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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수효과와 배우의 미래를 보라
김도훈 2011-08-23

어쩌면 <혹성탈출: 진화의 시작>은 특수효과와 배우의 미래에 대한 개념을 송두리째 흔들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우리는 퍼포먼스 캡처와 디지털 캐릭터의 시대가 전통적인 배우의 존재 가치를 약화시킨다는 오해로부터 벗어날 필요가 있다. 주인공 시저는 심지어 영화에 등장하는 배우들보다 더 섬세하고 풍요로운 연기를 보여준다. 시저가 앤디 서키스라는 훌륭한 배우의 연기를 온전하게 간직하고 있는 덕분이다. 앤디 서키스는 말한다. “실제 세트장에서 촬영을 하면서 동시에 캡처가 이루어졌다. <반지의 제왕>이나 <킹콩> 때는 세트장에서 촬영한 다음에 모션 캡처 스튜디오에 가서 같은 연기를 또 반복해야 했다. 이번에는 모든 것이 한번에 이루어졌기 때문에 제임스 프랑코와 감독, 그리고 나 사이에 감정의 교류가 즉석에서 효과적으로 일어났다. <반지의 제왕>이나 <킹콩> 때는 모션 캡처 스튜디오에서 일부러 노력해야만 만들어지는 감정이나 현장감을 배우와 현장에서 그대로 살릴 수 있었던 것이다.” 퍼포먼스 캡처는 진화하고 있다. 이제 배우의 감정을 그대로 디지털 캐릭터로 옮겨심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배우가 현장에서 감정적인 연기를 해내는 것 역시 가능해졌다. 내년 오스카에서 앤디 서키스가 연기상 후보에 오르는 모습을 보는 건 시기상조겠지만, 적어도 이 영화 이후 논쟁은 더욱 격해질 게 틀림없다.

<혹성탈출: 진화의 시작>은 <트랜스포머3>의 정확한 반대말이다. 여기에는 휘황찬란한 CG의 공력을 과시하며 관객의 망막을 공격하고 윽박지르는 대신 배우의 연기, 시나리오와 함께 공명하는 테크놀로지가 있고, 불특정 대다수의 관객을 만족시키기 위해 수많은 조연 캐릭터와 코미디를 억지로 집어넣는 대신 순수한 원형적 서사를 간결하고 뚝심있게 밀어붙이는 힘이 있다. 이야기의 결을 희생하지 않도록 (지금 할리우드의 가장 거대한 돈줄인) 3D 효과를 애초에 포기한 것도 칭찬할 만하다. 심지어 <혹성탈출: 진화의 시작>은 자신들을 학살하려는 인간에 대항하면서도 무자비한 살생을 자제하는, 인간보다 더 인간의 이상형에 가까운 유인원들이 성공적으로 첫 번째 혁명을 완수하는 클라이맥스로 막을 내린다. 우리가 이토록 용맹한 주제의식과 결말을 밀어붙이는 여름영화를 마지막으로 목도한 게 대체 언제였던가. 기술과 이야기의 놀라운 균형을 보여주는 이 혁명적 원숭이영화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가 꼭 3D와 CG의 만화경을 앞세운 테마파크 놀이기구일 필요는 없다는 걸 다시 한번 상기시킨다. <혹성탈출: 진화의 시작>은 크리스토퍼 놀란의 <다크 나이트>와 함께 21세기 블록버스터의 진화를 상징하는 고전 중 하나로 남을 것이다.

속편은 어떤 이야기가 될까?

*스포일러 경고! <혹성탈출: 진화의 시작>은 인간 사이에서만 전염되는 바이러스가 전세계로 퍼져나간다는 걸 암시하며 끝난다. 그렇다면 속편은 바이러스로 멸종 위기에 몰린 인간과 진화한 유인원의 본격적인 전쟁을 다룰지도 모른다. <혹성탈출: 진화의 시작>의 비평, 흥행적 성공 덕에 속편이 만들어질 건 틀림없는 일이다.

감독 루퍼트 와이어트는 최근 인터뷰에서 속편의 아이디어 두 가지를 미리 공개했다. 하나는 ‘유인원 버전의 <풀 메탈 자켓>’이다. “이번 영화로부터 8년 정도 지난 미래를 배경으로, 인간과의 본격적인 투쟁에 돌입하고는 진정한 공포를 느끼는 유인원들의 이야기로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마치 (<풀 메탈 자켓>에서) 어린 나이에 전쟁에 참여한 젊은 군인들의 이야기처럼 말이다.”

또 하나는 ‘본격적인 묵시록’이다. “도시를 정복한 유인원들이 인간들의 환경에서 살아가면서 우리의 문화를 이해하고, 그걸 통해서 진화해가는 과정을 다룰 수도 있다. 아마도 인간들은 바이러스를 피해서 지하에서 살아가고, 지상으로 올라오려면 가스 마스크를 써야 할 것이다. 아마도 그게 인간들을 더욱 비인간적으로 만들지도 모른다.”

물론 이 모든 건 감독의 머릿속에서만 존재하는 이야기들이다. 실제로 만들어질 속편은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게 될지도 모른다. 한 가지 분명한 게 있다면 속편은 <혹성탈출: 진화의 시작>보다 훨씬 거대하고 어두운 영화가 될 거라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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