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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의 섬세한 관찰력으로 그려낸 한 부부의 상처 <흉터>
송경원 2011-10-12

흉터. 상처가 머물렀던 자리. 2009년 <채식주의자>로 주목받았던 임우성 감독의 신작 <흉터>는 한 여성의 내면의 상처와 그 치유 과정을 감각적으로 그려낸 영화다. 흉터는 상처의 기억, 아니 어쩌면 상처가 쉬어야 할 곳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대개 상처를 제대로 아물게 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덕분에 상처는 아문 뒤에도 선명한 흔적을 남기고, 상처의 기억에 ‘흉’(凶)이라는 살벌한 표현을 쓸 만큼 어딘지 부끄럽고 혐오스럽다. 이쯤 되면 그 흉터가 왜 생겼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것이 여전히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것, 때문에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제대로 아물 수 없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흉터>는 각기 다른 상처를 지닌 부부의 삐걱대는 일상을 통해 이제는 흉터가 되어버린 상처의 풍경을 그린다.

아나운서 상협(정희태)은 완벽주의자다. 사소한 말실수에도 밤새 분한 마음을 삭이지 못한 채 실수를 곱씹는 그는 한치의 흐트러짐이 없다. 세 가지 다른 칫솔을 사용할 만큼 심한 결벽증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어릴 적 사고로 몸에 큰 흉터가 있는 상협은 자신의 상처를 온전히 보듬어줄 수 있는 사랑을 갈망한다. 한편 아내 선희(박소연)는 감정이 메마른 것처럼 보이는 여인이다. 어릴 적부터 엄격한 통제 속에 자란 그녀는 스스로 감정을 표현하고 교감하는 데 서투르다. 같은 공간에 있으면서도 다른 곳을 바라보는 두 사람의 결혼 생활은 살얼음을 걷는 것처럼 불안하다. 어느 날, 상협의 여자친구라 밝힌 여인에게 집으로 전화가 걸려온다. 외도를 숨기려고도 하지 않는 상협과 그런 상협에게 질문도, 원망도, 다그침도 없는 선희. 선희가 꾹꾹 눌러담으며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할수록 두 사람 사이의 균열은 걷잡을 수 없게 된다.

한강 소설집 <내 여자의 열매> 중 <아기부처>를 원작으로 한 <흉터>는 59회 산세바스티안국제영화제 경쟁부문 초청작으로 선정되었다. 예술성 짙은 작은 규모의 영화들이 쉬이 범하는 오류는 스스로의 미학적 양식에 천착하며 관객과의 교감에 실패한다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흉터>는 비교적 성공적이다. 60분 남짓의 짧은 러닝타임과 역동적인 사건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충분한 몰입과 설득력, 깔끔한 마무리가 인상적이다. <채식주의자>에 이어 다시 한강 소설을 각색한 임우성 감독은 사실주의적 묘사나 형식주의적 기교 등의 미학적인 욕심을 부리지 않는 대신 인물들의 작은 흔들림을 놓치지 않고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데 집중한다. 감독의 섬세한 관찰력은 일상의 풍경에서 균열이 일어나는 지점을 확실히 짚어내고, 배우들의 호연은 이를 확실히 화면으로 전달하며, 영화는 때때로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과감히 무너뜨리는 것도 서슴지 않는다. 일견 구태의연한 주제에 안일한 구성처럼 보일 수도 있어 상업적인 한계는 분명하지만 목표지점에 분명히 도달하는 안정감이 있다. 무표정도 표정이다. 그것은 표정이 없는 것이 아니라, ‘없는’ 표정이다. 이 영화가 내면의 상처를 그려내고 보듬는 방식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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