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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컴 투 석정리? 조금 식상하지 않나하는 아쉬움 <적과의 동침>
이영진 2011-04-27

설희(려원)의 결혼식을 앞두고 석정리는 떠들썩하다. 석정리 사람들은 설희의 할아버지이자 마을의 가장 웃어른인 구장(변희봉)댁 경사를 제 일처럼 반긴다. “에이…이승만 박사가 으떤 분인디… 아, 그 냥반이 빨갱이 잡아 족치는 걸로 박사까지 하신분 아니여.” 전쟁이 났다는 소식에도 석정리 사람들은 태평 무사하다. 설희도 화촉을 밝힐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며 마음 설렌다. 하지만 석정리에 들어온 건 함이 아니라 변고다. 반공청년단 출신의 정혼남 택수(이신성)가 “빨갱이들을 피해” 야반도주한 것이다. 초야도 치르지 못한 채 생과부가 될지 모를 상황에 처한 설희, 구장은 손녀의 딱한 처지 앞에서 급기야 드러눕는다.

‘웰컴 투 석정리’로 제목을 바꿔 불러도 큰 무리는 없을 것 같다. 빨갱이들은 머리에 뿔 달린 놈들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던 석정리 사람들은 잠시 반항을 하기도 하지만, 어느새 인민군 장교 정웅(김주혁)의 눈에 들기 위한 경쟁에 돌입한다. 처음엔 목숨을 부지하기 위한 방편이었던 마을 사람들의 호의는 점점 살가운 인정으로 변해간다. 마을의 아낙들은 인민군 소년에게 마음을 주고, “인민 낙원을 건설하겠다”는 정웅 또한 총을 내려놓고 소를 끌기도 한다. 정웅은 반공청년단의 폭력에 부모를 잃고 복수심에 불타는 인민군 소대장(유하준)을 다독이면서 어린 시절 머나먼 타국에서 만난 적 있는 설희를 연모한다.

<적과의 동침>의 전반부가 원하는 건 웃음이다. 봉기(신정근)를 비롯한 석정리 사람들은 방공호를 유치(?)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난리통에도 수원댁(양정아)은 재춘(유해진)을 유혹하기 바쁘다. 정웅 또한 다르지 않다. 할 말은 기어코 하고야 마는 고집센 설희 주변을 맴도는 정웅은 그녀의 마음을 얻기 위해 미제 초콜릿을 선물하는 반동 행위도 서슴지 않는다. 그러나 석정리는 동막골이 아니다. 설희의 정혼남인 택수가 부상을 당한 채 마을에 숨어들고, 마을 사람들을 몰살하고 퇴각하라는 상부의 지시가 내려지면서, 설희와 정웅의 로맨스는 핏빛으로 변해간다.

남북 소재 영화의 드라마투르기를 고스란히 답습하는 건 <적과의 동침>의 아쉬움중 하나다. 50년 전 역사의 비극을 불러와 희극으로 치장하고, 결국엔 다시 비극으로 마무리하며 현재의 비극을 환기하는 플롯, 이제 식상할 때가 되지 않았나. 물론 영화는 영화일 뿐이라며 비극을 전시하고 인물들을 영웅화하는 것보단 나은 선택이지만 말이다. 캐릭터들의 구수한 입담으로 이러한 약점들이 어느 정도 상쇄되기도 하나 포탄보다 더 많이 쏟아지는 농담들에 묻혀 설희와 정웅의 관계가 그다지 절실하게 다가오진 않는다. <킹콩을 들다>로 데뷔한 박건용 감독의 두 번째 장편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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