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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가 된 ‘소녀’들의 청춘가
이화정 사진 오계옥 2011-05-05

찬란했던 여고시절을 회상하는, <과속스캔들> 강형철 감독의 신작 <써니>

소녀들은 어떻게 성장할까? <말죽거리 잔혹사>로 소년들이 과격한 청춘의 페이지를 넘기는 동안, 소녀들은 아기자기한 자신들의 방식으로 어른의 세계로 진입하고 있었다. 중년이 되어서야 가까스로 꺼내놓을 수 있었던 그 시절의 기억. 추억으로 뭉뚱그려 부르기엔 조금 더 깊숙한 소녀들의 이야기. <과속스캔들>을 연출한 강형철 감독이 두 번째 작품으로 그 시절을 복기한다.

소녀들의 성장은 고요하다. 이소룡처럼 요란스럽게 쌍절곤을 휘두르지 않고도, 포르노 잡지를 사러 청계천씩이나 나가 돌아다니지 않고도 소녀들은 알게 모르게 한뼘 자란다. 지랄같이 변덕스럽고 요상하게 생겨먹은 게 사춘기라지만, 하고많은 세월 중 그 찰나의 순간쯤 뭐 그리 대수라고! 맘먹고 돌이켜본다 해도 그게 그렇다. 내가 모아둔 ‘아하’의 사진 한 박스를 ‘듀란듀란’의 최신 사진 한장과 맞바꾼다거나, 교과서 사이로 할리퀸 로맨스를 숨겨놓고 읽다가 선생님한테 한대 쥐어박히는 정도. 브랜드가 절대 영향력을 행사하던 시절, 남들 다 있는 나이키 정도는 신어줘야 한다는 게 그나마 가장 큰 고민이라면 고민이었을까.

<써니>는 이토록 사소하고도 멀어진 기억을 소환하는 작업이다. 좀체 돌아볼 것 같지 않았던 망각의 강을 건너, 어쩌면 가장 찬란했을 한 시절을 무료하고 지지부진한 지금의 나날들에 이식하려는 시도다. 당황스럽지만, ‘향수’와 ‘추억’이 담긴 빛바랜 상자의 먼지를 털어내고 나니, 녹록지만은 않았던 그 시절의 아픔이 불쑥 드러난다. 모두에겐 성인의 궤도에 오르기 위해 애써 잊고 넘어가야 했던, 가슴 아픈 상실의 시대가 존재하고 있었다.

만화적 상상력과 판타지 장르의 효과적 활용

갑작스럽게 뜻밖의 만남을 주도하는 건 의외로 강남 아줌마 나미(유호정)다. 샤넬백 하나쯤 아무렇지 않게 사주는 남편을 두고 무슨 고민이 있나 싶지만, 남편과 딸에게 그저 뒷바라지하는 그림자 취급당하는 일상이 헛헛할 만도 하다. 엄마 병문안 간 병원에서 우연히 고교 시절 친구 춘화(진희경)를 만나면서 나미는 잊고 있던 지난 시절을 떠올린다. 당시 전라도 벌교에서 서울로 전학 온 나미(심은경)는 등교 첫날 다행히 ‘날라리’들에게 호의적인 평가를 받는다. 행동 하나하나가 멋진 학교짱 춘화(강소라)를 필두로, 허구한 날 쌍꺼풀 만드느라 바쁜 장미(김민영), 거침없는 육두문자의 소유자 진희(박진주), 엄청난 괴력을 소유한 문학소녀 금옥(남보라), 미스코리아를 꿈꾸는 복희(김보미), 그리고 출중한 외모와 신비함을 간직한 수지(민효린)까지가 모두 이들 패거리다. 나미의 합류로 7명, 이른바 칠공주가 된 이들은 ‘써니’라는 이름의 클럽을 결성해 교내 주도권을 행사한다.

그러니까 <써니>는 25년의 세월이 지난 현재, 나미가 암투병 중인 춘화를 위해 뿔뿔이 흩어진, 써니의 멤버를 찾아 나서는 이벤트다. 안다. 다 자란 성인이 순수했던 한 시절을 돌아본다는 점에서 <써니>가 줄 수 있는 신선도가 그닥 높지 않다는 것을. 발육이 덜 된 가슴 크기를 고민하며 우정을 맹세한다는 소녀들의 이야기는 데미 무어가 나온 <나우 앤 덴> 같은 영화에서 이미 효과적으로 써먹은 터였다. 팝 컬처가 주도했던 80년대를 상징하는 것들, 이른바 디스코바지와 카세트테이프, 라디오 디제이와 경쟁하듯 치켜올린 앞머리, 나이키와 짝퉁 나이스의 비교체험은 이미 <내 나이키>와 <품행제로> <몽정기> <해적, 디스코왕 되다>를 거치며 일종의 트렌드처럼 전시되어왔다. <과속스캔들>이 그랬듯이, 이번에도 진부한 소재를 대중적 화법으로 조율하는 강형철 감독을 믿는 수밖에 없었다.

가장 큰 난제는 물론 과거와 현재의 유기적인 결합이었을 테다. <써니>는 감상에 치달아 과거를 회상하는 대신, 다양한 방식으로 시간의 이동을 재편집함으로써 과거와의 도킹에 성공한다. 에피소드의 밑바탕이 코믹이라면, 과거를 맞닥뜨리는 방식은 판타지에 가깝다. 어린 시절과의 만남은 단순히 플래시백으로 처리되는 게 아니라, 마치 현재의 내가 과거의 나를 방문하는 것과 같은 시각적 표현으로 완성된다. 오랜만에 모교를 찾은 현재의 나미가 25년 전, 어린 나미와 조우하는 방식은 등굣길 어린 나미에게 떠밀림을 당하면서다. 현재와 과거를 이어주는 이런 장치들은 영화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변주되는데, 현재의 나미가 첫사랑의 상처 때문에 좌절하는 어린 나미를 달래준다거나, 지금의 나미와 딸이 아침에 벌이는 승강이를 마치 어린 나미와 엄마의 관계와 똑같이 교차편집하는 식이다. 만화적 상상력과 결합된 판타지 장르의 활용은 결과적으로 과거와 현재를 무수히 반복하는 <써니>의 구성을 어색함없이 꾸며주는 데 일조한다.

개성이 또렷이 부각되는 캐릭터들

<써니>의 강점을 극대화하는 또 하나의 장치는 이 영화가 캐릭터를 구축하는 방식이다. 7명의 어린 시절, 또 짝을 이룬 7명의 성인이라는 엄청난 수의 캐릭터를 다루기가 난감할 만도 했다. 그러나 <써니>의 인물들은 스토리와 뒤엉켜 청소년 시절에 뻔히 있을 법한 가정사를 들먹이며 시간을 허비하지 않는다. 캐릭터들은 각자를 부각할 수 있는 하나의 장기만으로 승부를 두는데, 이는 드라마의 등장인물이라기보단 마치 버라이어티쇼의 출연진이 각자의 캐릭터로 시청자에게 친근감을 형성하고 어필하는 방식에 가깝다. 여학생들에게 남학생 못지않은 인기를 구가하는 학교짱 춘화와 긴 생머리와 냉랭한 표정으로 퀸카의 표본이 되는 수지, 또는 짧은 등장에도 순정만화 주인공을 연상시키는 수려한 외모로 단숨에 소녀들의 마음을 빼앗는 ‘오빠친구’가 대표적이다. 모두 그들 캐릭터의 심연에 있을 법한 고민을 말하는 대신, 맡은 바 전형적인 캐릭터를 끝까지 밀고 나가는 데 주력한다. 애초 주문받은 고정적인 이미지 안에서 각자의 배틀을 하면 되는 승산이 분명한 게임인 셈이다. 쏟아지는 써니들 앞에서 관객이 누군가를 꿰맞추기 위해 애써 수고를 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소녀들은 질서정연하게 자신을 대표하고 있다.

<써니>가 과거의 스토리를 이어가는 동력은 소녀들의 우정에 근거하고 있다. 써니의 반대파인 ‘소녀시대’가 써니의 일원인 나미를 이유없이 괴롭힐 때, “우리 중에 하나 건드리는 건 전부 건드리는 거잖아!”라고 비분강개하는 방식이다. 일견 우스꽝스럽기만 한 이 주문은 당시 소녀들에게는 도원의 결의만큼이나, 아니 그보다 더 중차대한 삶의 문제였다. 나머지 친구들을 위해서라면 앞뒤 가리지 않고 나선다거나, 단 한명을 위해 나머지 여섯명이 들고 나와 도와주는 형국은 <써니>의 여러 장면을 구성하는 원동력이다. 이 원칙에 따라 나미는 친구를 욕한 아이들을 소각장으로 불러내고, 괴롭힘을 당하던 나미는 수지의 도움으로 구출된다. 반대파인 ‘소녀시대’에 치욕을 당한 나미를 위해 시위대와의 충돌이 있던 날, 써니는 소녀시대를 향해 죽자고 맞짱을 뜨게 되고, 이 장면은 <써니>의 가장 스펙터클한 장면으로 기록된다. 그러니 같은 방식으로, 매점에서 나미가 본드를 흡입한 같은 반 친구에게 곤욕을 치를 때 역시 당연히 써니의 멤버들은 모든 걸 팽개치고 나미의 구출에 뛰어들 수밖에 없었던 거다. 소소하고 아기자기한 소녀들의 일상은 이 지점에서 돌이킬 수 없는 파경을 맞게 되지만 그건 어쩌면 갑작스럽게 도출된 사건이 아닌, 소녀들의 세계를 지배하는 법칙이 낳은 필연적인 결과였을지도 모른다.

예기치 못한 사건으로 찬란했던, 영원히 지속될 것 같은 청춘은 단절을 고한다. 무수한 청춘 드라마들이 ‘죽음’으로 썼던 그 성장통을 <써니> 역시 죽음은 아니지만, 비슷한 방식으로 반복한다. 그들에게 가해진 물리적인 고통보다 더한 아픔은 어쩌면 이제 멋모르고 서로를 위해주던 순수함의 세계가 다시는 올 수 없다는 사실을 자각했다는 점일 것이다. 원하든 원치 않든 어른의 세계는 바짝 어두운 동굴의 입구를 드러낸 채 소녀들의 파릇파릇한 일상을 덮치고 있다. 알을 깨고 어른의 세계로 진입하기 위해서 할 수 있는 건 소극적인 방식의 저항뿐이다. 매일 함께 모여 서로의 속내를 터놓던 친구들은 이제 아쉽지만, 각자의 길을 가야 한다. 8할이 웃음으로 점철된 이 영화를 보면서 만약, 흐르는 눈물을 어찌할 수 없는 순간이 왔다면, 당신이 그 청춘을 떠나는 의식을 먼저 치러낸 어른이기 때문일 것이다.

예측할 수 없는 결말로 인한 묘한 긴장감

단절과 안녕의 과정. 청춘을 떠나보내는 그 의식의 잔혹한 시간 속, <써니>는 사라진 수지를 통해 그 통증을 배가시킨다. 코믹과 판타지, 드라마의 교차 속 <써니>가 숨겨놓은 또 하나의 장르는 미미한 강도의 미스터리다. 하나의 장르를 찾아내 이름붙이기 민망할 정도지만, 수지를 찾아가는 과정은 궁금증과 함께 경미한 공포심으로까지 번져나간다. 과거 그들이 겪었던 극악한 사건이 주는 강도 때문에 오는 떨림이 아니다. 그보다 더 무서운 건 25년이라는 세월이 남기고 간 흔적이 도대체 어떤 모습으로 현재에 표상화될지 도무지 감을 잡을 수 없다는 데서 오는 걱정에 가까울 것이다. 결국, 124분의 러닝타임. 창가로 쏟아지는 햇살을 받으며 서 있던 어여뻤던 수지의 모습을 찾는 건 단지 6명 써니 멤버뿐만이 아니다. 관객 모두, 애타게 모습을 감춰버린 수지의 모습을, 그녀의 현재를 걱정하고 도무지 긴장을 늦출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결국 수지는 마지막 장면에서 자신의 건재함을 알린다. 약간의 힌트를 주자면, 환한 미소로 미스터리를 풀어주는 성인이 된 수지의 모습은 한치 어긋남없이 극한의 이상을 반영하고 있다. 어쩌면 그녀의 모습이 너무 비약적이라고 탓하는 이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과거의 고통을 말끔히 씻어내버린 리얼리티에 어긋나는 현재가 거짓처럼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그게 어떤가? 오랜 기억 속에 바래져서 조금쯤 예쁘게 채색되어 있더라도, 그게 뭐 그리 대수일까. 이상에 가까운 수지의 얼굴은 우리 모두가 언젠가 한번쯤은 되돌아가고 싶었던 청춘의 형상일지도 모른다. 지금은 다 커버린, 어른들의 바람을 알아챈 감독에게 감사를 표할 일일까? 아니 감독이 써니들과 같은 또래라서 도출될 수 있었던 가장 아름다운 결말이었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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