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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머신 15분 사라진 자들을 구하라
이화정 사진 백종헌 2011-06-16

김현석 감독의 <AM 11>

‘근미래 해외 거대 기업의 지원을 받은 한국 연구소가 바닷속 심해 기지에 타임머신을 개발한다….’ 자, 이건 김현석 감독의 새 프로젝트의 서문이다. 짧은 시놉시스의 전개를 더 밀어붙여보면 이렇다. 자금압박에 시달리던 박사는 회사쪽에 실적을 보여주고자 시운전을 한다. 테스트 단계라 제약도 많다. 규칙에 따라 오전 11시에 출발, 15분간 머물다 다시 돌아온 지구. 문제는 타임머신에 탑승한 나머지 구성원의 생사가 불분명하다는 거다. 박사는 이제 CCTV의 기록을 토대로 과거의 재조합에 나선다. 그가 본 광경은 끔찍하도록 무서운 인간의 욕망과 불신이다. 다시 꼼꼼히 들여다봐도 좀체 멜로가 들어갈 틈이 쉽사리 보이지 않는다.

<시라노; 연애조작단>의 로맨틱 코미디 전문 감독 김현석 감독이 해가 서쪽에서 뜬다면 만들 것 같은 장르에 손을 댔다. 이른바 SF. “아닌 게 아니라 <7광구> 아니냐는 소리도 들었다. 기존 작품들과 다른 걸 해보려 하던 차였고, 이왕 할 거면 아주 다른 걸 해야지 싶더라.” 일단, 출사표는 단출하다. 타임머신의 탑승자는 총 7명. 타임머신을 개발한 물리학 박사 ‘제헌’, 인체연구를 목적으로 함께 탑승한 의사 ‘건희’, 그리고 선임연구원 ‘영은’이 중심이다. <AM 11>은 김현석 감독이 이전 영화들에서 좀체 들먹이지 않을 것 같았던 광기와 독선, 욕망과 불안 등 포장하지 않은 날것의 감정 그대로를 기술한다. 이 낯선 시도에 대한 불안은 전적으로 그를 멜로의 틀 안에 규정지은 우리의 몫이다. 정작 사무실에서 만난 김현석 감독은 전작들을 준비할 때와 다를 바 없는 모습이다. 썰렁한 사무실을 장식하는 야구선수 액자 하나. 아직 인물들의 인과관계와 관계정립 등을 해야 한다는 그에게 조급함이나 두려움은 보이지 않는다. 최종 각색을 거쳐 일단 가을 크랭크인이 목표. “타임머신 세트 안에서만 진행되니 장소가 주가 되던 기존 영화처럼 비가 올까, 눈이 올까 날씨에 구애받는 일은 전혀 없을 거다”라는 감독의 자랑이 이 영화의 장점이자 또 전작과의 획기적인 차이점이기도 하다.

-다음엔 로맨틱코미디는 안 하겠다더니 진짜다. 그런데 SF 장르라니 비약적인 변화다. =원래 경찰대 미술반 이야기를 하려고 했다. 코믹과 액션, 스릴러가 결합된 이야기인데, 결국 경찰이 주인공인 로맨틱코미디더라. (웃음) 이건 시간이 좀 걸릴 것 같다. 검토하던 것 중에 <AM 11>이 있었는데, 다른 걸 하자 싶은 참에 이거다 싶더라.

-어떤 지점이 맘에 들던가. =시나리오만 15고가 나와 있는 상태라 완성도가 뛰어났다. 보통 타임머신 설정영화들이 아내가 죽어 다시 살리려고 하는 유가 많다. 그런데 이 영화는 그런 클리세가 없었다. 장르영화의 컨벤션을 따르지 않는다는 점에서 재미난 지점들이 보이더라.

-본격적인 SF 장르의 연출이다. =배경으로 보자면 SF로 불리겠지만 전체적으로는 심리스릴러를 만든다는 기분이다. 기존 작품들이 스토리 중심이었다면 지금은 간단한 내러티브로 전개된다. 동화적이고 다소 산뜻했던 전작의 분위기도 벗었다. 시니컬한 측면의 내 성격이 좀 드러나는 것 같다. 이 작품을 통해 내가 욕심내는 부분이기도 하다.

-초고와는 다른 스스로의 색깔이 첨가될 텐데. =7명의 등장인물이 나오는데 타임머신 안에서 서로에 대한 불신과 오해로 아귀타툼을 한다. 초고에는 시작하고 15분 만에 목이 잘려 죽거나 피가 낭자한 장면들이 묘사된다. 난 그런 건 무서워하니 그걸 기대하진 마라. (웃음) 각색하면서 잔인한 장면을 빼는 대신 사람들의 욕망이 충돌하는 지점에 중점을 뒀다.

-우주공간, 타임머신 등의 비주얼적 구현 역시 중요한 과제다. =폐쇄된 공간에서 벌어지는 일이라 미술이나 촬영 부분에서 구현할 수 있는 지점들이 많다. 그렇다고 대규모 블록버스터도 아니고 그럴 필요도 없다. 타임머신 세트 하나만 있으면 되니 말이다. 문제는 폐쇄된 공간이 화면상으로 답답해 보이지 않게 하는 시각적인 아이디어다. 텍스트로 봐서는 감이 안 온다. 미술감독이 그래서 기존 영화보다 훨씬 먼저 참여하게 될 것 같다.

-그래도 역시 멜로라인을 버리긴 힘들었을 텐데. =기존 작품과 한참 다르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내 색깔은 한발 걸치고 갈 것 같다. 메인 캐릭터인 제헌과 건희가 영은을 사이에 두고 벌이는 삼각관계를 만들어 보려는데 아직 정리는 안됐다. 겉으로 드러나기보다는 아삼아삼한 정도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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