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을 처음 본 건 2000년대 초반이었을 거다. 장편애니메이션을 준비 중이라는 이 청년들은 공덕동에 있던 당시 사무실로 찾아와 영화 내용을 설명했고 앞으로 잘 부탁한다고 했다. 그리고 얼마 뒤 그들은 자그마한 선물을 보냈다. 제작하고 있는 애니메이션 장면을 담아 만든 그림엽서였다. 소박하고 단정한 톤의 그림엽서들은 이곳 예장동으로 오기 전까지 책상 한구석에 놓여 있었다(불행히도 이사 과정에서 사라져버렸다). 솔직히 말하자면, 당시엔 그들이 애니메이션을 완성할 것이라 믿지 않았다. 워낙 많은 자본과 긴 시간이 드는데다 시장여건 또한 한국 장편애니메이션에 그리 녹록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 엽서들을 간직했던 이유는 그들의 태도 때문이었다. 첫 만남 때부터 그들은 ‘완성까지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을 알고 각오도 하고 있다’고 했다. 긴 세월을 감수하면서도 스스로의 힘으로, 만족스러울 때까지 만들어보겠다는 결기가 느껴졌기 때문인지 그들이 언젠가는 뜻을 이룰지 모른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10년 만에 마침내 완성의 빛을 본 그 애니메이션은 바로 <소중한 날의 꿈>이며 그때 그들은 ‘연필로 명상하기’라는 이름의 제작진이었다. 소박하지만 우직하게 제작을 해온 그들의 태도는 영화 곳곳에 묻어 있었다. 3D영화도 아니고 CG효과도 화려하게 사용되지 않았지만 간결하면서도 서정적인 그림체가 보는 이를 편안하게 해줬고, 천천히 전개되는 이야기와 세심하게 배치된 디테일은 마음을 조용히, 하지만 깊게 흔들었다. 영화가 끝난 뒤에는 작품 안에서 인용한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 제목처럼 ‘가지 않은 길’을 꾹꾹 눌러 걸어온 그들의 자세가 영화 속 이야기와 디졸브되면서 묘한 감동도 생겼다. 안재훈, 한혜진 감독이야말로 이 영화를 통해 ‘소중한 날의 꿈’을 이룬 건지도 모른다. ‘가지 않은 길’을 걷고 있는 건 이들만이 아니다. 이번 특집기사는 아직도 불모지라 할 수 있는 장편애니메이션을 위해 노력 중인 분들을 소개하기 위해 만들었다. 공룡처럼 느리지만 선명한 발자국을 남기기 위해 한 걸음씩 옮기고 있는 그들 모두에게 큰 박수를 보낸다.
<소중한 날의 꿈>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씨네21>도 오랜 시간을 들여 준비한 프로젝트를 완성했다. 이번주부터 정식 서비스를 시작하는 디지털 매거진이 그것이다. 매주 종이잡지의 내용에다 다양한 부가 콘텐츠까지 얹어내는 일이 쉽지는 않지만, 계속해서 새롭고 재밌으면서도 알찬 내용을 만들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할 각오이니 많은 기대와 격려, 그리고 비판과 질타도 부탁드린다.
ps. 배우 고현정씨가 (김혜리의 표현에 따르면) <씨네21> ‘비상근 게릴라 인터뷰어’가 됐다. 그녀는 신설된 꼭지 ‘쪽’을 통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계획이다. 지난번 이미연씨와 이번 장기하씨와의 만남에서 확인했듯, 넘쳐흐르는 호기심과 배우의 감수성으로 전례가 없으면서도 유일무이한 지면을 만들어줄 것 같다. 고현정씨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뜻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