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의식, 내 사랑의 원죄
프로젝트5- 곽재용 감독의 판타지 멜로 <데이지>
<엽기적인 그녀>로 8년 만에 관객과의 재회에 성공한 곽재용 감독의 신작 <데이지>(에그필름 제작)는 오해가 낳은 사랑, 그리고 원치 않는 운명에 끌려다니는 세 영혼의 이야기를 다룬 판타지 멜로로, 현재 시나리오 작업중이다. 영화는 가까운 미래인 2006년에서 현재인 2002년까지 시간을 거슬러온다. 킬러 박의, 경찰 정우, 화가 혜영, 세 사람이 번갈아 1인칭 내레이션을 들려주며 각각의 진술을 통해 사건이 전개된다. 박의는 살인을 저지른 뒤 시골 마을에 숨어든 킬러. 그가 숨어든 집 창 밖으로는 매일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예쁜 여자 혜영이 보인다. 그림을 그리러 가는 혜영은 매일 기찻길을 건너다닌다. 냇물을 건너면 안전하지만 다리가 놓여 있지 않아 어쩔 수 없이 위험한 기찻길을 지나는 것. 어느날 밤 박의는 그녀를 위해 몰래 냇물에 다리를 놓아주고 다음날 그녀는 다리를 건너간다. 그날 그 시각 기찻길에서 사고가 터지고, 박의는 혜영의 보이지 않는 은인이 된다. 한편 거리에서 초상화를 그리는 혜영은 매일 자신을 그려달라고 찾아오는 한 남자를 만난다. 혜영은 그 남자가 예전에 자신을 위해 다리를 놓아주었던 남자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를 사랑하게 된다. 그러나 경찰인 정우가 그렇게 한 이유는 그곳이 감시중이던 가게가 가장 잘 보이는 위치였기 때문일 뿐. 두 사람의 모습을 지켜보던 박의는 질투심에 사로잡히고 결국 정우를 죽이려 한다.
<데이지>는 원래 96년에 <귀>라는 제목으로 썼던 시대극을 현대판으로 각색한 것이다. 광해군 때 명나라에 파병되었던 병사가 전쟁터에서 자신의 죽음을 알리기 위해 말갈기에 피묻은 천을 묶어 보낸 뒤 말이 돌아올 때까지 영혼으로 떠돌면서 여러 귀신을 만나는데, 그들은 남자의 마음속 죄의식이 만들어낸 귀신들이었다는 이야기였다. 결국 <데이지>는 현실에 집착이 강해 죽은 뒤에도 죽은 줄 모르는 영혼에 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죽은 줄 모르는 영혼이라는 점에서는 <식스 센스>와 비슷하다. 사실 곽재용 감독은 <식스 센스>를 보러 갔다가 “딱 5분 보니 유령인 줄 알겠더라. 큰일났다” 싶었다고. 하지만 <데이지>는 등장인물이 영혼이라는 것이 <식스 센스>와 비슷할 뿐, 영혼인 상태에서도 사랑과 죄의식에 집착하는 삼각관계쪽에 무게중심을 둔다. 그래서 중반부쯤 그들이 영혼이라는 것을 밝히고, 후반부는 서스펜스로 끌어가려고 한다. 원치 않는 운명의 수렁에 빠진 사람들을 다루는 이야기인 만큼, 스토리보다는 비장미의 표현에 치중할 생각이다. 위정훈 oscarl@hani.co.kr
아날로그 남자, 디지털 여자
프로젝트6- 박광춘 감독의 멜로드라마 <마들렌>
“많이 쉬었다고 하는데, 일부러 쉰 건 아닙니다. 더 쉴 생각은 없구요. (웃음) 그동안 할 얘기가 많아진 거겠죠.” ‘한국형 블록버스터’란 수식어를 달고 서울관객 40만명을 동원했던 <퇴마록>으로 성공적인 데뷔전을 치른 지도 만 3년4개월. 성공한 신인감독으로서는 꽤 오랜 휴식이었다. “스케줄과 제작비 문제로 어쩔 수 없이 타협해야 했던” <퇴마록>의 기억을 반복하고 싶지 않았고, 성공에 대한 부담도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99년 캐스팅까지 끝냈다가 투자사들이 발을 빼면서 접었던 <개미지옥>도, 빠듯한 해외 로케를 전제한 <아나키스트>와 <비천무>도, 혼자 구상해본 투명인간 이야기도, 그의 인연이 아니었다.
그리고? 인간세계를 지배하려는 악령과의 고투라는 묵시록을 지나온 박광춘 감독의 두 번째 영화는, 뜻밖에 사랑이야기다. 6개월 전, 중앙대 연극영화과 후배라는 설준석씨가 써 들고온 시나리오를 본 게 <마들렌>의 시작. <마들렌>은 “삶의 매순간을 가슴으로 느끼며 살고 싶어하는 남자, 인생을 빨리 달려가고 싶은 느낌의 여자”의 진솔한 연애담이다. 독서를 즐기며 소설가를 꿈꾸는 대학생 남자와 자신이 원하는 대로 소신껏 대학 대신 미용사의 길을 택한 여자. 중학교 동창인 이들은 9년 만에 우연히 재회하고, 사랑에 빠지기 전에 연애를 시작한다. 어딘지 구식인 남자의 느림과 컴퓨터 게임을 즐기는 여자의 경쾌함, 서로 다른 이들의 만남이 순간순간 쌓여가면서 “가랑비에 옷이 젖어들 듯” 사랑이 다가온다.
‘마들렌’은 로버트 프루스트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나오는 빵의 이름. 소설 속 주인공이 어느날 그 빵을 맛보는 순간 잊고 있던 추억을 떠올리던 것처럼, 영화에서 ‘마들렌’은 실제 빵이라기보단 “기억을 끄집어내는 동기가 되는 맥거핀”을 의미한다. 서로를 알아가고 상처까지 보듬어가는 현재진행형의 과정, “혀끝에 저장고가 있는 것처럼 미각으로 느껴지는 사랑의 기억”이 ‘마들렌’인 것이다. “줄리아 로버츠가 나오는 로맨틱코미디도, 왕가위식의 우울한 멜로도 아니고, 가벼우면서도 느낌이 있는, 멜로지만 <청춘 스케치>처럼 청춘 성장영화 같기도 한” 영화가, 박광춘 감독이 보여주고 싶은 젊은 사랑의 섬세한 초상이다. 물론 “대중과의 끈을 놓지 않는 선”을 고민하면서. 데뷔 전부터 의기투합했던 서우식 프로듀서와 함께 프리시네마에서 제작할 <마들렌>은, 현재 막바지 수정중인 시나리오를 2002년 1월까지 마무리짓고, 늦봄까지는 촬영에 들어갈 계획이다. 황혜림 blauex@hani.co.kr▶ 주목! 이들이 스크린을 지배하리라
▶ 프로젝트1- 장윤현 감독의 <테슬라>
▶ 프로젝트2- 윤종찬 감독의 <그녀의 아침>
▶ 프로젝트3- 변영주 감독의 <밀회>
▶ 프로젝트4- 김상진 감독의 <광복절 특사>
▶ 곽재용의 판타지 멜로 <데이지>, 박광춘의 멜로드라마 <마들렌>
▶ 김정권의 <화성으로 간 사나이>, 양윤호의 <바람의 파이터>
▶ 프로젝트1- 조지 루카스의 <스타워즈 에피소드2: 클론의 습격>
▶ 스티븐 스필버그의 <마이너리티 리포트>, 리안의 <헐크>
▶ 배리 소넨필드의 <맨 인 블랙2>, 데이비드 핀처의 <시어드>
▶ 로베르토 베니니의 <피노키오>, 알랭 기로디의 <라발레르>
▶ 스티븐 프리어즈의 <더티 프리티 싱즈>, 요시시게의 <거울의 여자들>
▶ 타란티노의 <킬 빌>, 폴 토머스 앤더슨의 <펀치드렁크 너클 러브>, 토드 헤인즈의 <파 프롬 헤븐>
▶ 해외 애니메이션 3편 <아이스 에이지>,<릴로와 스티치>,<스피릿:치마론의 종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