리 만난 사람들은, <트랜스포머> 시리즈의 후광을 입으려는 영화로 <리얼 스틸>을 오해할 소지가 있다. 그만큼 영화가 예고편을 통해 공개한 부분은 로봇 복싱에서 보여주는 액션에 집중되어 있다. 하지만 <리얼 스틸>은 언더독의 칠전팔기를 그려낸 스포츠영화라고 보는 것이 적당하고, 가족(관람이 가능한)드라마로서도 부족한 점이 없다. 액션의 주인공이 로봇이라는 점 때문에 <트랜스포머> 시리즈와의 비교를 피할 수 없겠지만 로봇의 사이즈와 기능, 디자인 등을 일일이 따져보지 않아도 <리얼 스틸>의 로봇들은 덜 세련된 대신 친숙하게 다가온다. “로봇 복싱이 막 시작됐을 무렵, 사람들은 로봇이 사람처럼 보이기를 원했지. 그리고는 모든 게 바뀌었단다.” 아톰을 발견한 맥스가, 로봇이 너무 작다고 놀랄 때, 찰리는 이렇게 답한다. 찰리와 맥스에 이어 <리얼 스틸>의 세 번째 주인공인 아톰은, 기계미를 과시하는 변신로봇이 아니다. 찢어진 철망 마스크를 용접한 자국이 마치 웃는 얼굴처럼 보이고, 핸들러의 행동을 그대로 따라하는 섀도 기능을 가진 ‘사람을 닮은 로봇’이다.

그리고 이 로봇을 믿는 소년 맥스는 <리얼 스틸>의 마법이다. 영화를 본 사람들이라면 그 마법이 맥스를 연기하는 소년 배우 다코타 고요에게서 나온다는 사실을 부정하기 힘들 것이다. 다코타 고요는 숀 레비가 감독으로 참여하기 전부터 시작된 지난한 캐스팅 과정에서 발견되지 않았던, <리얼 스틸>의 보물이자 프로젝트를 가동시킨 마지막 열쇠였다. 괜찮은 후보가 나타날 때마다 제작진은 스필버그의 OK를 기다렸지만 스필버그는 계속해서 조금 더 기다리자며 끈질기게 적임자를 기다렸다. 그리하여 감독도 휴 잭맨도 지칠 만큼 지쳤을 때 나타난 캐나다 출신의 고요는 스필버그의 완전한 신임과 함께 <리얼 스틸>에 승선했고, 영화는 마법을 얻었다. 숀 레비는 <리얼 스틸>에서 아톰을 향한 맥스의 신뢰가 드러나는 세 장면을 꼽으며 “마법 같은 순간”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 세 장면이 관객에게 통한다면 내가 이 영화를 제대로 연출한 것”이라는 자신감도, <리얼 스틸> 이후가 더 기대되는 이 소년에게 빚진 구석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이 반짝거리는 소년 배우를 만날 기회는 얻지 못했지만 2011년 9월25일, 감독 숀 레비, 휴 잭맨, 그리고 본인을 연기했던 <파이터>에 이어 복싱 컨설턴트로 <리얼 스틸>에 참여한 전설의 복서 슈거 레이 레너드를 만났다. 그날 나눈 이야기의 일부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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