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봉만대 감독은 한국 에로영화의 거장이었다. 그거야 오래전 이야기다. 이후 <맛있는 섹스 그리고 사랑>(2003), <동상이몽>(2004)을 거쳐 호러영화 <신데렐라>(2006)를 만든 그는 요즘 스마트폰영화에 빠져 있다. 지난해 10월에 열린 ‘아이폰4 필름페스티벌’ 때문이다. 다른 12명의 감독과 함께 페스티벌에 참여한 그는 아이폰4로 단편 <맛있는 상상>을 만들었고, ‘제1회 olleh·롯데스마트폰영화제’에는 심사위원으로 참가했다. 지금 봉만대 감독은 장편영화 <청개천 카리스마Ⅱ>를 준비 중이다. 30% 정도를 스마트폰으로 촬영하는 영화다.
-<맛있는 상상>을 찍기 전에도 아이폰이 있었나. =없었다. 영화를 찍으면 하나 준다기에. (웃음) 아이폰의 카메라 기능은 사실 휴대폰에 딸려 있는 액세서리 개념이잖나. 그런데 HD를 지원해서 화질과 색감도 좋고, 특히 접사 기능이 탁월하더라. 또 원색의 표현이 정말 좋다. 그래서 좋은 접사 기능과 색감을 활용할 수 있도록 음식을 통한 에로티시즘이라는 주제로 접근했다.
-기술적으로 어려운 부분들은 무엇이 있었나. =기술적인 문제는 별로 없었다. 아이폰 자체에서 24프레임이 지원된다. 또 해상도도 레드카메라에서 지원하는 4K까지 가능하다. 영화는 기술보다 시간의 문제인 것 같다.
-현장의 광원이 부족할 땐 셔터 스피드가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는 약점도 있지 않나. =움직일 때마다 셔터 스피드를 자동으로 인지해버린다. 똑같은 노출에서도 계속해서 수정해주지 않으면 조금만 패닝을 해도 23프레임이 되거나 아예 끊겨버린다. 그래서 통합 어플이 없을까 찾아봤다. 없더라. 이건 음모다. (웃음) 사실 통합 어플이 있어서 24프레임의 필름룩을 재현할 수 있다면 누가 촬영용 카메라를 쓰겠는가. 스마트폰으로는 완벽하게 영화를 못 만들도록 제약을 걸어둔 게 아닌가도 싶다. (아이폰을 보여주며) 이건 내가 활용하는 파나스카운트라는 어플이다. 파나비전에서 나온 건데 2.35 대 1, 1.35 대 1의 화면이 어떤 건지 프레임으로 보여준다. 그런데 화면의 비율만 어림잡을 수 있고 막상 이걸로 촬영은 못하게 되어 있다. 영화를 찍을 때 촬영감독에게 보여주며 “이 정도로 해주세요”라고 설명하는 보조도구로는 쓸 수 있을 거다.
-요즘은 ‘올모스트 DSLR’이라는 어플을 촬영용으로 많이 쓰지 않나. =좋은 어플이다. 노출값도 평균으로 유지해준다. 만약 여기서 2.35 대 1이나 24프레임을 설정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근데 다르게 생각해보면 이런 고민은 사실 지금 한국에서만 하고 있는 걸 수도 있다. 다른 나라에서는 아이폰으로 영화를 만든다는 고민 자체를 하지 않았을 테니까. (웃음)
-곧 촬영에 들어가는 장편영화 <청개천 카리스마Ⅱ>도 애초에는 아이폰만으로 촬영할 계획이었다고 들었다. =<청개천 카리스마Ⅱ>는 1990년 김영삼 정권이 시작되면서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한 시기의 이야기다. 전두환 정권 때만 해도 세운상가는 일종의 탈출구로 열려 있었으나 문민정부가 이를 불법 포르노의 온상으로 몰아붙이며 많은 사람들이 그 공간을 떠나야만 했다. 처음에는 그 시절 사라졌던 영화를 재발견한다는 이야기였다. <빨간 마후라>처럼 그 당시 만들어졌으나 우리가 보지 못한 영화가 있다는 컨셉 말이다. 아예 올모스트 DSLR 같은 어플도 쓰지 않을 생각이었다. 포커스도 마구 나가 있고, 좀더 원초적인 느낌을 줄 수 있도록. 포르노라는 게 지금은 HD 화질의 깨끗한 품질로 보여지지만 당시에는 낡고 스크래치가 죽죽 가 있는 그런 영화였잖아. (웃음) 어떻게 보면 이 영화는 포르노의 향수다.
-전체가 아니라 30% 정도를 아이폰으로 찍는다고 들었는데, 또 어떤 부분에서 활용할 생각인가. =미리 어떤 부분에 삽입될 예정인지 말해주지 않으면 영화를 보면서는 전혀 눈치채지 못할 수도 있다. 도로를 질주하는 장면에서 아이폰을 바닥에 찰흙으로 고정시키고 그 위로 자동차가 지나가게 한다거나… 일반 카메라로도 러브신에서 접사촬영을 할 수 있긴 하지만 아이폰은 심지어 입으로 들어가게 할 수도 있고. (웃음) 아이폰만의 장점을 극대화할 수 있는 장면에서만 활용할 생각이다.
-스마트폰으로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이 가장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점은 뭘까. =장비는 계속 발전하게 마련이다. 영화가 자기만의 마스터베이션이 아니라면 결국 이야기에 목이 말라야 좋은 영화를 만들 수 있다. 또 한 가지 중요하게 짚고 넘어가야 할 게 있다. 아직 배우들이 스마트폰영화에 적응을 못한다. 스마트폰 앞에서 어떻게 감정을 잡아야 할지 모르더라. 박찬욱 감독 정도의 이름값이 있는 경우라면 스마트폰으로 찍든 6mm로 찍든 배우들은 신경을 쓰지 않겠지만, 신인감독이라면 왜 영화를 스마트폰으로 찍는지 배우들에게 확실한 명분을 설명해야만 할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