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마테크 프랑세즈 프로그램 디렉터 장 프랑수아 로제. 필름포럼의 임재철 대표는 “한국에서 그를 잘 아는 사람이 많은 편은 아닐 것”이라며 아직은 국내에서의 그의 생소함을 시사해주었다. 김성욱 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는 언젠가 어느 글에서 로제가 프로그램 디렉터가 된 직후 첫 번째 연 것이 마리오 바바 회고전이었다며 그의 성향을 언뜻 일러주었다. 시네마테크 부산 허문영 원장은 “프랑스 시네필 특유의 자부심이 묻어나는 인물”이라며 영화인으로서 그의 인상을 전해주었다. 이런 말들 속에서 그가 좀더 궁금해졌다. 시네마테크와 영화에 관한 그의 생각이 듣고 싶었다.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를 계기로 방한한 장 프랑수아 로제를 만났다.
-70년대 클로드 샤브롤 영화의 프린트 복원 계획. 그 과정은 어떻게 되어가고 있나. =60년대 말부터 70년대의 작품들은 샤브롤의 가장 예술적 전성기의 작품들이어서 공을 들이고 있는데, 역시 시간이 많이 소요되고 있다. 판권자들의 동의를 얻느라 그렇다. 하지만 이 경우는 잘하면 올해나 내년 초까지 마무리하여 샤브롤 회고전을 열 수 있으리라 기대하고 있다. 샤브롤의 이 시기 작품들은 사실 그의 생전에도 이미 판권문제 때문에 회사끼리 논쟁이 있었다. 그런데 샤브롤의 타계가 계기가 되어 이 문제가 오히려 잘 풀리고 있다. 따라서 우리 입장에서는 일이 좀더 수월해진 것이다. 다만, 샤브롤… 그가 회고전에 함께할 수 없다는 사실이 유감스러울 뿐이다.
-시네마테크 프랑세즈 프로그램 디렉터는 언제부터 어떤 계기로 하게 됐나. =일을 시작한 건 1992년부터다. 원래는 법학이 전공이다. 그걸 끝내고 나서 프랑스 국립영화센터(CNC)에 들어가서 주로 경제, 산업, 판권에 관련된 일을 했다. 그 당시에 도미니크 파이니(프랑스의 저명한 영화평론가이자 이론가. 예술영화 배급 및 상영도 했다. 시네마테크 프랑세즈 관장, 퐁피두 문화센터 전시관장 등을 역임했다)를 만나게 됐고 친구가 됐다. 그가 91년부터 시네마테크 관장으로 일하면서 내게도 같이하자고 제안을 한 거다. 디렉터가 되기 전 6개월 동안은 시네마테크의 전체 목록과 소장품을 조사 관리하는 일을 맡았고 그 다음 프로그래밍을 하게 됐다.
-대단한 시네필이라고 들었다. 본격적으로 시네마테크에서 일하게 되었을 때 어떤 기분이었나. =시네필로서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에서 일하는 것은 꿈을 실현하는 일과 같다. 나는 원래 지방에서 공부했고 84년에야 파리에 왔다. 그 뒤 한 6년 동안은 거의 매일 밤 시네마테크에서 영화를 보았다. 내가 열심히 영화를 보러 다니던 그 당시에는 내가 이곳의 프로그래머가 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는데 결국 꿈이 실현된 것이다. 다양하고 폭넓은 영화를 발견하고 보여주는 일을 하게 되어 기쁘다.
-관객으로서 영화를 열심히 보러 다니던 그때에 막연하게나마 내가 혹시 프로그래머가 되면 이 사람의 영화만큼은 특별전을 하고 싶다고 생각해본 적이 있나. =개인적으로 적어도 이 사람의 모든 전작을 다 보고 싶다고 생각한 감독은 있었다. 존 포드다. 그런데 이미 존 포드의 가능한 전작의 회고전이 1989년에 있었다. 그 당시의 프로그래머였던 베르나르 마티노의 주도 아래 이루어졌고 그때는 마치 내 꿈이 실현된 것처럼 기뻐 열심히 보러 다녔다. 여기서 한 가지 덧붙이고 싶은 말이 있다. 시네마테크의 회고전은 시간을 두고 여러 번 반복해서 열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현재에도 시네마테크 프랑세즈는 알프레드 히치콕 회고전을 열고 있다. 물론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하지만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똑같은 시네아스트의 회고전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20년 뒤에 열리는 것이라면 우린 또 다른 것을 배울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과정을 거쳐 매번 새로운 시네필 문화가 조성되고 조명될 수 있다. 회고전이라는 것은 관객의 수용에서 이해하는 방식의 변화 단계를 보여주는 것이며, 영화의 역사 그 자체를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 점과 관련해 한 가지 질문이 있다. 그렇다면 당신이 생각하는 요즈음 프랑스 관객의 새로운 경향 혹은 새로운 시네필의 경향과 변화는 어떤 것인가. =음…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긴 하다. 하지만 프랑스에서는 지금까지 단 한 종류의 시네필만 존재한 것이 아니다. 여러 가지 다양한 감수성들이 존재해왔다. 1950년대에는 <카이에 뒤 시네마>가 많은 영향력을 미쳤으나 곧 <포지티프>가 등장했고 <카이에 뒤 시네마>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은 <포지티프>를 읽으며 감성적인 경향을 이어갔다. 2차대전 이후 그리고 누벨바그 이후에 달라진 것 중에서 미국영화의 선호도가 높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그러나 그 무렵부터 공산주의적 영향도 많았기 때문에 미국영화의 선호조차도 물줄기 중 하나에 해당한다. 다수의 영향들은 여전히 존재해왔고 68혁명 이후에는 훨씬 더 다양한 경향을 보이게 된다. 그래서 68년 이후에는 전통적 의미의 시네필은 시대착오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게다가 오늘날에는 더더욱 찢어졌다고 해야 할 것이다. 최근 들어 텔레비전, 인터넷 등으로 보아야 할 작품의 숫자나 종류가 많아졌기 때문에 모든 영화를 공통으로 다 볼 수가 없게 됐다. 그 많은 가능성 중에서 어떤 것을 선택하느냐의 문제가 생겼고 나머지는 버려야 하게 된 것이다. 과거에 비해 공유하는 일정한 경향이 사라지게 된 거다.
-만약 상황이 그렇다면 시네마테크의 프로그램 디렉터인 당신의 입장에서 어떤 영화들을 프로그래밍할 것인가의 선택의 문제는 점점 더 중요해진다. 어떤 점들을 주로 고려하는가. =지적한 그대로다. 프로그래머로서의 역할은 선택이다. 나의 역할은 어디선가 숨겨져 있는 영화들을 찾아서 보여주는 것인데, 이런 선택은 늘 논쟁의 여지가 있는 것이고, 모든 관객이나 비평가가 다 공감할 순 없다. 어떤 경우에는 왜 이 사람인가, 왜 이 작품인가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가운데 책임을 지는 것이 나의 할 일이다. 나는 프로그래머를 갤러리의 큐레이터로 비교하곤 한다. 한 예술 작품의 상징적 경제적 가치를 찾아내고 높이는 것이 갤러리의 역할이라면 시네마테크도 어떤 영화가 지닌 가치를 찾아내 검증해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 그중에는 히치콕처럼 기존 거장의 영화도 있겠지만 알려지지 않은 이들의 영화도 있다. 물론 이 경우엔 논쟁의 여지가 더 많다.
-동료들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이것만은 한번 해보자, 하며 밀여붙인 경우가 있는가. =아주 최근 들어 그런 경험이 있다. 제스 프랑코(평생 수십개의 가명으로 저예산 B급 호러와 소프트코어 장르를 만들어온 스페인의 영화감독)다. 다른 사람들이 전부 이렇게 마이너한 사람까지 할 만한 가치가 있느냐고 반대했지만 내가 밀어붙였다. 이런 경우에도 역시 난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이 시네아스트는 저예산으로 에로틱영화 전문 상영관에서나 상영할 법한 영화로 60, 70년대에 주로 활동했고 200편 정도의 작품을 남겼다. 그런데 워낙 저예산으로 찍다보니 오히려 강박적인 성격이 강해졌고 마치 프랑스의 아방가르드를 연상시키는 면모가 있다.
-이번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의 경우 시네마테크 프랑세즈가 지원한 영화들은 어떤 선택에 의한 것이었나. =‘시네마테크의 역사와 관련된 영화와 시네아스트’라는 주제를 서울아트시네마로부터 전달받았다. 그걸 염두에 두고 선정했다. 내가 이번에 시네토크를 하는 영화들에 한정해서 말하자면 필립 가렐의 <내부의 상처>는 90년대에 도미니크 파이니가 관장으로 오면서 복원해낸 것이고, 장 마리 스트라우브-다니엘 위예의 <로트링겐>은 다니엘 위예의 사후에 스트라우브가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에 기증한 것이다.
-당신이 보기에는 프랑스의 젊은 감독 중 누가 밝은 미래를 갖고 있는가. 개인적인 선호도가 듣고 싶다. =젊은 감독 중에는 단연 알랭 기로디(<용감한 자에게 안식은 없다> <때가 되었다> <도주왕> 등을 연출했다)! 독창적이고 기발하다. 그의 영화는 다른 영화들과 흡사한 면이 거의 없다. 상업적으로 성공한 적도 없고 소수에게만 관심을 받지만 나로서는 주목하는 감독이다.
-한국의 동세대 감독 중 ‘만약 이 감독이라면 나중에 시네마테크 프랑세즈가 회고전을 마련해야 할지도 모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감독이 있나. =지금 한국영화를 이끌어가는 감독들은 90년대 이후에 나온 감독들인데 그중에서는 홍상수 감독과 봉준호 감독이다. 홍상수 감독의 경우는 <하하하>의 프랑스 개봉에 맞추어서 올해 3월에 전작 회고전을 여는 것으로 이미 기획되어 있다. 봉준호 감독의 경우는 아직 편수가 많지 않지만 매우 중요한 감독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그들보다 더 젊은 감독을 꼽자면 나홍진과 양익준이 있을 것이다. 아직 한두편을 만든 감독들이지만 매우 큰 잠재력을 가졌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시네필인 당신의 경험을 빌려서 한국의 젊은 시네필에게 한마디 조언한다면. =영화의 마케팅이 활성화되면서 우린 영화를 이렇게 저렇게 범주화하고 구분하는 데 익숙해졌다. 하지만 시네필이라면 모든 영화에 전부 관심을 가져야 한다. 모든 영화를 다 좋아할 수는 없지만 모든 영화에 다 관심을 가져야 한다. 이런저런 영화가 있는 것이 아니라 ‘영화’라는 하나가 있는 것이다. 이건 시네마테크 프랑세즈 창립자 앙리 랑글루아의 생각과도 뿌리 깊게 연관되어 있다. 그의 이념은 ‘영화’라는 하나의 표현방식이 있는 것이며 모든 영화가 다 관객을 만날 권리가 있다는 것이고 그 공간이 시네마테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물론 모든 영화에 동등한 가치를 부여할 수는 없지만, 어쨌든 나의 원칙도 모든 영화들에 기회를 준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