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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톡] 인권침해는 개인의 삶 1분 1초에 숨어 있다
남민영 2011-09-20

<씨네21>과 CJ CGV 무비꼴라쥬가 함께하는 아홉 번째 시네마톡: <숨>

<>은 제목처럼 한 여자의 숨소리를 따르는 영화다. 전주에서 로컬영화를 찍어왔던 함경록 감독은 전북 김제시에 위치한 ‘기독교 영광의 집’에서 벌어진 사건에서 모티브를 얻어 첫 장편영화를 완성했다. 이미 여러 해외영화제에 초청되며 주목을 받았고 제35회 브뤼셀유럽영화제 황금시대상과 제4회 시네마디지털서울 버터플라이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추석 연휴를 앞둔 9월9일 오후 7시 CGV대학로에서 함경록 감독의 <>과 함께하는 아홉 번째 시네마톡이 열렸다. 김영진 영화평론가와 함경록 감독, 그리고 <씨네21> 강병진 기자가 참여했다.

장애인들에게 가한 성폭력 문제와 횡령 등으로 충격을 주었던 실제 사건은 시사고발 프로그램을 통해 이미 다뤄진 바 있다. 거대한 음모와 충격적인 진실을 함경록 감독은 어떻게 영화화했을까. 의외로 <>은 사건의 실체를 파헤치기보다는 사건 속에 놓인 장애여성 수희의 내면을 바라보고 있다. 수희는 어려서 복지시설에 맡겨져 그곳에서 성인이 될 때까지 자란 여자다. 같은 시설에 있는 장애인들보다 비교적 장애가 덜한 수희는 청소부터 다른 장애인들을 목욕 시키는 일까지 하며 잡부처럼 살아가고 있다. 쉴 틈 없이 고단한 일과지만 같은 시설에 있는 민수와의 연애로 수희는 일상의 고단함을 잊고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그러던 어느 날 수희가 임신을 하면서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번진다. 임신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수희는 보호란 이름 아래 그녀의 의지와 상관없이 다른 시설로 옮겨가게 된 것이다. 그러나 그곳에서도 수희의 의사와는 상관없는 일들이 벌어지면서 수희는 혼란에 빠진다.

장애여성이 연기한 장애인

함경록 감독은 수희 역에 실제 장애여성인 박지원을 캐스팅했다. 이날 대화의 가장 큰 관심이 그녀에게 향한 것도 당연했다. 연기는 처음이지만, 그녀가 없는 <>은 생각하기 힘들 정도이기 때문이다. 김영진 평론가가 캐스팅의 뒷이야기를 묻자, 함경록 감독은 “시나리오를 쓰면서 막연히 작고 가녀린 여성이었으면 하고 생각했는데 지원씨가 그 모습과 딱 맞아서 처음에는 연기 지도를 부탁했었다”고 말했다. “영화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데, 이야기를 듣는 지원씨의 리액션이 마음에 들었다. 대뜸 주연을 맡아달라고 부탁했다. 그래놓고는 연기 경험도 없는 사람한테 괜한 말을 했나 싶어 바로 후회했다. 지원씨도 처음에는 거절하더라. 참 다행이다 생각했다. (웃음) 근데 말을 꺼낸 지 10분 뒤에 터벅터벅 걸어오더니 ‘나 할래’ 하더라. 그때의 발소리나 목소리까지 내가 생각한 영화의 마지막 장면 속 수희와 굉장히 비슷해 같이 영화를 찍게 됐다.” 장애여성이 장애인을 연기하면서 <>에는 사실적인 디테일을 살릴 수 있는 이점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를 찍는 과정은 만만치 않았다. 함경록 감독은 준비과정에서 겪은 고충들을 얘기했다. “수희와 지원씨는 장애여성이란 공통점이 있지만 자란 환경이 완전히 달랐다. 영화 속 수희는 시설에서 자랐지만 지원씨는 가정에서 자랐고 대학생이며 여성인권운동가로 활동하는 사람이다. 그런 지원씨가 수희의 입장에서 행동하고 혹은 수희의 생각에 동화되어가는 과정이 가장 힘들었다.”

<숨>의 함경록 감독.

이어 대화의 초점은 실제 사건과 영화의 관계에 맞춰졌다. 강병진 기자는 “실화를 가지고 영화를 만들었지만 이 영화에서 사건은 배경에 불과하고 오히려 수희의 내면을 따라간다. 여자의 내면을 따라가면서 사건을 배경으로 넣은 점이 궁금하다”라고 물었다. 이에 함경록 감독은 “내가 원하는 것은 커다란 사건이나 음모가 아니었다. 인권유린이나 인권침해가 커다란 사건에만 있는 게 아니라 개인의 삶 1분 1초에도 숨어 있다고 생각했다”고 답했다. 취재과정에서 사건을 좀더 자세히 알게 되면서 겪은 일화도 덧붙였다. “<>을 장르영화로 만드는 걸 포기했는데도 실제 사건이 굉장히 거대했다. 각색가와 스릴러로 만들면 어떨까 고민도 했다. 그런데 클라이맥스가 있는 강렬한 영화였으면 아무리 잘 그린다고 한들 수희라는 인물이 관객에게 깊게 박히진 않았을 것 같다. 그래서 실화에 있는 극적이거나 자극적인 부분을 제외하고 일상적인 부분으로 시나리오를 구성했다.”

<>은 사건이나 상황을 규정짓지 않고 분위기나 뉘앙스로 이야기를 흘리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다소 모호하게 보이는 부분이 많은 것도 그 때문이다. 이날 시네마톡에서는 김영진 평론가와 강병진 기자 외에도 대화를 지켜본 관객이 영화에 숨겨진 이야기들을 묻고 답했다. ‘수희의 아기는 누구의 아이인가’에서부터 시작된 논의는 목사 부부의 아들인 영권이라는 캐릭터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갔다. 강병진 기자가 “목사의 아들로 나오는 영권은 나쁜 인물처럼 보이는데 갑자기 수희의 걸레를 짜주기도 한다. 그 장면에서 이 사람은 조금은 괜찮은 사람 아닐까란 생각이 들었다”라 말하자 함경록 감독이 의외의 얘기를 들려줬다. “개인적으로 영권은 애착이 가는 인물이다. 그 사람이 가끔은 착할 것이란 상상과 젊은 나이에 그곳에 갇힌 기분, 그가 가진 아버지에 대한 불만들이 떠오르더라. 영화에 방해가 되지 않게 걸레를 짜주거나 수희의 가슴을 쿡쿡 찌르는 장면으로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뉘앙스를 주고 싶었다.” 극중의 장애인에게 시설원장이 주사를 놓는 장면에 대한 질문도 나왔다. “누워 있던 여자는 영화에서 가장 예쁜 여자다. 그래서 영권이 가장 먼저 취했을 것 같은. 어느 날 수희와 그녀 두 여자의 상태를 봤더니 둘 다 임신을 한 것이다. 그래서 수희는 결혼을 시키려 하고 남은 한 명은 흔적이 남으면 안되니 자궁적출수술을 시켰다고 하더라. 그래서 주사를 맞는 장면이 들어갔다.”

약자의 작은 ‘숨’소리에도 귀기울이는 미덕

여러 가지 질문들로 분위기가 무르익었을 즈음 시네마톡은 김영진 영화평론가의 정리로 문을 닫았다. “<>의 가장 좋은 점은 감히 수희를 불쌍하게 보지 않았다는 것이다. 수희는 상황적으론 불행해 보이지만 자기를 수직적으로 내려다보는 시선에 굴하지 않는 여성이다. 분명 우리를 움직이게 만드는 미덕이 있지 않나 싶다.” 그의 말처럼 <>은 보호의 명분으로 약자를 휘두르지 않고, 그들의 가장 작은 ‘숨’소리에 먼저 귀 기울인 영화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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