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독립영화감독 존 지안비토의 영화는 여전히 극소수의 관객과 평론가에게만 알려져 있다. 정식으로 극장 개봉된 적은 없어도 그의 작품 대부분이 국내에 꽤 일찍부터 소개되었음을 고려하면 안타까운 일이기도 하다. 걸프전이 미국 소수자들의 삶에 미친 영향을 다룬 작품으로 “지난 10년간 가장 중요한 미국 독립영화”(조너선 로젠봄)로도 꼽히는 <페르난다 후세인의 미친 노래>(2001), 역사학자 하워드 진의 <미국민중사>에서 영감을 얻은 실험적 풍경영화 <이윤동기와 속삭이는 바람>(2007), 필리핀의 미 공군기지가 초래한 환경오염을 고발하는 한편 미국의 필리핀 지배 역사를 비판적으로 파헤친 4시간40분짜리 다큐멘터리 <비행운(클라크)>(2010)이 전주, 광주 그리고 인권영화제를 통해 소개되었는가 하면 올해 그는 전주국제영화제 심사위원으로도 참여했다. 그러니까 그의 장편데뷔작 <고통의 꽃>(1983)- 최근까지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가 비엔나국제영화제 지안비토 특별전(2007) 당시 공개된 이 작품을, 나는 지난해 지안비토가 보내준 DVD를 통해 비로소 접할 수 있었다- 을 제외하면 그의 장편 전작이 한국에 소개된 셈이다.
정치적 참여 못지않게 래디컬한 영화미학의 탐구에도 관심을 기울여온 지안비토는- 그는 하버드필름아카이브의 큐레이터로 일한 바 있고, 타르코프스키 인터뷰집의 편집자이기도 하며, 그의 영화에 삽입된 애니메이션 영상들은 그의 연인인 실험애니메이션 작가 티 마리의 솜씨다- 최근 <비행운(클라크)>의 자매편에 해당하는 <비행운(수빅)>(이번엔 필리핀 미 해군기지) 작업에 임하는 한편 또 다른 프로젝트를 진행 중인데 바로 <아프가니스탄에서 멀리 떨어져>라는 제목의 옴니버스, 아니 집단영화(collaborative film) 제작 프로젝트다. 지안비토가 최근 보내준 자료를 정리해 여기 옮기면 다음과 같다.
9·11 테러에 대한 보복으로 ‘항구적 자유’(Enduring Freedom)라는 작전명하에 2001년 10월7일 개시된 미국-아프간 전쟁은 (2010년 6월에 이미) 베트남 전쟁을 능가해 미국 역사상 가장 오랫동안 지속된 전쟁이 되어버렸는데, 그동안 대부분의 미디어가 전쟁의 경과와 참상 및 영향에 대해 다루지 않게 되었다. 요리스 이벤스, 장 뤽 고다르, 알랭 레네 등이 참여한 <베트남에서 멀리 떨어져>(1967)에서 영감을 얻은 이 프로젝트엔 총 7명의 독립영화인이 참여해 다양한 정치적, 영화적 전략을 동원해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개입에 대해 문제제기하게 될 것이다. 지안비토가 구상하고 조직한 이 프로젝트의 실현을 위해 매튜 포터필드의 <퍼티 힐>(2010)과 마리 로지에의 <제네시스와 레이디 제이의 발라드>(2011) 등 빼어난 독립영화들을 제작한 스티브 홈그린이 프로듀서로 참여했고,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1966)와 <메이트원>(1987) 등으로 잘 알려진 촬영감독 해스켈 웩슬러를 비롯해 존 조스트, 솔 랜도, 트래비스 윌커슨, 민다 마틴 그리고 (한국 출신의) 유순미 등 다양한 독립영화인들이 감독으로 참여했다. 지안비토 자신은 6월 말까지 촬영을 마치고 7월부터 편집을 시작할 것이라 한다.
본 프로젝트와 관련해 지안비토와 연락을 취한 직후인 지난 6월22일, 오바마 미 대통령은 아프가니스탄 내 미군 병력의 단계적 철수 계획을 발표했는데, 이것이 아직 미완성 단계인 <아프가니스탄에서 멀리 떨어져>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변화를 가져오게 될지, 또 그 최종 결과물은 변화된 정치적 상황과 어떻게 관계맺게 될지 궁금하기 짝이 없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전쟁 발발 10주년이 되는 올해 10월, 이 프로젝트는 가능한 대안적인 배급 및 상영 전략을 통해 공개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