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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운성의 시네마나우] 주목할 만한 재능

테오 앙겔로풀로스의 뒤를 이을 그리스 시네아스트, 요르고스 란티모스와 아티나 라켈 창가리

아티나 라켈 창가리의 두 번째 장편 <아텐버그>.

올해 베니스영화제 경쟁부문은 이미 명성을 얻은 거장들과 최근 주목받고 있는 신진들의 작품으로 가득한데, 특히 지난해에 이어 그리스영화 한편이 또 초청되어 눈길을 끈다. 바로 요르고스 란티모스의 세 번째 장편 <알프스>로 란티모스는 (치기어린 영화적 표현들이 간혹 거슬리긴 하지만) 통렬한 유머로 가득한 전작 <송곳니>(2009)로 칸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 대상을 수상하며 국제적 관심을 끌었던 인물이다. 한편 지난해 베니스 경쟁부문에 초청되었던 그리스영화는 <송곳니>와 <알프스>에 프로듀서로 참여한 여성감독 아티나 라켈 창가리의 두 번째 장편 <아텐버그>였는데 이 작품은 켈리 리처드의 <믹의 지름길>과 더불어 경쟁부문의 가장 뛰어난 작품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는 데 그치고 말았다(어이없게도 심사위원장이었던 타란티노는 소피아 코폴라의 가망없는 소녀 취향의 영화 <섬웨어>에 황금사자상을 안겨주었다). 최근 그리스영화의 조용한 부상에 주목하는 평자들은 <범죄의 재구성>(1970)으로 데뷔한 이래 40여년간 그리스영화를 (거의 유일하게) 대표해온 테오 앙겔로풀로스의 뒤를 이을 인물로 란티모스와 창가리를 꼽곤 한다. 하지만 정작 본인들은, 특히 창가리의 경우, 기존의 그리스 영화계와 무관하게 독립적으로 활동해왔으며 심지어 그리스영화라는 호명 자체를 의심스러운 것으로 간주한다는 점이 흥미롭다. 굳이 말하자면 그들의 영화는 “푸른 하늘이나 지붕 위에서 춤추는 사람들이 등장하지 않는… 새로운 양식의 그리스영화”이자 반(反)민속적인 영화이며, 종종 그리스와 결부되는 새하얀 벽 따위가 등장한다 해도 어디까지나 패러디의 소재로, 프렌치키스를 연습하던 두 여성이 별안간 동물적인(animalistic) 결투에 돌입하는 당혹스러운 순간의 배경으로만 소용 닿을 뿐(<아텐버그>)인 것이다.

만일 창가리가 그녀의 두 번째 장편을 조금만 더 일찍 내놓았더라면 적잖은 평자들이 주저없이 그녀를 21세기 첫 10년의 가장 중요한 신인 가운데 하나로 꼽았을지도 모른다. 외견상으론 SF적 설정이 가미된 로드무비지만 슬랩스틱 코미디, 여행기, 편지, 에세이영화와 아방가르드의 전통이 자유분방하게 뒤섞인 독특한 데뷔작 <고잉의 슬로 비즈니스>(2000)를 보고 있노라면 그런 추측은 거의 확신에 가까운 것이 된다. “멕시코시티에서 그리스로 향하는 비행기에서 태어난” 페트라 고잉은 향수를 자극하는 기억의 다운로드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의 직원으로 기억의 소재가 될 경험을 위해 세계 곳곳을 누비는 에이전트다. 말하자면 움직이는 인간 하드드라이브다. 데뷔작임에도 감히(!) “사무엘 베케트, 버스터 키튼, 로버트 프랭크, 크리스 마르케, 로베르 브레송 그리고 짐 자무시에게” 헌정된 이 작품에서 창가리는 그 영향의 무게에 전혀 짓눌림 없이 오히려 그 모두를 성큼성큼 가로지르며 독특한 유목적 영화를 직조해내는 놀라운 솜씨를 보여준다. 하지만 19살에 그리스를 떠나 줄곧 미국에서 살았던 창가리가 그녀의 첫 그리스영화를 만들기까지는 10년의 세월이 더 필요했다. 2004년 아테네올림픽 개·폐막식의 영상 프로젝션 및 비디오 기록을 담당했던 그녀는 2005년에 자신의 영화사를 설립했고 아테네에서 폭동이 일어난 2008년 12월에 <아텐버그>의 시나리오를 썼다. 완성된 영화에서, 브레송의 유산은 창가리의 손을 거쳐 안티휴머니즘적인 동시에 인류학적인 시네마토그래프의 미학으로 정련되어 거기서 비롯된 영화적 시선 자체가 그녀가 오늘날의 그리스에 취하는 정치적 입장이 되고 있다. 그 시선은 좁게는 그리스적인 것, 좀더 넓게는 ‘~적인 것’ 일반을 의심하는 철저하고 또 과격한 시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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