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라, <씨네21> 홈페이지(www.cine21.com)가 꽃단장을 했네. 언제 변신한 거야. 일단 뭐 깔끔해 보여서 좋구먼. 전엔 정보가 많은 건 좋은데 좀 정신없긴 했어. 주렁주렁, 덕지덕지, 눈이 휙휙 돌아갈 정도였으니까. 그런데 이게 뭐야. 못 보던 게 있네. ‘즐감’? 기사도 알겠고, 영화정보도 알겠고, 리뷰도 알겠고, 포토도 알겠고, 이벤트도 알겠는데, 대체 ‘즐감’이 뭐란 말이야. 즐겼으면 감사하라, 뭐 그런 뜻인가. 얘들 보게.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이따위 선전포고야. <씨네21>이 언제부터 이렇게 건방져졌어. 독자들에게 이래라저래라 명령한다는 게 말이 되냐고. 항의전화나 한번 넣어볼까. 아니지, 요즘 같은 때일수록 신중해야 해. 전화했다가 괜히 내 정보만 빼내갈지도 모르니 말이야.
내 바쁘니 전화는 담으로 미루고, 뭐 밑질 건 없으니 일단 클릭. 어라, 번지수를 잘못 짚은겨? 그 ‘즐감’이 아니라고? 그럼 뭐여. ‘당당하게 즐기는 감상’? 아, 그러고보니 이게 그거구먼. 고품질의 최신 영화 콘텐츠를 단번에 내려받을 수 있다는 거시기 말이야. 하긴 이젠 ‘굿’ 다운로더가 될 때도 됐어. 불법 다운로드, 싸서 좋은데 찜찜하잖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괜히 싼 물건 찾았다가 망신당하고 혼삿길 막히면 안되니까. 요즘 내 주머니 사정이 영 거시기하지만 저작권자들이 일정한 몫을 가져가야 담에 더 좋은 물건을 시장에 내놓을 수 있는 거니까.
자, 그럼 뭘 차려놨는지, 좌판 구경을 좀 해볼까. 영화, 애니메이션, 드라마, 만화 모두 합해서 2천편이나 된다는데, 뭐가 그리 많아. 일단 남들이 뭘 선택하는지 염탐부터 해야겠군. 나 같은 사람 위해 ‘즐감 차트’라는 게 있구먼. 1위는 <모비딕>이요, 2위는 <트루맛쇼>요, 3위는 <황해>요, 4위는 <방자전>이요, 5위는 <링컨 차를 타는 변호사>라. 극장에서 못 본 최신작 영화들을 PC와 휴대폰으로 다운로드해 간편하게 볼 수 있다 이건데. <황해>나 <방자전>처럼 큰 영화들은 감독판 혹은 미공개 영상을 추가했네. 극장에서 봤더라도 다시 보고 싶은 마음이 동했던 이들이 꽤 있었나 봐.
결제 안전하고, 영화도 다양하고
근데 꼭 <씨네21> 홈페이지에 들어와서 ‘즐감’을 눌러야 할 이유는 없는 거 아닌가. 즐감이 온라인에서 영화를 독점적으로 유통하는 것도 아니잖아. 게다가 요즘은 무료로 10만점씩 주는 신생 웹하드, P2P 사이트가 얼마나 많은데. 그런데 이걸 알아야 해. 당신이 보고 싶어 하는 대부분의 영화들은 거기에 없다는 거, 뭣보다 공짜랍시고 그런 사이트에 회원가입하다간 된통 당하는 수가 있지. 딱 한번 접속한 뒤 그 뒤론 들어가본 적도 없는데, 글쎄 한달에 16500원씩 7개월 동안 내 잔고를 갉아먹었지 뭐야. 유령 회사이니 항의할 수도 없더라고. 그런 점에서 즐감은 안전하지. 내 돈 빼앗아먹으면 <씨네21> 앞에서 1인 시위라도 할 수 있잖아.
뭣보다 즐감의 장점은 영화를 골라보기가 용이하다는 점 같군. 줄거리 정보만으로도 의심이 가면 네티즌 평점이랑 전문가 평점을 비교해보면 되고. 좋은 영화는 가슴에 묻는다는데, 사실 몇년 묻으면 스토리도 가물가물해져. 그러니 한번 볼 때 제대로 소화해야 해. 궁금증이 남는다면 기어코 풀어야 하고 말이지. 사실 영화볼 때마다 관련 기사와 뉴스를 꼭꼭 챙겨 본다는 거 말처럼 쉽진 않잖아. 이럴 때 즐감이 쓸모가 있는 거지. 사실 <트루맛쇼>는 극장에서 봤는데, 저 감독이 어떻게 저걸 찍어냈지, 답을 알고 싶어 미쳐 죽을 지경이었거든. 문제는 게으르기 짝이 없는 나의 호기심이 극장에서 나온 순간 신기루처럼 사라졌다는 건데. 즐감은 그럴 위험은 없어. 다운로드하는 동안 간을 배 밖으로 내놓은 김재환 감독의 좌충우돌 제작기를 슬쩍 엿볼 수도 있고, 영화를 보고 나선 <트루맛쇼>에서만 맛볼 수 있는 캐비어 삼겹살과의 기막힌 인터뷰를 후식으로 먹으면 되니까.
영화로 수다를, 수다가 영화를 만드는 곳
대개 최신작을 찾는데 심심찮게 고전들을 찾아보는 재미도 있어. 막스 오퓔스도 있고, 더글러스 서크도 있고. 욕심을 채우기엔 아직 턱없는 편수지만 언젠가는 즐감 창고에서 좋은 화질의 고전 영화들이 우수수 쏟아지는 날도 오지 않겠어. 사실 후루룩 훑어봐서 제대로 구경했는지 모르겠네. 그래도 이건 분명한 것 같아. 즐감이 원하는 게 영화로 즐겁게 놀아보자, 뭐 이런 거 아닌가 싶어. ‘내 손으로 뽑는 즐감영화제’나 좋아하는 영화를 친구들에게 소개하면 혜택이 돌아온다는 ‘즐친’(오픈 예정) 서비스야 뭐 새로울 건 없는데, 영화로 삶을 나누고 싶다는 바람이 그들이 주야장천 떠들어온 모토이니 영화로 수다를 만들고, 수다가 영화를 만드는 뭔가 기발한 아이디어가 곧 나오지 않겠어? <씨네21>이 그저 돈 벌어보겠다고 나섰다면 이미 망해도 한참 전에 망했겠지, 안 그래? 즐감을 그러니까 일단 믿어보자고. 즐거운 감상, 즐거운 감성을 약속했으니까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