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은 윤은혜의 어떤 모습을 기억하고 있을까. 발랄하고 귀여운 여고생 신채경(<궁>)일까, 남자처럼 털털한 고은찬(<커피프린스 1호점>)일까. <포도밭 그 사나이>의 서울 아가씨와 <아가씨를 부탁해>의 재벌 상속녀를 거쳐왔지만 윤은혜는 여전히 어리고 중성적인 느낌의 톰보이 이미지가 강한 게 사실이다. 그런 점에서 조심스럽게 물었다. 좀더 진지한, 20대 후반의 나이에 걸맞은 연기에 도전해보고 싶진 않은가. 그녀가 되물었다. “저에 대한 편견을 갖고 질문하시는 것 같아요. 제가 그런 역할을 안 하고 싶은 것처럼 보이세요?” 그러고 보니 윤은혜는 더이상 아이돌이 아니다. 16살의 나이에 베이비복스의 막내로 연예계에 들어온 지 벌써 10년이 넘었다. 아이돌에서 배우로 완전히 전업한 그녀는 지금 진지하게 연기를 고민하는 중이다.

그런데 왜 윤은혜는 <마이 블랙 미니드레스>의 주인공 넷 가운데 그나마 가장 평범해 보이는 유민을 선택했을까. 유민은 부잣집 딸도 아니고, 특출하게 예쁘지도 않다. 막내 방송작가로 고군분투하는 유민은 연예인으로 성공한 친구를 부러워하기도 하고 답답한 현실에 징징거리기도 하는 캐릭터다. 윤은혜가 연기해왔던 기존 역할들의 이미지가 딱 떨어지게 반영된 것으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녀에겐 조금 복잡한 다른 속내가 있었다. “많은 분들이 저에게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역할이 유민이니까 다른 역할이 당연히 눈에 들어올 수밖에 없죠. 하지만 이번에는 욕심을 내기보다 스크린에서 자신있고 편안하게 다가갈 수 있는 역할로 가보자고 생각했어요.”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배역을 선택하고 욕심을 부리지 않겠다고 마음먹은 데에는 스크린 연기에 대한 두려움도 약간 작용했다. 그 두려움은 따지고 보면 오히려 그녀의 철저한 완벽주의에서 나왔다. “제가 약간 완벽주의자 같은 성격이 있어요. 제 스스로를 위하겠다고 영화에 해가 되고 싶지는 않았어요. 하지만 <마이 블랙 미니드레스>를 찍으면서 마인드가 좀 바뀌었어요. 이제 겁내지 말고 많이 도전해보자는 식으로요.” 이건 완벽을 추구하는 그녀가 앞으로는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용감하게 무엇에건 도전하겠다는 말로 들린다.

“제작사나 감독님이 들으면 싫어할지도 모르겠지만, 저는 이미 얻을 건 다 얻었어요. <마이 블랙 미니드레스>는 좋은 경험이었고, 다음 영화가 또 기다려지고 영화 촬영이 이렇게 재밌구나 느꼈어요. 그동안 내가 겁내왔던 모든 것들이 2~3달 동안 풀린 거지요.” 그러니 과연 그녀의 말에서 윤은혜라는 배우가 다음 영화에서 어떤 변신을 보여줄지 기대하게 된다. 아이돌 출신이라는, 톰보이 이미지의 꼬리표를 뗄 때가 온 것인지도 모른다. 지금 윤은혜는 도전적이고 진지한 배우의 더 높은 도약을 위해 <마이 블랙 미니드레스>에서 숨고르기를 하고 있다.

감독이 본 윤은혜는… “고민을 많이 해오는 배우예요. 자기가 가진 장점에도 불구하고 단점이 더 많다고 생각해요. 발음도 자신있게 해도 되는데 디테일에 신경을 많이 쓰고요. 심지어 상대방이 연기할 때 내가 어떻게 해야 하나 세심하게 고민해요. 감독 입장에서 무슨 말을 하면 처음엔 모르겠다는 표정을 하고 있어요. 그런데 슛이 들어가면 정확하게 해내는 거예요. 그래서 심지어는 얘는 아마 그게 전략인가 보다 싶었어요. (웃음) 주변 사람들을 잘 챙기는 타입이라, 나라면 저렇게 사는 게 피곤하겠다 생각할 정도예요.”

윤은혜가 반한 유인나의 연기 “술을 잔뜩 먹은 다음날 인나 언니가 테이블 밑에서 깨서 일어나다가 딱 부딪히는 신이 있는데요. 언니가 부딪히고 리액션을 하는데 저에게는 없는 게 보였어요. 저는 그럴 때 그 사람이 매력적으로 보여요. 그 장면에서 인나 언니는 정말 귀여웠고, 유인나라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리액션을 보여줬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