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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의 치열한 삶과 사랑이 깔린 <그대를 사랑합니다>

세상에는 수많은 사랑이 존재한다. 전작인 <사랑을 놓치다>에서 추창민 감독은 이러한 다양한 사랑의 모습과 그 순간들을 카메라에 담아냈다. 연수(송윤아)는 좋아하면서도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하지 못하고 삭이고 끌어안는 사랑을 하며, 우재(설경구)는 사랑을 뒤늦게 알게 되고 그 사랑을 붙잡으려 한다. 상식(이기우)은 말없이 바라보기만 하는 사랑을 하며, 연수의 어머니(이휘향)는 남들에게 떳떳하게 밝히지 못하는 사랑을 한다.

<그대를 사랑합니다>에서도 사랑은 다양하게 자신의 모습을 드러낸다. 전형적인 가부장인 김만석(이순재)은 아내의 죽음 뒤에 아내에게 잘해주지 못했던 것들을 후회하며 죗값을 치르듯이 우유배달을 한다. 병상의 아내에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건넸던 우유는 만석을 권력을 쥔 가부장에서 남자로 만들며, 송씨(윤소정)에게 사랑을 전달하는 매개체가 된다. 그는 칠순을 넘긴 나이에 다시 사랑을 시작하려고 한다. 이름도 없이 파지를 모으며 힘겹게 살아가던 송씨는 만석에게 송이뿐으로 호명되며 이름을 얻는다. 이뿐은 처음으로 느끼는 사랑과 행복에 벅차하며 그 사랑을 고이 간직하려 한다. 평생을 택시 기사로 열심히 일한 주차 관리인 장군봉(송재호)은 만석과는 반대로 아내의 얘기를 잘 들어주는 유순하고 가정적인 남편이다. 그는 치매에 걸린 아내 순이(김수미)를 돌보며 아내와의 사랑을 끝까지 간직하고 지키려고 한다. 일상의 이야기를 말하고 듣는 것을 좋아하는 순이는 사랑을 받기만 했다며 다시 태어나면 군봉이 힘들까봐 결혼하지 않겠다고 한다. 치매로 사랑의 기억들을 송두리째 뺏겨버린 순이는 그림을 그리며 환상과 상상 속에서 사랑을 이어간다. 이처럼 영화는 죽음을 앞에 두고 사랑을 시작하는 노년과 사랑을 끝맺으려는 두쌍의 노년을 통해 사랑의 여러 양상을 그려내며 다시 한번 사랑의 의미를 되새김질한다.

영화는 만화인 강풀의 동명 원작을 대부분 충실하게 따라간다. 원작에 충실하다 보니 캐릭터와 에피소드를 중요시하는 만화의 장르적 특성들도 많이 반영된다. 영화의 캐릭터들은 확고하게 전형화되어 있다. 만석은 목소리 크고 완고한 전형적인 아버지상으로 강조되며 이뿐도 밥을 산처럼 담아주는 당대 이미지의 전형이며 현모양처의 전형이다. 군봉 부부와 자식들과의 관계도 뚜렷하게 이분화되어 있다. 군봉 부부는 자식을 위해 헌신하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대변한다. 하지만 끝까지 원작에 충실하려는 감독의 고집은 동화적 상상력과 판타지에서 빛을 발하며 일정 부분 단점들을 끌어안으며 상쇄시킨다. 여기에 주연배우들의 호연과 오달수, 이문식, 송지효의 맛깔스러운 연기가 영화의 아기자기함을 더하며 가슴이 따뜻해지는 훈훈함을 이끌어낸다.

한국영화에는 노년의 사랑을 다룬 영화들이 적다. 특히 근래 들어서는 더 보이지 않는다. <죽어도 좋아>가 제한상영 등급을 받으며 사람들의 관심을 잠깐 끌었을 뿐 한국영화에서 노년의 사랑은 금기시되어 있거나 젊은이들의 사랑을 보조하거나 소재주의로 전락한다. 현재 개봉 중인 우디 앨런의 <환상의 그대>만 보아도 영화 속 노년의 사랑은 여전히 치열하며 영화는 그들의 자연스러운 감정의 발로를 따라가며 삶의 치열함을 담아낸다. <그대를 사랑합니다>가 치매나 자살을 다루는 방식이나 노년을 바라보는 시각에 대한 왈가왈부는 존재하겠지만 이 영화가 사랑의 어떤 측면만을 미화하고 멜로드라마의 틀 안에서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소재주의에 치우치지 않는 것은 그 안에 그들의 치열한 삶과 사랑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이름이 없어 타자로 불리지도 못하는 한국사회에서 그들을 호명하는 일만으로도 영화의 가치는 충분하다.

어떻게 보면 사랑은 놓칠 수밖에 없다. 사랑은 바람이 지나가듯 우리를 슬쩍 스쳐 지나간다. 슬쩍 스친다는 것은 지나가야지만 지나간 것을 알 수 있다는 얘기다. 사랑이 지나갈 때 우리는 알지 못한다. 우리는 늘 사랑을 놓치게 되어 있다. <사랑을 놓치다>에서 감독은 스쳐 지나가는 다양한 사랑의 이미지들을 그려냈다. <그대를 사랑합니다>에서는 스쳐 지나가는 사랑을 동화적 상상력으로 순이의 그림 위에 담아낸다. 영화는 우리가 그리지 않을 뿐 스쳐 지나가는 사랑을 그릴 도화지는 얼마든지 남아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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