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종종 전쟁을, 그리고 그 슬픔을 알고 있다고 믿는다. 안락한 방 안에서 뉴스가 날라준 이미지를 소비하며 전쟁을 이해하고, 영화와 드라마가 들려주는 전쟁에 관한 슬픈 이야기에 눈물 흘린다. <바빌론의 아들>은 그것이 명백한 오해이자 환상임을 깨닫게 해주는 영화다. 사담 후세인 정권이 무너진 이라크를 배경으로 한 이 영화는 12년 전 전쟁 통에 실종된 아빠를 찾아 나선 할머니(샤자다 후세인)와 손자(야서 텔리브)의 여정을 담는다. 남부지역에 전쟁포로들이 생존해 있다는 소식 하나에 의지해 바그다드를 거쳐 나시리아의 감옥까지 떠나는 12살 소년과 할머니의 여행은 전쟁의 상처와 비극에 관한 따뜻하고 슬픈 이야기가 될 법한 좋은 소재다. 그러나 <바빌론의 아들>은 이 길고 힘겨운 여행길 사이를 감동적인 에피소드 대신 황량한 이라크의 전후 풍경과 그곳에서 삶을 영위해나가는 사람들의 표정으로 채워넣는다.
오늘날 스크린을 통해 쉽게 소비되는 전쟁의 얼굴은 군더더기 없는 사실적 재현에 치중한 탓에 도리어 사람 냄새 혹은 실감이 결여되어 있는 경우가 빈번하다. 전쟁이란 비극을 감동으로 연결시키는 것에 익숙한 장르영화의 공식이 때때로 놓쳐선 안될 진실의 순간을 가리기도 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바빌론의 아들>이 보여주는 광학적 이미지의 사실성은 2차 세계대전 후 이탈리아가 탄생시킨 네오리얼리즘의 성취를 연상시킨다. 그것은 단지 이 영화가 실제 사연을 바탕으로 하여 구성하고 전형적인 연기를 하지 않는 비전문배우를 기용한 때문만은 아니다.
황량하면서도 눈부신 이라크 사막의 풍경과 분주하고 어지러운 도시의 모습은 단지 배경의 나열이 아니라, 그것으로 이미 하나의 메시지이자 말로 옮길 수 없는 실재와 진실을 포착한다. 그 속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전쟁은 그저 “빌어먹을 사담과 망할 미국놈”일 뿐이다. 점점 희망의 빛을 잃어가는 소년의 눈동자와 유골매립지 앞에서 오열하는 할머니의 눈물 앞에서 더이상 현실과 비현실의 구분은 무의미해지고, 그 순간 사진적 이미지는 미세한 떨림으로 깨어난다. 결국 카메라는 아무것도 변화시키지 않으면서 모든 것을 달라지게 만든다. <바빌론의 아들>은 ‘찍는’ 영화가 아닌 ‘그리는’ 영화로 가득 찬 오늘날, ‘사진의 거짓된 힘’과 싸워 이긴 ‘사진의 진정한 힘’을 통해 관객에게 다시금 진실의 깊은 떨림을 전달하는 드물고도 반가운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