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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다큐는 픽션보다 짜릿하다
김용언 2011-08-17

EBS국제다큐영화제 8월19일부터 25일까지

<그린 웨이브>

때때로 픽션이 현실보다 거대할 수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현실은 픽션을 압도한다. 픽션은 현실로부터 인물과 시공간과 신비스러운 우연의 결과물들을 빌려올 따름이다. 그같은 현실을 기반으로 한 다큐멘터리를 사랑하는 관객이 누리는 축제, EBS국제다큐영화제(www.eidf.org)가 올해로 8회를 맞았다. 엄선된 51편의 다큐멘터리가 8월19일부터 25일까지, EBS SPACE와 롯데시네마(건대입구), 아트하우스 모모에서 상영되며 EBS 채널을 통해서도 하루 평균 8시간 방송된다.

축구팬이라면 <두명의 에스코바르>를

<두명의 에스코바르>

국가라는 거대한 단위를 조망할 수 있는 다각도의 단서들은 실로 다채롭다. 알리 사마디 아하디의 <그린 웨이브>는 자파르 파나히 감독을 비롯한 진보 인사들과 예술인들이 쉴새없이 불법 구금되는 이란의 현 상황을 이해할 수 있는 훌륭한 예다. <그린 웨이브>는 2009년 6월12일 이란의 대통령 선거를 둘러싸고 벌어진 ‘녹색 혁명’을 다룬다. 지난 4년 동안 보수정권이 ‘재앙’에 가까웠다며 이번에야말로 정권교체를 이루려는 젊은 층들은 보수 성향 후보 아흐마디네자드가 아니라 개혁 진영 후보 무사비를 열렬히 지지했다. 그들은 선거 2, 3주 전부터 개혁의 상징인 녹색을 기본으로 한 무언가를 장착했다. 녹색 티셔츠, 녹색 스카프, 화분, 녹색 풍선, 심지어 녹색 마스카라와 녹색으로 염색한 머리카락까지 등장했다. “지난 2, 3주간 이란인들이 다시 웃을 수 있었고 자신들이 원하는 구호를 거리에서 외칠 수 있었다.” 그러나 부정 투표를 감행한 정권은 아흐마디네자드를 당선시켰고, 그 뒤 벌어진 유혈사태는 이란사회를 근본부터 뒤흔든다. 희망의 눈물이 분노의 절규로 바뀌는 순간, “필요하다면 내 뼈와 살을 바치겠다. 나의 조국을 새롭게 건설해야 한다”는 절박한 선언과 “핵과 석유문제를 제외하면 해외에서 이란에 관심이 있긴 한가?”라는 비관적인 체념이 엇갈린다. 녹색 혁명 참가자들의 절절한 인터뷰, 휴대폰으로 촬영된 동영상, 트위터, 블로그, 그리고 <바시르와 왈츠를>에서 영감받았음직한 애니메이션 클립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현재진행형의 다큐멘터리다.

1994년 미국월드컵을 기억하는 축구팬이라면 <두명의 에스코바르>를 놓칠 수 없다. 마약 범죄와 폭력으로 얼룩진 콜롬비아의 이미지를 쇄신했던 건 당시 세계 1위에 손꼽히던 콜롬비아 축구대표팀이었다. 특히 주장 안드레스 에스코바르는 ‘필드의 신사’로 불리며 뛰어난 실력과 점잖은 이미지로 큰 사랑을 받았다. 그는 밀라노팀에 영입 제의를 받은 상태였으며 아름다운 약혼녀와의 미래를 꿈꾸는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었다. 그러나 안드레스는 월드컵 당시, 루마니아와의 경기에서 믿을 수 없는 자책골을 넣었고 결과적으로 콜롬비아는 예선 탈락을 하게 된다. 당시 또 한명의 에스코바르, 즉 마약왕 파블로 에스코바르는 부패한 정권과 결탁하는 한편 빈민들에게는 집을 지어줌으로써 ‘메시아’로 군림하는 등 놀라운 이중생활을 영위했다. 결국 파블로는 국가의 이름으로 비참하게 총살됐고, 자책골을 넣은 뒤 귀향한 안드레스 역시 어느 날 밤 동네 클럽에서 전직 경호원에게 살해됐다. 이 비극의 배후에는 거액을 베팅한 마약 조직이 있다는 주장이 강력하다. “우리는 축구를 통해 콜롬비아가 폭력으로만 뒤덮인 나라가 아니라는 걸 증명해 보이고 싶었지만 안드레스의 죽음을 통해 그걸 입증하고 말았다.” 두명의 에스코바르의 엇갈린 인생 행로를 통해 콜롬비아의 현대사를 생생하게 대비시키는 흥미로운 작품이다.

이외에도 4살 때 마라톤 코스를 완주한 천재 소년 부디아와 그의 재능을 꽃피웠던 코치 비란치의 말문이 막힐 만큼 기이한 시절을 <슬럼독 밀리어네어>풍으로 그려낸 <마라톤 보이>, 무려 12년 동안 인도네시아의 한 가족과 함께 지낸 레오나르드 레텔 헴리히의 <내 별자리를 찾아서> 역시 각각 인도와 인도네시아라는 낯선 공간의 아우라와 다층적인 사회구조를 집중적으로 조망한다. 특히 <내 별자리를 찾아서>의 결말에 금발에 푸른눈 인형을 뒤집어쓴 원숭이가 구걸하는 장면은 제3세계의 비극을 압축해 보여주는 단 하나의 충격적 이미지다. 마크 루이스의 <정복자 독두꺼비(3D)>는 호주 대륙 전역을 가로지르는 독두꺼비의 여정을 뒤쫓으며 호주 정부의 악명 높은 환경 정책을 유머러스하게 고발한다.

노동문제, 개인적이고 재치있게 풀어내다

<잔인한 계절>

<몬터레이 팝>

페스티벌 초이스부문과 교육 다큐멘터리 경쟁부문에는 아동의 삶과 교육문제에 관한 진지한 시선과 자주 맞닥뜨리게 된다. 아이들이 심각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며 스스로 목숨을 끊는 한국의 지옥 같은 현실과 대비되는 순간이다. 특히 개막작이며 교육 다큐멘터리 부문 상영작인 <잘 지내니, 루돌프?>는 강력 추천작이다. 라트비아의 12살 소년 루돌프는 공포영화 만들기에 몰두한다. 불퉁거리며 혼자만의 취미 생활에 만족하던 루돌프를 공적인 장으로 끌어낸 건 마을 신부다. 신부는 영화 만들기가 결국 타인과의 소통임을 자연스럽게 일깨우고, 루돌프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한뼘 성장한다. <잘 지내니, 루돌프?>와 맥을 함께하는 작품으로는 치어리딩을 통해 삶의 목표와 기준을 찾아가는 소년 9명의 초상 <소년 치어리더>를 꼽을 수 있다. 우크라이나 시골 마을에서 백인 우월주의자들에 둘러싸여 살아가는 다인종 가족을 담은 <흑백 가족 사진>은 최근 노르웨이 테러사건을 비롯한 유럽에서 심화되는 자국 이기주의에 직면한 아이들의 힘겨운 현실을 그린다.

노동문제를 좀더 개인적이고 재기발랄하게 들여다보는 방식의 다큐멘터리들도 주목할 만하다. 박배일 감독의 <잔인한 계절>은 속칭 ‘너구리’라 불리는 부산지역 미화노동자들이 삶의 조건을 개선하기 위해 애쓰는 과정을 친밀하고 따스한 시선으로 담아냈다. 왜 자신들이 노동조합을 설립하게 되었는지, 늦은밤 골목을 누비며 쓰레기를 수거하는 직업에 몸담게 된 이유는 무엇인지, 자신들을 무시하고 조롱하는 타인의 시선에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를 느릿느릿 카메라 앞에서 풀어내는 이들의 얼굴을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쓰레기를 치우며 <임을 위한 행진곡>을 흥얼거리게 된 어느 여성 노동자의 목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현재 한국사회의 가장 뜨거운 감자인 노동자 투쟁 문제에 대한 또 다른 시각을 찾을 수 있다. 아브네르 베나임의 <하녀와 주인>은 라틴아메리카 곳곳의 입주 가사도우미 문제를 경쾌한 페이스로 풀어간다. “노예제는 끝난 지 오래지. 우리가 그들을 위해 일하는 것만큼 주인들도 우리에게 최소한의 예를 갖춰야 해”라고 당당하게 주장하는 가사도우미들과 ‘가사도우미는 못 배우고 못사는 것들’이라는 전제를 깔고 출발하는 부유한 고용주들의 대립은, 모두 평등해 보이지만 보이지 않는 벽으로 분리되어 있는 자본주의의 한 단면을 예리하게 도려낸다.

예술의 힘으로 충만한 다큐멘터리들도 여럿 준비되어 있다. “첫 번째 드럼은 바로 여기, 심장이다”라며 시작하는 <어느 드러머의 꿈>은 록, 재즈, 라틴 퓨전, 솔 등에서 세계 최고로 꼽히는 7명의 드러머를 차례로 인터뷰한다. <저항의 문화>의 감독 이아라 리는 2003년 이라크전쟁이 발발하기 하루 전날 여행을 떠나 다섯 대륙을 여행한다. 그리고 그 여정을 통해 음악과 춤이라는 지극히 개인적 차원의 행위가 평화를 위한 무기가 될 수 있다는 감동을 맛본다. 마지막으로 D. A. 페니베이커의 <몬터레이 팝>도 결코 놓칠 수 없다. 1969년 우드스탁페스티벌 이전에 1967년 몬터레이 팝페스티벌이 있었다. 이 무대에 오른 이들은 마마스 앤드 파파스, 사이먼 앤드 가펑클, 그레이스 슬릭과 제퍼슨 에어플레인, 재니스 조플린과 빅 브러더 앤 더 홀딩 컴퍼니, 오티스 레딩, 애니멀스, 더 후, 지미 헨드릭스, 컨트리 조 앤드 피시 등이다. 불과 24살의 재니스 조플린이 수많은 관객을 들쑤셔놓고, 지미 헨드릭스가 황홀경에 도취되어 기타와 섹스하는 듯한 제스처를 취하고 급기야 기타를 몽땅 부숴버리는 퍼포먼스가 펼쳐진 곳도 바로 이곳이다. 페니베이커의 카메라는 이 모든 열광을 생생하게 담아냈고, 45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도 당시 록의 전설들이 자아내는 짜릿함은 여전히 우리를 감전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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