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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엽게, 흉악하게, 포악하게!
김도훈 2011-08-03

<7광구> 괴물의 크리처 디자인에서부터 감독 교체를 비롯한 제작과정의 난항까지

<해운대>가 마침내 개봉했다. 파죽지세였다. 이 한국형 블록버스터는 쓰나미처럼 한국 극장가를 휩쓸었고, 1천만 관객 돌파는 시간문제였다. 윤제균 감독은 드디어 꿈에 그리던 또 하나의 블록버스터 프로젝트를 실현에 옮길 시간이 무르익었음을 깨달았다. 석유 시추선을 무대로 한 괴물영화 <7광구>였다. 사실 <7광구>는 <해운대>를 준비하던 단계부터 이미 윤제균의 차기작으로 내심 결정된 상태였다. “<해운대> 때문에 미국의 ‘커널 옵티컬’이라는 특수효과 스튜디오를 방문했는데, 다음 작품은 뭐냐고 물어보더라고요. 석유 시추선에서 벌어지는 크리처물이라고 하니까 그런 건 무조건 3D로 가야 한다고….” 그러니까 <7광구>의 3D는… 아니다. 잠깐. 우리는 지금 3D에 대해서 이야기하려는 건 아니다. 이 기사는 <7광구>의 괴물이 어떻게 만들어졌는가에 초점을 맞춰야 하니까 3D는 잠깐 지나치도록 하자(물론 <7광구>의 3D가 제작 초기부터 성실하고 꼼꼼하게 계획된 사항이었다는 건 말하고 넘어갈 필요가 있겠다).

“단 한번도 본 적 없는 괴물을 만들자”

윤제균이 <7광구>를 현실화하기 위해 가장 먼저 찾은 남자는 특수효과 회사인 모팩스튜디오의 장성호 대표였다. 당시 장성호 대표는 <해운대>의 특수효과를 담당하고 있었고, 그 때문에 바싹바싹 말라가고 있었다. “그땐 괴물 디자인보다는 3D를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에 더 관심을 갖고 있던 시기예요. 괴물 디자인에 관한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나온 건 <해운대> 개봉 즈음이었죠. 3D 효과는 당연히 윤제균 감독님이 다른 회사랑 알아서 할 거라 믿었고 제 머릿속에는 온통 괴물에 대한 구상만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3D까지 우리가 맡게 되어서…. (우울한 표정)” 장성호 대표가 괴물을 고민하는 동안 윤제균 감독은 시나리오 작업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윤제균 감독은 자신이 <7광구>의 적임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능력의 부재나 자신감의 부재가 아니었다. 오로지 이유는 ‘피가 무섭기 때문’이었다.

장성호 대표는 말한다. “물론 처음에는 윤 감독님이 직접 연출할 생각이었는데… 이게 괴물이 사람하고 싸우다보면 피가 한 방울이라도 나게 되어 있잖아요? 근데 갑자기 그러시더라고요. 난 피 나오는 건 못해. 그러면서 제작자로 물러나신 거죠.” 윤제균 감독 역시 증언한다. “자신이 없었죠. 공포영화도 싫고, 무서운 영화 보는 것도 싫은데… 그런 걸 찍으려고 생각하니까 진짜 못 찍겠는 거지.” 한국 코미디영화의 황제로 불리며 인간의 몸에서 나올 수 있는 온갖 체액을 모조리 다루었으나 피는 만질 수 없었던 윤제균 감독은 <해운대>의 시나리오와 <7광구>의 초고를 쓴 김휘 작가에게 메가폰을 넘기고, 자신은 김휘 작가에게 <7광구>의 초고를 넘겨받았다. 감독이 아니라 제작자 겸 시나리오작가로 포지션을 바꾼 셈이다.

문제는 역시 괴물이었다. 구체적인 시나리오를 쓰기 위해서는 먼저 괴물의 최종 디자인이 나와야만 했다. 윤제균은 장성호 대표와 함께 괴물의 디자인을 잡아나가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잡은 컨셉은 심해에서 올라온 생물을 모티브로 하자는 거였죠. 심해 생물의 특징은 모두 세 가지잖아요. 첫째, 반투명. 둘째, 발광체. 셋째, 눈이 보이지 않으므로 청각이나 신체 파장 같은 걸로 감지한다.” 물론 심해 생물을 모티브로 한 <7광구>의 괴물이 또 한 가지 가져야 할 조건이 있었다. 독창성이었다. “핵심은 전세계의 어떤 영화에서 단 한번도 본 적 없는 디자인의 괴물로 가자는 거였죠. 장 대표한테 어떻게 할 거냐고 물어봤더니, 자기가 날름 하겠다네. 거기서부터 장 대표 인생이 꼬이기 시작한 거지.”

장성호 대표 역시 “괜한 욕심으로 인생이 꼬여버렸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괴물이 성장을 하면서 변태하도록 설정을 하자고 했죠. 사실 이 괴물은 인간의 인공적인 배양을 통해 무시무시한 존재로 변하게 되는 겁니다. 원래 자연상태에서는 그렇게 커질 수 없는데…. 흠, 이건 스포일러가 되는 건가?(윤제균 감독이 옆에서 말한다. “이 정도는 괜찮아.”) 여튼 인간의 탐욕이 재앙을 불러일으킨다는 영화의 주제와도 맞닿는 설정인 거죠.” 장성호 대표는 괴물이 모두 세 단계를 거쳐서 변형하는 것으로 설정했다. 첫 번째 단계는 ‘Q’다. “작은 심해 생명체 단계예요. 몸에서 빛이 나오는 발광체이고 또 몸이 투명하죠. 왜 Q냐고요? 큐트(Cute). 귀엽다는 이야깁니다. 큐트 스펠링은 C로 시작하는 게 맞지만 그냥 Q라고 불렀어요. 괴물이 스트레스나 자극을 받으면 조금 흉악하게 변하는데 그게 두 번째 단계인 ‘H’고요, H단계의 괴물이 자기방어를 극단적으로 하려고 정말 포악한 상태로 최종 변태를 하는데 그게 P예요.” Q는 큐트. 귀엽다는 소리다. 그렇다면 H와 P는 대체 무슨 약자일까? 윤제균 감독이 말한다. “H는 흉악하다는 거고, P는 포악하다는 거. 영어랑은 상관없고….”

장성호 대표에 따르면 “괜히 변신 변태라는 설정을 넣느라” 괴물의 디자인 컨셉을 잡는 데만 1년이 넘는 시간이 소요됐다. 이제 괴물의 최종 디자인 확정만 남은 상태였다. 하지만 모든 일이 이토록 아름답고 수월하게 진행될 수는 없는 일 아니겠는가. 복병이 찾아왔다. 감독의 교체였다. 윤제균 감독에서 김휘 작가를 거쳐, 최종적으로 메가폰은 <화려한 휴가>의 김지훈 감독에게 넘어갔다. 그런데 김지훈 감독은 최종 승인만 남겨놓고 있던 괴물의 디자인이 영 맘에 들지 않았다. “프리 프로덕션 단계에서 괴물을 확인했는데… 제가 생각한 괴물과는 달랐어요. 생경했죠. 기존 괴물영화들을 보며 머릿속에 들어 있던 어떤 괴물의 이미지와는 너무 달라서 반신반의할 수밖에 없더라고요.” 가장 큰 문제는 ‘눈’이었다. 화룡에게 점정을 찍을 것이냐 말 것이냐, 그것이 문제였던 것이다.

<7광구>의 괴물은 모두 세 단계를 거쳐서 변이한다. 첫 번째 단계는 작은 심해 생명체 단계인 Q다. Q는 귀엽다는 ‘큐트’의 발음을 딴 명칭이다. 1번 사진은 영화에서 최종적으로 사용된 Q단계다. 원래 1번 모델은 2번과 3번 모델로 변이될 예정이었으나 실제 영화에서 2번과 3번은 사용되지 않았다. 이는 “괴물다워야 한다. 지나치게 귀여우면 곤란하다”는 김지훈 감독의 의견을 장성호 대표가 받아들인 결과다.

Q단계 다음으로 괴물은 H단계로 변이한다. H단계는 귀여운 Q단계의 생명체가 인위적인 외부의 간섭으로 인해 흉악한 상태로 변한 모습이다. H는 ‘흉’악하다는 의미로 제작진이 부른 명칭이다. 두 사진은 아직 모팩 특수효과팀이 피부의 질감을 입히지 않은 상태의 일러스트다.

귀여운 Q단계와 흉악한 H단계를 거치면, 괴물은 마침내 ‘포’악한 P단계로 최종 변이한다. 이 사진은 현재 공개된 <7광구> 트레일러 속에 등장하는 최종 괴물과 가장 닮은 디자인의 일러스트다.

그린 스크린에서 허공을 바라보며 가상의 괴물과 연기를 하는 건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할리우드 영화 현장에서는 테니스공이 끼워진 거대한 장대를 이용해서 배우들의 시선처리를 돕는다. <7광구> 제작진은 원활한 촬영을 위해 아예 괴물의 대역을 이용하기로 결정했다. 후반작업과 CG 처리를 위해 그린 스크린과 같은 색깔의 옷을 입고 괴물 모양의 틀을 장착한 이 대역을 제작진은 ‘그린맨’이라고 불렀다.

괴물에 눈을 만들어줄 것인가 말 것인가의 문제

김지훈 감독은 괴물에게 눈을 달아주고 싶었다. 관객이 괴물의 캐릭터에 동의를 하도록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다. “괴물은 말을 하는 게 아니잖아요. 그러니 관객이 괴물을 한 생명체로서 받아들이려면 눈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장 대표는 심해 생물이니까 그런 건 표피나 촉수로 보여주면 된다고 주장했어요.” 장성호 대표 역시 감독의 의견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1년 동안 시간과 공을 들여 만들어낸 자식의 얼굴에 칼질을 할 생각이 없었던 것이다. “그전에 디자인한 건 시각에 의존하지 않는, 어디가 입인지 몸통인지도 알 수 없는 굉장히 기괴한 형태였어요. 입이 옆구리까지 찢어져 있고요. 그런데 김지훈 감독은 관객이 시선을 맞출 수 있어야 괴물이 캐릭터를 갖게 된다고 하더군요. 저는 시각에 의존할 생각이 없었어요. 눈을 만드는 게 너무너무 싫었어요. 진통이 시작된 거죠.” 윤제균 감독이 덧붙인다. “둘이 싸우고 난리도 아니었지. 내가 막 중재하고….”

“싸운 건 아니었어요.” 장성호 대표의 말이다. “흠. 날카로운 지경까지는 갔었죠.” 장성호 대표의 신경은 날카로워졌다. 그러니까 이런 거다. 엄청난 애정을 가지고 완벽한 고려자기를 완성하는 동안, 시대가 갑자기 조선시대로 바뀌었고, 새로운 왕은 고려자기 말고 백자를 만들라고 요구하는 그런 상황 말이다(말도 안되는 표현이지만 이해는 가지 않는가?). “감독이 세번이나 바뀌는 동안 저 혼자는 열심히 끌고 온 게 있었단 말이죠. 관성이 붙어서 애정도 커졌고요. 그런 동력을 잃고 싶지 않은 욕심이 생긴 겁니다.” 결국 상황은 최악으로 치달았다. 악몽의 쓰나미였다. 김지훈 감독은 아예 자체적인 디자인팀을 꾸린 다음 모팩에서 걸어나가버렸다. <7광구>는 두개의 머리가 달린 괴물이 됐다. 두 머리는 가려는 방향이 달랐다. 몸이 찢어질 판이었다.

다행히도 한달 뒤 김지훈 감독과 장성호 대표는 다시 손을 잡았다. 장성호 대표는 말한다. “제 착각이었어요. 제가 어디까지나 연출자의 의도를 최대한 살려야 하는 스탭이라는 사실을 잊고 있었던 거죠.” 그는 마음을 굳게 먹고 김지훈 감독을 찾아갔다. 오후 4시에 시작된 만남은 밤 10시까지 이어졌다. “저녁도 굶으면서 내 진정성을 좀 이해하고 받아달라는 호소를 왕창 했죠. 감독님이 그때 나를 믿어야겠다고 결심했다더군요.” 김지훈 감독은 그 모든 게 “아름다운 논쟁”이었다고 말한다. “결국은 제 문제였던 것 같아요. 모팩의 실력을 못 믿었고, 또 내가 늦게 합류한 탓에 장성호 대표의 열정을 이해 못했던 거고. 게다가 배우가 문제라면 술을 한잔 먹으면서 풀 수도 있는데 이건 괴물이라서….”

김지훈 감독과 장성호 대표의 전쟁은 끝이 났고, 둘은 절충안을 찾아냈다. 김지훈 감독은 장 대표의 애초 디자인을 받아들였고, 장성호 대표는 김지훈 감독이 원하는 ‘눈’을 박아넣기로 했다. “감독님 의견이 맞았던 것 같습니다. 디자인적으로 독창적인 건 중요해요. 하지만 상업영화 속 괴물로서 관객과 호흡해야 한다는 관점에서는 감독님의 지적이 명백히 맞았던 거예요.” 괴물 디자인이 절충안을 찾고, 애초 디자인과 조금 달라지면서 시나리오의 흐름 역시 약간의 수정을 거쳐야만 했다. 윤제균 감독은 “처음 시나리오는 철저한 괴수 스릴러였다”고 설명한다. “그런데 단순한 스릴러로는 관객을 확장하긴 힘들잖아요. 지금 <7광구>의 괴물은 석유의 치환 같은 거예요. 석유는 이로운 자원이지만 석유 때문에 전쟁이 일어나기도 하잖아요. 영화 속 괴물도 그래요. 공격성을 띠지 않을 때는 너무 아름답고 환상적인데 한순간에 사람을 죽일 수 있는 공포스러운 괴물로 변하는 거지.”

장성호 대표는 괴물의 변신 단계에 따른 외양도 김지훈 감독의 의견을 받아들여 수정했다. 괴물이 귀여운 심해 생명체인 Q단계는 애초 디자인보다 ‘덜’ 귀여워졌다. “원래는 Q단계가 많이 등장할 예정이었는데 많이 삭제됐죠. 김지훈 감독은 너무 환상적인 모습은 좋아하지 않더라고요. 리얼리티가 떨어진다는 거였죠. 괴물은 괴물다워야 한다. 지나치게 아름다운 모습이면 안된다. 그래서 Q1, Q2, Q3, 이렇게 세번에 걸쳐 변신하던 Q단계는 Q1만 남아 있어요. 대신 H와 P, 그러니까 흉악하고 포악한 단계쪽으로 좀더 기울게 됐죠.” 동시에 심해 생명체의 특징을 따서 P단계까지 발광체로 묘사했던 애초의 디자인도 바꿨다. 하지만 왜 스스로 빛을 발하는 발광체라는 독특한 설정까지 포기해야만 했던 걸까. “눈이 만들어지는 순간 어쨌거나 이 괴물은 시각을 지닌 존재가 되는 거니까요. 발광체로서 존재할 이유가 없죠. 대신 Q 상태일 때는 여전히 반투명 발광체의 속성이 유지됩니다.” 장성호 대표는 발광체로 의도된 괴물의 프로토타입 디자인을 모팩의 브로셔에만 넣었다. 여전히 좀 아쉽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하지만 그는 단호하게 옳은 결정이었다고 말한다. “그런데 사실 <아바타>가 개봉하자마자 발광체라는 특성은 버릴까 생각 중이었어요. 베꼈다는 소리는 듣기 싫으니까요”

‘괴물의 정면승부’… 아낌없이 보여준다

물론 변하지 않은 게 있다면 <7광구>의 괴물이 여전히 심해에서 온 존재라는 사실이다. 해양 생물체의 축축하고 흐물흐물한 질감은 마지막 디자인에서도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 장성호 대표는 이미 만들어진 텍스처 맵(Texture map)을 사용하지 않고 셰이더(Shader)를 아예 새롭게 만들었다고 설명한다. “만들어서 토대에 씌우는 겁니다. 작업하기 어렵진 않아요. 소프트웨어가 워낙 발전해 있거든요. 그런데 저희는 텍스처 맵을 안 쓰고 셰이더를 아예 새로 만들었어요.” 좀 어렵다고? 그러니까 한마디로 설명하자면, 세상에 존재하지 않던 질감 자체를 모팩에서 새롭게 만들었다는 이야기다. 물론 아예 없던 건 아니고, 장성호 대표가 참고한 자료는 (다들 눈치챘겠지만) 해산물이었다. “주로 참고했던 게 해삼, 미더덕, 해파리, 말미잘… 아귀도 많이 참고했고.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사와서는 칼집도 내고 사진도 찍고 별짓을 다 했죠.” 윤제균 감독은 입맛을 다신다. “해산물의 총집합체지.” 다들 알다시피 그는 부산 출신이다.

본격적인 촬영에 들어가기 직전에야 괴물의 최종 디자인은 완성됐다. 최종적으로 완성된 괴물의 특징을 좀더 과학적으로, 아니, 생물학적으로 기술해보자. 1. 괴물은 귀여운 Q, 흉측한 H, 포악한 P단계로 변태한다. 2. 크기는 시추선 내부의 복도를 자유롭게 돌진할 수 있는 정도로, 길이는 사람의 서너배, 높이는 2배 정도다. 3. 공격 무기로는 촉수가 있다. 그런데 왜 하필 촉수를 붙여야만 했을까. <어비스> <우주전쟁>과 스티븐 소머즈의 <딥 라이징> 등, SF장르에서 ‘촉수’는 이제 조금 클리셰일 수도 있지 않은가. 윤제균 감독은 솔직하게 말한다. “3D 때문입니다. (웃음)” 4. 괴물은 모두 480컷 등장한다.

잠깐! 480컷이라고? 할리우드에서도 괴물 장르를 만들 때 모든 감독들이 지키는 기준이 하나 있다. 그건 괴물을 최대한 숨기고, 결정적인 장면에서만 활용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7광구>의 괴물은 무려 480컷이나 등장한다. 이건 혹시 지나친 야망 아닌가? 장성호 대표는 야망이 맞다고 이야기한다. “크리처 영화 중에 이렇게까지 작정하고 나오는 영화는 없습니다. 위험한 전략 아니냐는 내부 의견이 있었죠. 영화 중반부터 마지막까지, 괴물이 등장하면서 영화 자체가 아예 논스톱 질주를 벌이거든요.” 윤제균 감독은 ‘정면승부’라고 말한다(윤제균답지 않은가?). “네. 정면승부를 하겠다는 이야깁니다. 보여줄 거라면 제대로 아주 그냥….” 장성호 대표는 고개를 설레설레 젓는다. “문제가 있었죠. 그런 논의가 최종 예산이 결정된 이후에 나왔다는 거죠. (웃음) 처음엔 예산 상황을 봐서 105컷 정도 나올 거라 생각했고, 더 붙어봐야 200컷이라고 예상했죠. 그러다가 욕심이 불어나면서 결국 480컷으로. 심지어 3D영화라 컷을 짧게 치지도 않았어요. 한 테이크가 꽤 긴 편인데 말입니다.”

괴물의 등장 컷을 늘리는 전략은 김지훈 감독이 뒤늦게 <7광구>에 뛰어들면서 강력하게 주장했던 전략이기도 했다. “신비하고 소중한 것은 숨겨서 보여줘야 한다지만, 관객은 괴물을 많이 보고 싶어 할 겁니다. 괴물이 많이 나오지 않으면 왠지 책무유기라는 생각도 들고. <트랜스포머>도 로봇이 빨리 나오니까요. (웃음) 장 대표와 윤 감독님은 난감해하셨죠. 퀄리티도 생각해야 하는데 작업량이 만만치가 않으니까. 어쩌면 제가 괴물영화를 잘 모르니까 그렇게 주장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연출적인 욕심이라기보다는 관객에게 메인 요리를 빨리 대접하고 싶은 심정이라고 할까요.” 덕분에 장성호 대표의 업무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늘어났다. “제가 영화 18년차예요. 백 몇십편을 했는데 이렇게 책임감과 부담을 느낀 건 처음입니다. 제가 잘 못하면 영화를 망친다는 심리적 부담감 말이에요.”

크리처 디자이너의 ‘잃어버린 17kg’

장성호 대표는 <7광구>를 하면서 몸무게가 17kg이나 빠졌다고 고백한다. “입맛이 없어져요. 먹고 싶은 마음도 없어져요. 잠도 안 와요.” <해운대> 시절보다 몸무게가 17kg 정도 늘어난 듯한 윤제균 감독이 덧붙인다. “장 대표는 죽을 뻔했지. 감독은 지랄하고 제작자는 쪼아대고 그런데 돈은 많이 안 주고.” 김지훈 감독은 말한다. “저도 좀 고집이 있는 놈이라서. 장 대표님이 많이 힘드셨을 겁니다.” 올 6월 초, 본 촬영 분량에 최종적인 괴물의 모습이 덧입혀졌다. 드디어 완성이었다. 이 괴물은 감독을 세번 교체하고, 감독과 크리처 디자이너를 갈라서게 만들고, 크리처 디자이너로부터 17kg의 피와 살을 베어 물었다. 무시무시한 놈이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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