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창간 기념행사 토크쇼 <영화, 열정을 말하다>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마감 때문에 첫회였던 배우 박중훈씨의 토크쇼에는 참석하지 못했지만, 영화감독이자 영화평론가 정성일, 김태용 감독, 배우 유아인씨의 토크쇼를 보면서 그동안 취재 경험과 잡지에 실린 글을 통해 느끼지 못했던 것들을 얻을 수 있었다. 특정한 영화를 보고 진행하는 ‘관객과의 대화’와 달리 해당 인물에 대한 궁금증을 두루두루 짚는다는 컨셉 탓에 흥미도 떨어지고 깊이도 얕아지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도 있었지만, 이번 자리는 그동안 듣지 못했던 그들의 속깊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는 점에서 유익했다고 자부한다.
직접 만난 세 게스트에게서 공통적으로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이번 행사의 주제였던 ‘열정’이었다. 어릴 적부터 영화에 대한 꿈을 품었던 정성일씨는 고등학생 시절 아버지께 “연극영화과에 가고 싶습니다”라고 말했다가 뒤통수를 맞고 뜻을 잠시 접었지만, 대학 시절 프랑스문화원 등을 다니며 독학으로 영화에 대한 열정을 발산했다. 그는 지식인 사회 안에서 영화가 멸시당하는 상황에 분개해 문학, 예술, 철학 등을 이 악물고 섭렵했다고 했다. 영화를 옹호하겠다는 그 뜨거운 열정이 지금의 정성일씨를 만든 셈이다. 김태용 감독은 “열정이 없는 게 나의 특징이라면 특징”이라고 말했지만, 그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인 관객은 없었을 것이다. 예쁘장한 꼬마아이라는 인상을 극복하기 위해 쿵후 도장을 다니고, 짝사랑을 쫓아 교회에 몰두했던 그의 유소년기나 대학을 졸업하고 영화아카데미에 들어가 영화를 익혔다는 점만으로도 그의 열정은 확인할 수 있다. 그가 시네필이 아니었을지는 몰라도 영화 안에서 그의 집요함과 뜨거움을 발견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 게다가 “<만추>를 찍으면서 빨리 다른 영화를 찍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그의 말에 비춰보면 영화에 대한 그의 열정은 점점 성장하는 중인지도 모른다. 유아인씨의 열정은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을 정도였다. “스스로를 드러내고 싶은 욕망”을 갖고 있는 사람답게 그는 연기를 통해서 자신을 성장시켜왔고 스타덤 너머에 있는 두터운 본질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관객의 열정 또한 빼놓을 수 없다. 정성일씨를 만나기 위해 파주에서 찾아온 분부터 유아인씨를 만나기 위해 일본에서 건너온 분까지, 그들의 열정은 게스트들의 그것에 견줘 떨어질 게 없었다.
그날의 만남들은 뭔가를 소진하고 있다는 허탈함, 무언가에 소비되고 있다는 맥빠짐으로 황량하기 짝이 없는 이 마음에도 불씨를 던져줬다. 정말 오랜만에 갖게 되는 뜨뜻하고 따끔한 느낌. 열정이라는 불덩어리로 커질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그 느낌만으로도 나쁘진 않다. 어떤 계기가 생기면 활활 타오를 수도 있겠지. 이를테면 탕웨이와의 만남?(김태용 감독님, 그분의 ‘깜짝 방문’을 알려주지 않으신 건 너무한 처사라고요, 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