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베를린영화제에서는 역대 가장 많은 한국영화를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지난 1월10일 개막한 61회 베를린영화제에 이윤기의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공식 경쟁부문), 김수현의 <창피해>(파노라마 부문), 김태용의 <만추>(포럼 부문) 등 총 9편의 영화가 초청된 것. 그중 눈길을 끄는 작품 중 하나는 바로 공식 단편경쟁부문에 초청받은 박찬욱, 박찬경 형제 감독의 <파란만장>이다. 스마트폰으로 촬영된 영화라는 점은 물론, 오랜 세월 각자의 아이디어와 시나리오를 주고받으며 파트너십을 나눴던 두 형제의 뒤늦은 첫 번째 합작품이라는 점에서도 화제다. 박찬경 감독이 지난 1월30일 로테르담영화제로 떠나기 전(그는 자신의 첫 번째 장편 <다시 태어나고 싶어요, 안양에>로 유망 신인감독 작품들을 대상으로 하는 ‘브라이트 퓨처’ 부문에 초청됐다) 그들을 만나 영화에 대해 물었다.
<파란만장>의 이야기는 이렇다. 안개가 자욱한 강변, 한 남자(오광록)가 낚싯대를 펼쳐놓고 한가롭게 낚시를 한다. 시간이 흘러 어느새 한밤중이 되고 갑자기 낚싯대에 커다란 무언가가 걸려든다. 그런데 그 무언가는 소복 차림의 젊은 여자(이정현)다. 여자와 낚싯줄이 엉켜 서로 묶인 꼴이 되고, 남자는 사색이 되어 풀어보려고 안간힘을 쓴다. 그러다 남자는 비명을 지르며 쓰러지고, 잠든 채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다. 정신이 들고 보니 남자는 여자가 입고 있던 소복을 입은 채 잠들어 있고, 반대로 남자의 옷을 입은 여자가 남자를 깨운다. 남자는 영문을 몰라 혼란스러워하는데 여자가 느닷없이 어린아이의 목소리로 울며, 남자를 ‘아빠’라고 부른다.
-박찬욱 감독의 경우 베를린영화제 단편경쟁부문에 가는 게 왠지 예비역이 신입생 환영회에 참석하는 기분일 것 같다. (웃음) =(박찬욱) 맞다. (웃음) 젊은 감독들만 있는 자리여서 쑥스럽긴 하다. 뭔가 그들의 기회를 뺏는 것 같은 느낌도 들고. 그래도 공동연출이기도 하고 같은 부문에 스파이크 존즈도 있더라. 그래서 위로가 좀 됐다. 아 그리고 우리 부문 심사위원장이 낸 골딘이더라. =(박찬경) 아 낸 골딘은 그렇게 좋아하는 사진가는 아닌데. (웃음) 그래도 작품 대부분을 슬라이드 쇼로 전시하는 형식을 보고는 무척 흥미를 가졌던 작가다. 그런데 강연을 직접 들은 적이 있는데 그때 기억이 좀….
-<파란만장>은 어떻게 시작하게 된 작품인가. =(박찬욱) 맨 처음 KT에서 아이폰으로 영화를 만들어보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받았고, 흥미로운 기획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동생에게 의향을 물어봤다. 나 역시 마침 시간적 여유가 있을 때였고, 어어부 프로젝트의 뮤직비디오 작업도 해야 할 때라 타이밍이 잘 맞았다. 우리 둘 다 백현진과는 잘 아는 사이여서 서먹할 것도 없었고. 동생이 아무래도 <신도안>이라는 전통 종교에 대한 작품을 만든 적 있어 기본적인 스토리를 만들고 얼개를 짰다. 나 역시 그 작품을 보면서 관심이 생기기도 했다. 오광록이나 이정현 같은 배우를 캐스팅하고 현장에서 직접적인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쪽이 나였으니 나는 프로듀서 역할에 더 가까웠다. =(박찬경) ‘공동연출’ 형식은 이번이 처음이지만 그동안 계속 아이디어를 주고받고 시나리오를 보여주고 그랬다. 내가 미술 바깥에서 영화 단편 작업을 한 건 2005년 <비행>이 처음이었는데 형이 늘 많은 도움을 줬다. <신도안> 때도 HD 작업이 처음이라 장비부터 전문 스탭까지 큰 도움을 받았다. 당연히 그러면서 비용도 절약될 수 있었고, <다시 태어나고 싶어요, 안양에> 때도 시나리오를 읽고 조언해줬다.
-혹시 예전에 형의 극영화 작업에 참여한 적도 있나. =(박찬경) <달은… 해가 꾸는 꿈>(1992)에 미술 스탭으로 참여했었다. 세트 벽에 그림도 그리고 주연배우였던 이승철의 등 뒤에 용문신 그림도 내가 그렸다. (웃음)
-형처럼 시네필의 삶을 살아온 건 아니었나. =(박찬경) 시네필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래도 형이 장가가기 전까지 같은 방에서 지냈으니 취미도 비슷했고 공유하는 게 많았다. 형은 책도 많이 읽고 워낙 모범생 스타일이라 학교에서 학년 올라갈 때마다 선생들이 “네가 찬욱이 동생이야?”라고 물어볼 정도였다. 그에 비하면 난 건달이었다. (웃음) =(박찬욱) 집이 좁아서 중·고등학생 시절 한창 왕성한 나이까지 한 방에서 지냈으니 영향을 주고받은 게 많다. 가령 나는 동생이 가져온 퀸의 LP를 들으면서 난생처음 록음악, 팝음악을 접해본 것 같다. 그리고 동생은 미술에 재능이 많았고 늘 부러웠다. 그렇게 장가갈 때까지 동생하고 한 방을 썼고 결혼해서도 내 방이 없다가 지금 살고 있는 파주 집으로 오면서 평생 처음으로 내 방을 가져봤다. (웃음) =(박찬경) 그러고 보니 예전에 형이 영화잡지 <스크린>에 기고할 때 시간이 없다고 해서 캐스린 비글로의 <블루 스틸> 평을 형의 문체로 대신 써준 적 있다. (웃음) =(박찬욱) 하하 기억난다. 그거 살짝 손보고 바로 보냈던 것 같다. (웃음)
-동생은 지금껏 사진가이자 설치미술가로 활동했고 한때 평론가이기도 했으며 지금은 영화감독이다. 총체적으로 말하자면 ‘미디어 아티스트’로 활동해왔는데 최근 차이밍량이나 아핏차퐁 위라세타쿤의 예에서 보듯 세계적으로도 그 경계는 더 희미해지고 있는 것 같다. =(박찬경) 요즘엔 그런 경향이 갈수록 더 두드러지는 것 같은데 실제로 지난해에는 베니스영화제로부터 연락을 받은 적도 있다. 베니스에는 아티스트 필름 섹션이 따로 있는데, 전세계에서 그런 경계의 작업들을 하는 작가에게 연락해 현재 어떤 작업을 하고 있는지 묻고 발굴하려는 의도였던 것 같다. 이미 오래전부터 피터 그리너웨이나 데이비드 린치, 그리고 차이밍량과 아핏차퐁 위라세타쿤의 작업도 그런 시어터와 뮤지엄 혹은 사진과 영화의 경계를 딱히 가를 수 없는 작업들을 해온 것 같다. 2007년 전주영화제 디지털 삼인삼색 <메모리즈>에도 참여하고 <공장을 떠나는 노동자들>(1995) 같은 단편을 작업한 하룬 파로키도 이제는 영화감독이라기보다 미디어 아티스트로 이해하는 게 빠를 것 같고 이제는 오히려 뮤지엄에 더 가까운 사람이다. 미술로 보자면 중국의 설치미술 작가 양후동을 좋아하고 계속 주목하고 있다.
-<파란만장> 도입부에 어어부 프로젝트가 갓 쓰고 나오는 뮤직비디오가 무척 인상적이다. =(박찬욱) 지금의 MBC ‘대한민국영화대상’이 2002년에는 ‘MBC 영화상’이라는 이름이었는데, 그때 <복수는 나의 것>이 여러 부문 후보로 오르면서 음악상 후보로도 올랐다. 그때 어어부 프로젝트가 특별공연을 했는데 백현진과 장영규가 유대교 랍비들처럼 긴 수염을 달고 나와서 객석에서 그걸 보고는 완전히 넘어간 적 있다. (웃음) 그 기억이 나서 그런 컨셉으로 시도해봤다. 그리고 예전에 뮤직비디오 연출해주겠다고 약속한 게 있는데 그걸 또 그들이 기억해내는 바람에(웃음), 이번에 그들 앨범 뮤직비디오 작업을 해준 것이기도 하다.
-이정현과 오광록에 대해 얘기한다면. =(박찬욱) 두 사람 모두 너무 잘해줬다. 오광록은 소복 입고 있을 때 진짜 옛날 할머니 같은 느낌을 줬다. (웃음) 이정현은 예전 <꽃잎>(1996) 때 신들린 듯한 연기를 했는데 그게 영화에도 그대로 드러난다. 낚시에 걸려 나온 장면은 직접 다 연기를 한 것인데 영화를 보면 너무 연기를 잘해서 꼭 ‘더미’를 가져다놓고 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정말 놀라운 배우다. =(박찬경) 그 장면에서 오광록씨가 이정현양의 얼굴을 깔아뭉개는 장면도 있는데 그거 다 실제다. 나중에 자세가 바뀌고 나서야 비명을 지르더라. 바로 비명을 지르면 NG가 나니까 참고 있었던 거다. 그래서 나중에 오광록씨 얼굴에 물을 토하는 장면에서는 그걸 오광록씨가 다 받아먹으면서 복수를 했다. (웃음)
-<파란만장>의 후반부는 ‘굿’에 관한 내용이다. 전통 무속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박기복의 <영매: 산 자와 죽은 자의 화해>(2002)나 이창재의 <사이에서>(2006)가 떠올랐다. =(박찬경) 원래 토착종교에 관심이 많았고 계룡산 신도안에서 명멸했던 숱한 종교 집단들의 이야기를 <신도안>으로 담아내면서 그걸 한번 정리한 적 있다. 그 관심사가 자연스레 <파란만장>으로 이어졌다고 보면 될 것 같다. ‘굿’에 관해서는 대무 이해경씨가 출연한 <사이에서>를 굉장히 인상적으로 봤다. 굉장히 잘 만든 작품이고 <파란만장>에서 ‘굿’을 재현하는 데 참고한 부분도 있다. 좀더 욕심을 부려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직업배우가 등장하는 극영화라는 측면을 고려했다. <신도안> 때도 작품 때문에 왔다 갔다 하면서 처음 접해보는 이야기들에 힘든 순간도 많았다. 그나마 이제는 좀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확실히 이런 작업을 하고 나면 정신적 고갈이 크다. =(박찬욱) <파란만장>을 만들고 난 다음 ‘스마트폰으로 영화 만들기’에 관한 질문들만 집중적으로 받았는데, 영화에 대한 얘기도 하고 싶었다. 동생은 <신도안>을 만들면서 한국 전통 종교에 대한 이해가 높았는데 사실 나는 이번에야 비로소 그 세계를 알게 됐다. 준비하면서는 서경욱 만신님(여자 무당을 존대하여 쓰는 말로 순수 우리말이다.-편집자)이 주관하는 내림굿(접신된 사람이 자신에게 실린 신을 맞이하여 무당이 되는 성무제의로 ‘강신무’만 이를 행할 수 있다.-편집자)을 함께 봤는데 정말 충격이었다. 그야말로 입이 딱 벌어졌다. 내용이 거의 수십 단계인데 아기자기하게 재밌고, 의상이나 소도구들도 인상적이었다. 그 단계와 소품들마다 지닌 상징들하며 ‘무가’도 멋있는데 그 가사가 보통 시적인 게 아니다. 가사 중 ‘활등같이 굽은 길을 화살처럼 달라들어 갈라서 간다’는 말은 ‘죽으러 간다’는 얘기인데, 그건 처음에 제목으로도 생각했었다. 라이브로 보고 있는 가운데 그런 시적인 표현들이 속출하니 반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나라 지역마다 서로 다른 스타일과 멜로디의 <아리랑>이 있는 것처럼 굿 역시 마찬가지일 것 같다. 어디에 가장 관심이 갔나. =(박찬경) 처음부터 황해도굿을 근간으로 하고 싶었다. 김금화 만신은 베를린에서 윤이상 선생을 위한 진혼굿 등을 하셨는데 그분이 바로 황해도굿의 정통이시다. 황해도 해주, 옹진, 연평도 지방에서 행해졌던 ‘서해안 풍어제’로도 유명하신 분이고. 형의 얘기대로 시적인 부분이 있는 반면 돼지 잡고 그러는 장면을 보면 또 너무 무섭다. 민속학자들 사이에서는 서울굿, 황해도굿이 제일 세다고들 한다. 그러면서 사람으로 치자면 임사체험을 하는 단계까지 가는 건데 옆에서 잘 보조하지 못하면 귀신이 씐 상태에서 발광하다가 길에 뛰어들어 죽는 일까지 있다고 한다. 또 같은 황해도굿이어도 가사나 멜로디도 전수자에 따라 다르고. =(박찬욱) 영화 제작에 직접적인 도움을 주신 분은 최영장군당굿으로 유명한 서경욱 만신이다. 이정현에게 굿을 지도해주셨는데, 우리에게 장소도 제공해주고 밥도 먹여주고 정말 많이 도와주셨다. (웃음) 이정현이 너무 빨리 배운다고 칭찬하셨는데 완성된 작품을 보고도 마음에 들어 하셨다.
-<파란만장>을 공동연출하면서 느낀 두 사람의 ‘취향의 교집합’ 같은 게 있다면 뭔가 =(박찬욱) 그로테스크와 유머가 결합된 취향이랄까. 지나친 감상주의를 경계한다는 점도 비슷하다. 가령 <파란만장>에서 굿을 한다고 할 때 망자의 입을 빌려 유족에게 남기는 말은 거의 눈물 없이 못 보는 순간들이 있다. 그런데 그런 걸 좀 적당히 했다고나 할까.
-‘복은 나누고 한은 푼다’는 굿의 세계관이나 무속 신앙에 대한 관심은 이전 영화들과 현격한 차이점이 있는 것 같다. =(박찬욱) 김금화 만신에게서 신내림을 받은 사람 중에 독일 여자 안드레아 칼프라는 무당이 있다. SBS 스페셜 다큐 <푸른 눈의 신령>을 보면 신내림을 받은 그녀가 자신이 다니던 옛 고향의 동네 성당을 찾아가 신부에게 무당이 됐음을 고백하는 장면이 있다. 얘기를 들은 영화 속 프란츠 신부는 다음과 같은 요지의 말을 한다. “네가 가톨릭 내에서나 기독교에서 자리를 못 찾았는데 그것은 우리 잘못이기도 하다. 세상에는 다양한 여러 힘이 존재하는데 네가 우리쪽에서 찾지 못한 것은 아쉽다. 우리가 너무 좁게 본 것이 미안하다. 내가 보기에는 세상의 다른 종교에도 신의 부름을 받는 사람이 있다. 너는 무당이고 너의 과제는 남을 돕고 연결하는 것이다. 너는 그것을 무당으로서 하고 나는 가톨릭 신부로서 하는 것일 뿐 우리는 같은 일을 하는 동료다. 나는 너의 신과 나의 신에게 함께 기도를 하겠다.” 그 얘기를 들으면서 큰 감동을 받았다. =(박찬경) 그동안 영화에서 다뤄진 무속 신앙의 모습은 어떤 두려움의 대상으로 그려지거나 아니면 희화화되어 드러날 때가 많았다. 물론 조선시대부터 부패한 무당들도 많았다. 무속을 천시하면서도 실은 깊게 의지하는 사람들 역시 많다. 새벽 기도라든지 하여간 한국 개신교가 샤머니즘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도 사실이다. 인간은 선사시대부터 무속에 대한 근원적인 유전자를 갖고 있을지도 모른다. 굿을 왜 해? 그렇게 생각하다가도 그걸 팔짱끼고 구경만 하게 되지는 않는다. 무녀의 입을 빌려 망자가 본인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얘기를 늘어놓는다. 그럴 때 목석같이 구경만 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고도로 제도화되고 복잡해진 기존 종교들보다 무속이 좀더 원초적이고 날것 같은 느낌이 있다. =(박찬욱) 가톨릭 성직자라면 도저히 할 수 없는 얘기를 무당은 한다. 저승사자가 어떻게 생겼다고 하고 죽은 사람도 바로 자기 앞에 있다고 말한다. 자기가 직접 보고 있다는데 뭐 어떡해. (웃음) 그리고 영화에도 나오지만 자기가 직접 물에 빠져 죽음 직전까지 실제로 똑같이 느껴본다. 뭐랄까, 인간의 감정을 보여주는 데 있어 더 솔직하고 근원적이다. 바흐의 레퀴엠과 이건 너무 다른 세계다.
-<박쥐>로 성직자를 뱀파이어로 만든 다음에 듣는 얘기라 무척 묘한데, 이후 작품들의 분위기가 상당히 달라질 것 같다는 얘기로도 들린다. =(박찬욱) <파란만장>을 작업하면서 다음에 공부 좀 많이 해서 무녀에 관한 이야기를 극장용 장편으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바로 다음이 되진 않겠지만 꼭 한번 만들고 싶다. 그들의 기구한 삶속에 얼마나 많은 얘기들이 있을까. 무속에서 말하는 여러 초현실적, 초자연적 얘기들을 다 믿을 수는 없지만 그런 영화를 만들게 된다면 입장이나 태도라는 측면에서 정말 완벽하게 믿는 것처럼 만들고 싶다.
-<파란만장>은 두 사람의 관심사와 스타일이 굉장히 멋진 조화, 그러니까 말 그대로의 부족함 없는 ‘상호보완’ 관계라는 점에서 공동연출의 모범 사례라는 생각이 든다. 이후 계획은 뭔가. =(박찬욱) 이번에 함께 만든 브랜드 이름이 ‘PARKing CHANce’다. 주차 기회라는 말인데 주차할 자리가 났을 때 재빨리 주차하는 것처럼 좋은 기회가 있을 때 망설이지 말고 함께해보자는 뜻이다. (웃음) 단편이든 다큐멘터리든 곧 다시 파킹 찬스가 ‘출동’할 만한 좋은 일거리가 생겼으면 좋겠다. 개인적으로는 여전히 <도끼> 작업 중이고 제작자로서는 봉준호의 <설국열차>를 올해에는 꼭 촬영에 들어가도록 하는 게 목표다. =(박찬경) 형과 함께 작업하면서 많은 걸 배웠다. 일단 나는 단편이든 장편이든 작업하면서 이것저것 다 해보고 어떻게 할까 고민하면서 소모하는 시간들이 많았는데, 정말 판단하는 속도가 놀라웠다. 지금은 시나리오를 쓰고 있는데 이전 작업과는 완전히 다른 상업 극영화를 해보고 싶다.
-혹시 동생의 작품을 형의 ‘모호필름’에서 제작하는 건 아닌가. =(박찬욱) 음, 모호필름은 <설국열차> 이후로는 내 작품만 할 생각인데 이거 참…. (웃음)
박찬경 로테르담영화제에 초청된 <다시 태어나고 싶어요, 안양에>는 안양공공미술프로젝트(APAP)의 지원을 받아 만든 작품으로, 88올림픽을 앞두고 여성 노동자 22명이 감금된 채 화재로 사망한 그린힐 봉제공장 사건을 다루고 있다. 픽션과 다큐멘터리를 오가면서 그는 안양의 어제와 오늘을 돌아본다. 그리고 2008년 작업한 <신도안>은 1960~70년대 충남 계룡산 신도안에서 활동했던 다양한 민족 종교의 흥망사를 사진과 동영상으로 담아낸 45분 정도의 설치작품이다. 근대화의 기억과 맞물리는 민족 종교의 풍경은 <파란만장>에도 녹아 있다. 이처럼 소재를 착상하는 그만의 남다른 시선은 제법 큰 울림을 준다. 더불어 무속을 극영화로 올곧게 담아낸 기억이 별로 없다는 점에서 <파란만장>이 주는 정서적 쾌감 역시 크다.
박찬욱 <파란만장>에서 박찬욱의 이전 작품들의 흔적을 찾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낚싯바늘로 사람을 낚는 모습은 <박쥐>, 전등이 달린 헬멧을 쓰고 있는 두 남녀의 모습은 <싸이보그지만 괜찮아>, ‘아빠’를 찾는 죽은 딸아이의 환상은 <복수는 나의 것> 등 오광록이라고 하는 배우의 캐스팅까지 겹쳐 ‘박찬욱 영화’라는 인상은 짙다. 하지만 박찬경이 한국의 무속신앙에 대해 다뤘던 <신도안>이라는 작품에 슬쩍 발을 대고 있는 작품이라고 할 때, <파란만장>은 박찬욱의 팬들 입장에서 꽤 흥미로운 지점들이 많다. 언제나 ‘죄와 구원’이라는 가톨릭적 세계관으로부터 영화를 착상했던 그가 동생과의 협업을 통해 한국의 무속 신앙과 조우했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것을 전면적인 단절이나 전환의 단서라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