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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할리우드 여전사 시대 - 여성성을 버리다
김도훈 2011-09-08

<글로리아>

<에이리언>

할리우드에서 진정한 여전사의 등장은 리들리 스콧의 <에이리언>(1979)과 존 카사베츠의 <글로리아>(1980)부터다. 사실 리들리 스콧의 <에이리언>에서 리플리는 여전사라기보다는 강인한 생존자에 가까웠다. 그녀가 여전사의 지위를 획득한 것은 7년 뒤에 제작된 제임스 카메론의 <에이리언2>(1986)다. 그렇다면 존 카사베츠의 <글로리아>에 첫 번째 현대적인 여전사 영화의 지위를 부여하는 게 마땅할지도 모른다. 이 냉혹한 갱스터영화에서 지나 롤랜즈는 이웃집 소년을 보호하기 위해 마피아와 한판 승부를 벌이는 여자를 연기했다. 이전까지만 해도 갱스터 장르에서 여자는 담배를 근사하게 피우는 팜므파탈에 만족해야만 했다. <글로리아>는 모든 걸 바꿔놓았다. 여자도 총을 들 수 있고 남자들의 도움 없이 남자와 대결할 수도 있다. 이 당연한 사실을 할리우드는 <글로리아>에서 거의 처음으로 발견한 셈이다.

<아바타>

이후 여전사 캐릭터를 할리우드에 단단하게 뿌리내린 가장 거대한 공신은 제임스 카메론이다. 그의 영화에서 여자들은 결코 자동차 뒷좌석에 얌전히 앉아서 구원을 기다리지 않는다. <에이리언2>의 리플리, <터미네이터2: 심판의 날>의 사라 코너, <트루 라이즈>의 헬린, <타이타닉>의 로즈, <아바타>의 네이티리는 물론 <어비스>의 린지 역시 능동적으로 위기에 대응하는 일종의 여전사 캐릭터다. 제임스 카메론이 이토록 여전사 캐릭터에 집착하는 이유를 그의 두 번째 부인이었던 제작자 게일 앤 허드는 이렇게 설명한다. “카메론은 여자 캐릭터들이 SF, 액션, 판타지 장르에서 충분히 활용된 적 없다고 생각했다. 남자 액션 히어로를 통해 탐구할 수 있는 영역은, 여자 캐릭터를 통해서라면 더욱 풍요롭게 탐구할 수 있다고 여겼다.” 물론 우리는 카메론의 여전사 애호증에서 남자들이 여전사 캐릭터를 좋아하는 복잡하고 정신병리학적인 이유를 굳이 파헤칠 수도 있으리라. 여전사를 존경하면서도 동시에 성적으로 매혹 당하는 남자들의 속성 말이다. 카메론은 자신의 영화를 제작한 80년대 할리우드의 여장부 게일 앤 허드와 두번 결혼했고, 이후에는 사라 코너 역을 맡은 린다 해밀턴과도 결혼했다.

어쨌거나 제임스 카메론이 이끈 할리우드 여전사 시대가 80년대에 시작됐다는 사실은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서구의 80년대는 ‘파워우먼’의 시대였다. 가부장제는 60년대와 70년대를 통과하면서 힘을 잃었다. 여성들은 남성들의 영역으로 침투해 들어갔고, 스스로 자립할 수 있는 경제적, 육체적 능력을 획득하는 데도 성공했다. 여성경관이 등장하는 캐스린 비글로 감독의 <블루스틸>(1990)은 이런 시대적 변화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여전사 영화 중 하나다. 그러나 80년대의 여전사들은 여전히 어떤 한계를 지니고 있었다. 리플리가 화염방사기를 들고 퀸에일리언에 도전했던 이유는 딸에 가까운 소녀를 구하기 위해서였다. 사라 코너가 기관총을 든 이유는 아들인 존 코너를 구하기 위해서였다. 그녀들을 움직이는 힘은 모성애였다. 게다가 레이건 시대의 압도적인 남성주의는 여전사들에게도 남자의 육체를 강요했다. <코난>(1981)에서 아놀드 슈워제네거와 맞짱을 뜬 여전사 그레이스 존스를 생각해보라. 직장의 여인들이 남자들의 어깨에 대항하기 위해 파워 숄더 재킷을 입었듯이, 영화 속 여전사들은 여성성을 버리고 남성의 몸을 입었다. 전사가 되기 위해서는 여성임을 포기해야 하는 시대였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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