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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토리얼] 그 평정심, 스크린에서도 보게 되기를
문석 2011-03-28

장선우 감독을 처음 만난 건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 촬영현장이었다. 딱 10년 전 부산의 한 화력발전소에 차려진 오픈세트에서 그는 고뇌와 번민을 거듭하고 있었다. 예정된 제작기한을 넘긴 지 오래였고 계획된 예산 또한 훌쩍 넘은 상황이었으니 그럴 법도 했다. 피곤함과 초조함과 괴로움으로 뒤얽힌 그의 표정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그 전과 그 이후에도 수많은 촬영장에서 감독을 만났지만 그토록 고통에 찬 표정은 본 적이 없다.

세월이 한참 흘러, 3년 전 인터뷰를 위해 제주도를 찾았을 때 그의 표정은 놀랍도록 온화했고 평정심으로 가득했다. 3년 동안의 제주도 ‘유배’ 생활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던 것 같다. 장선우 감독은 제주도의 조용한 바닷가에서 자연과 벗하면서 소박한 마음의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수양을 하는 듯 보였다. 세상사의 온갖 짐을 훌훌 버리고 자유로워진 자의 환희마저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이번에 씨네산책 팀을 따라가 만난 장선우 감독의 표정은 더욱 평화로웠다. 지역 명소로 자리매김한 ‘…카페 물고기’의 조력자(사장은 아내 이혜영 감독)로서, 불교의 원리를 탐구하는 구도자로서, 계절을 따라가며 뿌리고 가꾸고 거두는 농부로서의 삶은 충만해 보였다. 일상의 소소함 속에서 감동을 얻고 의미를 찾아간다는 그에게서 10년 전의 표정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자신의 지난 삶 또한 먼발치에서 거리를 두고 바라볼 수 있게 된 것도 같았다. 이번 씨네산책을 읽어보면 아시겠지만 영화적 역정에 대한 객관적이면서도 냉정한- 그러나 자기 파괴적이지 않은- 그 자신의 평가는 무척 흥미로웠고, 80년대적 운동성이 마당극 운동을 거쳐 채플린, 안토니오니, 데 시카라는 영화적 출발점과 어떻게 만났는지를 듣는 것 또한 재미있었으며, 기타노 다케시, 왕가위, 쿠엔틴 타란티노처럼 “내가 갖지 못한 것을 가진” 감독들을 좋아한다는 사실 또한 새로웠다.

무엇보다 반가웠던 건 장선우 감독이 여전히 영화를 고민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아직 명확히 정리되지 않은 프로젝트이긴 하지만 그는 붓다의 이야기를 애니메이션으로 만든다는 원대한 계획을 갖고 있다. 한참은 더 지나봐야 윤곽이 드러나겠지만 1990년대를 정면돌파하면서 한국영화의 지평을 확장했던 대감독의 귀환은 상상만으로도 기대감을 자아낸다. 물론 이 프로젝트는 쉽지 않을 것이다. 제작비와 노력, 그리고 시간 또한 무척 많이 들 것이 틀림없기 때문이다. 그가 “나도 모르겠어, 될지…”라고 말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여전히 그의 세계를 그리워하는 해외 영화계의 적절한 도움이 있다면 불가능하지만도 않다. 그리고 만약 그가 영화로 돌아온다면 한 가지만큼은 확실하다. 10년 전의 그 괴로운 표정이 다시는 맺히지 않을 것이라는 점 말이다. 믿기지 않는다면 ‘…카페 물고기’를 찾아가 직접 그의 표정을 확인해보셔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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