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many)문화가 아니라 다(all)문화다. 반만년 단일 민족의 환상 속에서는 인정하기 싫을지도 모르지만 오늘날 한국사회의 주요한 정체성 중 하나가 다문화 가정임을 누구도 부정할 순 없다. 하지만 아쉽게도 ‘다문화’라는 말은 어딘지 두루뭉술해서 편의를 위한 몰이해를 드러내기도 한다. 국내에 거주하는 많은 외국인들의 문화를 다(多)문화로 총칭해서 부르는 순간 ‘그들’을 하나의 묶음으로 취급하는 우를 범하는 것이다.
지난해와 지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CGV무비꼴라쥬에서 우리 안의 그들이 지닌 다채로운 문화의 꽃향기에 취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했다. 6월30일(목)부터 7월13일(수)까지 2주간 CGV구로·대학로에서는 다양한 문화, 문화의 모든 것을 위한 축제 ‘제3회 다문화영화제’가 열린다. ‘국내 거주 외국인을 위한 영화축제’를 컨셉으로 하는 이번 영화제는 이주 노동자, 결혼 이주 여성뿐만 아니라 유학생 등 재한 외국인 전반에겐 자국영화를 관람할 수 있는 휴식 같은 기회임과 동시에 영화라는 만국 공통의 언어를 통해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소통의 장이기도 하다. 그런 만큼 국내 미개봉작을 중심으로 각국의 문화를 쉽고 충분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대중성과 작품성을 두루 겸비한 8편의 외화가 엄선되어 관객과의 만남을 기다리고 있다.
개막작으로 선정된 <세 얼간이>(2009)는 이미 인터넷을 뜨겁게 달군 인도산 초특급 코미디영화로 인도의 국민배우 아미르 칸 주연의 흥행영화다. 인도영화 특유의 노래와 춤이 인상적인 이 영화는 웃기고 정신없는 모험 사이사이에 현재 인도사회가 직면한 문제를 녹여낸다. 마찬가지로 상쾌하게 웃기면서도 이방인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그리프 더 인비져블>(2010)은 호주에서 날아온 신선한 슈퍼히어로 로맨스물이다. 스트레스로 투명인간이 되는 그리프의 독특한 능력과 벽을 통과하고 싶은 멜로디가 펼치는 연애담은 소외와 소통의 문제를 참신하게 비틀어 보여준다.
<사라의 열쇠>(2010)와 <그을린 사랑>(2010)처럼 깊고 충격적이며 무거운 영화도 있다. 1942년 나치의 명령을 받은 프랑스 경찰이 유대인을 집단 체포한 ‘벨로드롬 경기장 사건’을 배경으로 한 <사라의 열쇠>는 홀로코스트와 기억에 관한 영화다. 당시 벽장 안에 숨긴 동생을 구하려 했던 10대 소녀 사라와 67년 뒤 이를 조사하는 미국인 기자 줄리아의 이야기를 교차시키며 공식 역사와 개인의 기억과 상처의 문제를 심도있게 조명하고 있다. 많은 국내 영화제에서 소개됐던 캐나다영화 <그을린 사랑> 역시 상처와 기억의 문제를 말한다. 어머니의 유언에 따라 자신들의 뿌리를 찾아 중동으로 떠나는 쌍둥이 남매 쟌느와 시몽은 그 과정에서 충격적인 진실과 인간의 존엄을 깨닫고 상처를 감싸안는 포용력을 배운다.
유쾌하면서도 날카로운 블랙코미디 <헤어드레서>(2010)도 있다. 도리스 되리의 신작인 이 영화는 가난하고 뚱뚱한 싱글맘 헤어드레서 키티가 양로원 노인, 베트남계 불법 이민자들과 친구가 되는 과정을 통해 사회의 소외와 높은 장벽을 재치있게 조롱한다. 시어머니가 건망증을 앓으면서 가족 안에서 벌어지는 일을 다룬 <오리우메>(2002)나 스쿠버다이빙 도중 죽은 애인과의 이별을 소재로 한 서극 감독의 아름답고 화려한 판타지 로맨스 <미싱>(2008) 역시 갈등을 넘어 타자를 우리 안에 받아들이는 방식을 잔잔하고 아름답게 보여준다. 집단 안의 타자, 우리 안의 그들과 어떻게 섞이고 어떻게 관계하며 어떻게 소통하는지 보여주는 이 영화들을 다른 곳이 아닌 ‘다문화영화제’에서 만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적지 않은 의미가 있다. 사실 소통과 이해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영화를 통한 소통은 깊고도 강렬하다. 언어가 흘리고 간 행간의 의미를 채워줄 수 있는 영화를 활용한다면 하나하나 모두 소중한 다(all)문화의 진정한 얼굴을 마주하는 것도 그리 멀고 어려운 일만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