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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토리얼] 임권택, 혹은 아름다운 친구
문석 2011-02-28

참으로 아름답다. 임권택 감독님(보통 객관적인 글에서 ‘님’이란 존칭은 쓰지 않는 법이지만 이 경우만큼은 ‘님’자를 쓰지 않고선 표현할 길이 없으니 양해를 바란다)과 배우 박중훈의 만남은 그렇게 묘사할 수밖에 없었다. 임 감독님의 어깨를 부여안은 박중훈의 흐뭇한 표정에선 아버지와 살가운 한때를 보내고 있는 아들의 모습이 떠올랐고, 박중훈의 농담에 봄햇살 같은 미소를 짓는 임 감독님에게선 해맑은 소년의 얼굴이 겹쳐 보였다. 아름다움은 그 포근한 분위기에서만 찾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1956년에 영화계에 입문한 대감독과 1986년 첫 영화를 찍은 배우의 만남 그 자체도 형언하기 어려운 감동을 자아냈다. 햇수로 56년과 26년, 영화라는 한길을 걸어온 두 장인이 우여곡절 끝에 작품에서 처음으로 해후했다는 사실이 의외로 느껴지면서도 애틋함 비스무레한 것으로 다가오기도 했다. 아직 영화를 보지 못했지만 두 사람이 함께한 <달빛 길어올리기> 또한 그러한 아름다움을 담고 있을 것만 같다.

임 감독님과의 이 만남을 부탁했을 때 박중훈은 이렇게 말했다. “영화를 찍으면서 감독님과 술자리를 숱하게 가졌고 정말 많은 대화를 나눴어요. 외람된 말이지만, 그러면서 감독님과 친구가 됐달까요.” 전화로 이야기를 듣는 순간 그의 ‘친구’라는 표현이 정말로 ‘외람된’ 듯 느껴졌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꼭 그렇지만도 않았다. <취화선> 촬영을 앞둔 인터뷰 때 선배를 따라 간 이래 난 이런저런 일로 임 감독님을 만났다. <취화선> 촬영장과 <하류인생> 세트장, <천년학>의 마지막 현장, 그리고 사적인 자리까지 거듭된 만남 속에서 감독님의 인상은 달라졌다. 처음엔 보통 사람들이 그렇듯, 무서운 호랑이 감독이나 아집만 가득 찬 노인을 상상했지만, 한발씩 다가설수록 마음이 넓고 사고가 자유로우며 헛된 격식에 연연하지 않는 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추구하는 바에 있어선 엄격하지만 그것을 실현하는 방법에서는 한없이 유연한 진짜 예술가라는 사실도 말이다. 그러니까 박중훈의 ‘친구’라는 표현은 임 감독님이 마음만큼은 푸르른 청춘을 살고 있다는 뜻을 담고 있었을 것이다.

정말이지 육체적 나이란 껍데기에 불과할지 모른다. 임권택 감독님을 보나 이순재 선생님을 보나 젊은이보다 훨씬 젊은 어른들이 있다. 그리고 그들이 만들어내는 예술의 세계 또한 젊디젊은 경우가 많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외면의 푸르름에 눈먼 우리는 그 내적 젊음을, 진짜 아름다움을 알아채지 못하곤 한다. 그 깊은 속을 들여다보는 게 지금처럼 무한속도의 시대에는 어려운 일이긴 하지만, 애써 보려고 하지 않으면 드러나지 않는 아름다움이 워낙 많기에 좀더 신경을 써야 한다. 하긴 뭐 이렇게 잘난 척할 것도 없다. 그저 ‘땡기지’ 않는다는 이유로 <그대를 사랑합니다>를 아직 보지 않았으니까. 이번 주말에는 나이든 ‘친구’들을 극장에서 영접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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