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들 ‘뚜껑을 열기 전’엔 흥행을 짐작하기 힘들다고 한다. 강형철 감독의 영화는 흥행은 차후문제고, 정확히 상업영화의 카테고리 안에 있음에도 보기 전엔 도무지 형태를 가늠할 수가 없다. <과속스캔들>이 그랬다. 그 영화에 대한 경이는 800만 스코어가 아니었다. 도대체 과속 연애한 아빠와 딸, 그리고 자식 삼대의 이야기에 흥미의 지점이 있기나 한 걸까? 예상은 빗나갔다. 이른바 웰메이드 코믹영화를 지칭해야 한다면 어김없이 그의 영화를 떠올리는 게 맞게 됐다. 전작이 선사한 기대감 때문에 <써니>에 대한 걱정이 줄었냐고? 그럴 리가. 이번엔 무려, 한 강남아주머니의 중학 시절 회상기란다. 여전히 답은 요원해 보였다.
<써니>는 남편과 딸의 뒷바라지로 보낸 세월이 조금은 헛헛해진 사모님이 우연히 암투병 중인 중학 시절의 친구를 만났고, 그 친구로 인해 어린 시절의 단짝들을 소환한다는 내용이다. 이런 구상이라면 전형적인 캐릭터들의 나열이 될 게 불보듯 뻔했다. 주인공 나미(유호정)를 구심점으로 한 7공주 패거리들은 가오를 내세우거나, 외모를 중시하거나, 감상에 젖어 있다거나 대충 이런 식이다. 당시라면 지극히 당연한 소녀들의 일상을 제각각의 틀에 맞춰 구현하는 정도.
그러니 이 영화가 재미를 주기 위해 필요한 대단히 색다른 게 있을까 짐작할 만도 하다. 그러나 강형철 감독의 재료는 지극히 단출하다. 그는 이미 <해적, 디스코왕 되다> <품행제로> 같은 80년대 시대극에서 미리 써먹은 코드들을 나름의 기호로 골라온다. 다소 뻔뻔할 정도의 재활용이지만, 오히려 가공하지 않고 단순하게 정면승부를 함으로써 통했다. 말하자면 나이키 운동화와 <라붐>의 오프닝 주제가가, 순정만화 주인공을 방불케 하는 ‘오빠 친구’ 같은 뻔한 코드들이 모두 <써니>의 추억을 되살릴 주요한 소품이 되는 것이다. 이 소품들은 단순 나열 차원에서 그치지 않는다. 요는 영화의 각 에피소드에서 이 소품들이 캐릭터와 유기적인 결합을 보여주는데, 결국 그 시너지가 웃음과 눈물, 감동으로 순서를 달리하면서 치환되는 방식이다.
아쉽지만 현재의 ‘써니’가 과거를 불러오는 방식, 그리고 그들이 삶을 대하는 태도는 세속적인 어른의 잣대에 머물러 있다는 점에서 이 영화에 100%의 찬사를 전하긴 힘들다. 웃다가도 울다가도 심기가 뒤틀리는 구석은 어쩔 수 없이 생기는 셈이다. 그래서 과거와 현재가 혼재하는 써니의 구성을 굳이 정리하자면, <써니>는 심정적으로 현재보다 과거에 손을 들어주고 싶은 영화다. 필터를 통과한 듯 바랜 과거는, 청춘의 단절을 가져온 비극적인 사건에도 여전히 꿋꿋하게 또 아름답게 회상할 수 있는 판타지의 공간이다. 강형철 감독에 관해서라면, 이번에도 그 공간에 대한 기억을 노련하고도 흥미롭게, 또 스펙터클하게 재현해낸다. 단언컨대 그는 두 번째 작품에서도 자신을 성공적으로 입증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