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몬주익은 1992년 올림픽에서 황영조 선수가 마라톤 금메달을 획득한 영광의 언덕으로 먼저 떠오르지만 바르셀로나에서 몬주익은 아름다운 녹지대 중 하나다. 우거진 숲 사이로 잘 닦인 조용한 산책로, 곳곳에 숨어 있는 미술관들과 파노라믹한 전경이 펼쳐지는 전망대에서는 북적이는 시내와는 다른 여유를 느낄 수 있다.
18세기에 언덕 꼭대기에 지어진 몬주익 성 앞의 잔디정원은 매년 여름 오픈시네마 ‘살라 몬주익’의 야외극장으로 오픈한다. 알록달록한 비키니와 파라솔의 해변이 바르셀로나의 뜨거운 여름 오후를 대표한다면 살라 몬주익은 이 도시 지역주민들의 여름밤을 대표하는 키워드랄까. 성벽 한쪽에 35mm 필름 상영을 위한 커다란 스크린이 설치되고, 성벽 아래 잔디밭은 관람석이 된다. 올해도 7월4일부터 8월5일까지 제9회 살라 몬주익 행사가 열렸다. 매주 월·수·금요일 밤 9시부터 로컬 밴드의 라이브 공연으로 시작해 10시에는 독립영화, 10시30분부터 그날의 영화가 상영된다. 관람객은 저마다 편하게 자리를 잡고 미리 준비해온 과일과 샌드위치, 현장에서 파는 맥주와 음료를 즐기면서 영화를 감상한다.
올해 상영된 영화들은 총 15편으로 인디, 제3세계, 고전과 최신작 등을 두루 포함한다. 살라 몬주익 운영진과 작품성 높은 영화 상영으로 많은 팬을 보유한 영화관 시네스 베르디(Cines Verdi)의 프로그램 디렉터가 함께 선정한 작품들은 장 뤽 고다르의 <네멋대로 해라>부터 비교적 최근작인 스파이크 존즈의 <괴물들이 사는 나라>, 쿠엔틴 타란티노의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 등 국적과 장르가 다양했다. 마지마 상영작은 온라인 투표로 선정된 크리스토퍼 놀란의 <다크 나이트>였다.
살라 몬주익은 사실 진지한 영화감상을 위한 자리라기보다는 가족, 연인, 친구들과 함께 한밤의 피크닉을 즐기면서 좋은 영화도 한편 감상할 수 있는 자리라는 게 맞는 얘기일 것이다. 더위가 식은 뒤 살랑거리는 밤바람을 맞으며 영화를 보거나 잔디 냄새 물씬 풍기는 바닥에 편한 자세로 누워 영화 대사를 들으면서 별을 볼 수 있다니, 이처럼 로맨틱한 풍경이 또 있을까. 영사기가 설치된 컨테이너 박스 가까이에서 들리는 필름 돌아가는 소리도 퍽 낭만적이다. 올해 상영작 중 하나인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걸어도 걸어도>를 보면서 이런 행사가 서울의 궁이나 시청 앞 잔디광장에서도 열리면 얼마나 좋을까, 상상해봤다. 영화제의 자세한 정보는 웹사이트(http://www.salamontjuic.org/)와 페이스북(http://goo.gl/FxY3u)에서 찾아볼 수 있다.
돈보다 중요한 건 참여하는 마음
살라 몬주익 기획자 나탈리 모딜리아니
-행사를 기획하게 된 계기는 뭔가. =나는 파리 출신으로 파리의 라빌렛 공원 잔디정원에서 열리는 야외 공연과 행사에 매년 참가했다. 그래서 바르셀로나에 온 뒤 비슷한 행사를 열고 싶었다. 친구와 가족이 잔디밭에서 함께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는 테마 있는 피크닉 말이다.
-행사의 취지가 있다면. =문화의 공유와 민주화다. 문화를 즐기는 데 돈보다 참여하는 마음이 더 중요하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저렴한 입장료(5유로)에 좋은 콘서트와 영화를 볼 수 있다. 2003년 첫해부터 반응이 좋아 9회째인 올해는 영화마다 평균 2200여명의 관객이 찾아왔다.
-작품 선정에 대해 얘기해달라. =일반 대중에 잘 알려지지 않은 좋은 작품들을 소개하는 역할을 하고 싶다. 전 연령대의 관객이 즐길 수 있는 작품을 국적과 제작연도를 가리지 않고 수개월 전부터 시네스 베르디 디렉터와 함께 추려나간다. 35mm 필름을 고집하기 때문에 필름도 따로 구해야 하는 경우가 많고, 그 뒤엔 스크린으로 미리 퀄리티도 확인하는 등 거쳐야 할 절차가 많지만 이 방식을 고수할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