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 애플렉과 맷 데이먼은 유사한 시기에 대등한 에너지를 선보이며 배우생활을 시작했다. 하지만 적지 않은 시간이 지난 지금 누가 더 깊은 심연을 가진 배우인가 하는 질문의 답은 싱겁게 판명이 난 것 같다. 맷 데이먼은 어디로 더 나아갈지 예측할 수 없지만 벤 애플렉은 어딘가 오래전부터 제자리를 맴돌고 있다. <타운>에서도 벤 애플렉의 연기는 새롭지 않다. 다만 이런 비교는 벤 애플렉의 연기를 탓하기 위함이 아니라 그의 야심을 말하기 위해서다. 그는 언제인가부터 배우를 넘어 각본에 참여하기를 원하고 자신의 머리에서 나온 그 각본을 현장에서 직접 연출하기를 갈망한다. 그는 좋은 배우보다 좋은 영화인이 되길 원하는 것 같다. <타운>은 그런 벤 애플렉의 출연, 각본, 연출의 삼박자가 만들어낸 그만의 야심작에 해당할 것이다.
미국 보스턴에 속한 찰스타운. “찰스타운에서 은행 강도는 대물림되는 기업과 같다”는 말로 영화는 시작한다. 더그(벤 애플렉)는 전직 아이스하키 프로 선수였지만 지금은 막노동꾼으로 그저 그런 삶을 살아간다. 실은 그건 위장이고 그의 본업은 은행 강도다. 그는 찰스타운의 친구들 세명과 함께 기가 막힌 솜씨로 은행이나 현금수송 차량을 턴다. 영화의 도입부에서 케임브리지 은행에 난입했을 때 이 은행의 젊은 지점장 클레어(레베카 홀)를 인질로 잡았다 놓아준 더그 일행은 그녀가 하필 그들 마을 주변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더그가 그녀를 감시하는 역할을 맡는다. 하지만 더그는 오히려 클레어와 사랑에 빠져버리고 더그의 난폭하고 성질 급한 친구 젬(제레미 레너)이 그 사실을 알게 된다. 반면 FBI의 수사망은 점점 더 그들을 향해 조여오고 더그는 일생일대의 범죄를 끝으로 클레어와 이 마을을 떠나 새 출발을 하려 한다. 새로운 내용은 물론 없다. 척 호건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했다지만 이건 갱스터무비의 닳아없어질 만큼 많이 반복된 이야기들에 해당한다. 장르적으로 몇몇 즐길 만한 포인트를 영화가 친절하게 강조해주기도 하는데 대부분 그 장면들은 어디선가 본 듯하거나 조립한 장면들이다. <타운>을 말할 때 대표적으로 <디파티드>와 <히트>가 거론되는 것은 장점이 아니거니와 동시에 피할 수도 없는 일이다. 지옥 같은 운명에 갇힌 사나이, 아무리 발버둥쳐도 빠져나가지 못하는 무간지옥에서 허우적거리는 그 고뇌의 주인공이 바로 더그다(이 영화의 제작자는 <디파티드>의 제작자 그레이엄 킹이다). 한편 더그 일행이 마침내 큰 곤경에 처하고 더그가 마지막으로 애인 클레어를 만나러 가는 장면에서는 배우와 대사가 다를 뿐 <히트>의 저 유명한 장면이 반복된다.
그런데 신기한 점이 한 가지 있다. 이 영화가 그렇게나 닳아빠진 이야기를 열심히 반복하고 있을 때 얼마간은 묘한 재미도 함께 동반한다는 점이다. 갱스터무비의 은행강도란 그가 악한가 선한가로 나눠지는 것이 아니라 매력적인가 그렇지 않은가로 나눠지는 것인데, <타운>의 은행강도 더그는 호감이 가며 매력적이다. 그러니까 <타운>을 두고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이름을 거론하는 호사가의 말은 믿을 것이 못되어도 이 영화에서 어딘가 갱스터 장르에 관한 무식할 정도의 환호와 진심과 뚝심이 느껴지는 것은 사실이다. 구태여 베끼려고 해서 베낀 것이 아니라 최고의 것들을 상정하고 기획하고 쫓아가려다 보니 결국 베끼고 만 실패작의 느낌. 만약 이 영화에 호의를 느낀다면 역설적으로 그 열성이 낳은 부족함에 대한 호의일 것이다. <타운>은 영화적으로 창의적이지 않지만 장르적으로는 도취적인 영화다. 매력이라면 그 점이다.
그러므로 갱스터무비 장르를 신봉하는 사람들에게는 즐거운 복습의 시간이 될 수도 있다. 미국에서는 유명 소설가 스티븐 킹이 그중 한명이었던 모양이다. 그는 남들보다 특별히 이 영화가 더 재미있었던 것 같은데 미국의 영화 주간지 <엔터테인먼트 위클리>에 뽑은 2010년 올해의 영화로 그는 1위 <렛미인>과 3위 <인셉션> 사이에 2위 <타운>을 올렸다. 잘 알려져 있지만 그의 베스트는 늘 제맘대로다.
Tip/ 교도소에 갇힌 더그의 아버지로 크리스 쿠퍼, 더그의 아버지를 그렇게 만든 장본인인 찰스타운의 무서운 대부로는 얼마 전 운명을 달리 한 피트 포스틀스웨이트가 출연한다. 두 배우는 조연배우가 작은 역으로 어떻게 장면을 훔쳐낼 수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