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 오락가락하는 비 끝에 무더위가 보인다. 슬슬 휴가계획을 짜야겠다 궁리하는 중이다. 요 몇년간 여름휴가에는 아르바이트를 해왔으나 올해는 어디 가서 자랑할 수 있을 정도로 놀아보자는 생각이 들어서다. 목적지는 이탈리아. 결정하자마자 예산 마련과 더불어 이탈리아에 대한 공부에 돌입했는데, 여행 예산과 루트를 짤 수 있는 가이드북과 더불어 책상 옆에 책들을 쌓다보니 다 먹고 쇼핑하고 노는 얘기다. 유럽 국가별, 도시별로 특색있는 식문화를 즐길 수 있는 책은 <유럽 맛보기>다. 식도락 여행을 작정하고 유럽행을 결심한 이에게 크게 도움이 될 책인데, 이탈리아를 다룬 대목이 가장 많으니 참고하시길. 초콜릿, 치즈, 케이크, 고기, 파스타를 비롯한 면요리, 와인, 각종 안주류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당부의 말씀. 절대 밤에는 읽지 마시라. 배고파 미칠지도. 하지만 막상 현지에 가면 돈 한푼이 아쉬워지게 마련이니 이탈리아 식도락 기행의 원대한 꿈은 책 속에서나 가능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여기저기 인터넷 사이트를 뒤지다 보니 이탈리아 여행 전에 읽는 책으로는 여전히 <로마인 이야기>와 <냉정과 열정 사이>가 꼽히는 모양이었다. 심하다 싶을 만큼 많은 사람들이 <냉정과 열정 사이>를 읽고 영화 <냉정과 열정 사이>를 본 뒤 피렌체의 두오모에 올라 <냉정과 열정 사이>의 O.S.T를 듣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 순간의 놀람이란. 아무 준비 없이 가서 사진 몇장 찍고 다음 도시로 이동하는 것보다야 낫겠지만 어떤 도시를 여행하는 데 있어 타인과 다른 정서의 지도를 갖고 있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다 싶다. 로스 킹의 <브루넬레스키의 돔>은 피렌체의 산타마리아 델 피오레 대성당이 건설되는 과정을 다룬 논픽션이다. 신에 다가가는 건축물을 세우는 천재들의 이야기지만 사진과 그림이 워낙 꼼꼼하고 글은 읽기 쉽다. 나아가 이탈리아의 르네상스 시대 건축물을 이해할 수 있는 바탕이 된다. 팩션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로마 역사를 바탕으로 한 추천할 만한 소설도 있다. 마르그리트 유르스나르의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회상록1, 2>와 <나는 황제 클라우디우스다1, 2, 3>. 전자는 한때 절판되어 참 구하기 힘들었는데 2008년 재출간되었다. 로마 황제에 대한 팩션이라고는 해도 전자는 우아함에 후자는 웅장함에 무게가 실렸다.
마지막으로, 만화 <테르마이 로마이>가 있다. 로마에서 테르마이(목욕탕)를 전문적으로 설계하고 만드는 주인공(아테네 유학파다)이 목욕탕 바닥의 틈으로 빠져들어갔다가 타임 슬립을 통해 일본의 현대 목욕탕들에 수시로 등장하며 선진(!) 목욕문화를 배우는 내용이다. 발가벗은 남자가 얼굴이 평평한 사람들 사이에 등장해 온천물에 데운 달걀, 때수건, 샤워기, 비데를 접하고 로마시대로 돌아가 응용해 성공을 거둔다. 여행에는 도움이 안되겠지만 웃음은 얻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