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케이션 촬영을 제외하고는 호주를 좀처럼 떠나지 않는다는 피터 위어 감독이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뉴욕을 찾았다. 링컨센터 필름소사이어티가 1월6일부터 9일까지 개최한 위어 감독 회고전 <여행자: 피터 위어의 작품들>(Voyager: The Films of Peter Weir) 덕분이다. 이번 회고전에서는 2003년작 <마스터 앤드 커맨더: 위대한 정복자> 이후 오랜만에 연출한 새 작품 <웨이 백>을 비롯해 육체적으로나 감성적, 정신적 ‘여정’을 담은 위어의 여러 작품들이 소개됐다. 상영작 중에는 대형 스크린에서 보기 힘든 위어 감독의 초기작 <파리의 자동차>(1974)와 <행잉 록에서의 소풍>(1975)을 비롯해 <공포탈출>(1993), <갈리폴리>(1981), <라스트 웨이브>(1977), <모스키토 코스트>(1986), <플러머>(1979), <위트니스>(1985), <가장 위험한 해>(1982) 등이 포함됐다.
아카데미 감독상 후보에 4번이나 올랐던 연출가지만 위어 감독은 관객과의 질의응답에서 “작품과 작품 사이에 공백기간이 왜 그렇게 긴가?”라는 질문에 그간 세 작품이 기획 중 무산됐다며 작품 제작의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1월21일 개봉하는 <웨이 백> 역시 할리우드가 좋아할 만한 시장성있는 작품은 아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작품은 1940년 시베리아 강제수용소에서 탈출한 죄수들의 이야기다. <웨이 백>에는 주인공 야누스 역의 짐 스터지스를 비롯해 카리스마 넘치는 미국인 포로 역의 에드 해리스, 살인을 서슴지 않는 강도 발카 역의 콜린 파렐, 부모를 전쟁으로 잃은 이레나 역의 시얼샤 로넌 등 연기파 배우들이 대거 출연한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는 ‘인간승리’를 자축하는 거대한 장면들은 찾을 수 없다. 배우들도 연기를 한다기보다는 실제 상황을 겪는 진짜 인간을 보여주는 듯하다.
슬라보미르 라비츠의 책 <롱 워크>를 바탕으로 한 <웨이 백>을 제작하기 위해 위어 감독은 책에서 서술한 시베리아에서부터 인도까지의 대장정에 실제로 성공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인터뷰와 리서치를 했다고 한다. 이같은 조사를 통해 걷는 방법이나 도보 중 모기를 퇴치하기 위해 현지인들이 사용하는 약초를 사용하는 등 실제 겪었던 에피소드를 극중에 삽입하기도 했다고. 현재 많은 영화에서 사용되는 CGI에 대해 위어 감독은 “CGI에 관심이 없는 것은 아니나 연극에서 볼 수 없는 영화만의 장점은 클로즈업과 광활한 대자연”이라며 “내가 영화를 사랑하게 된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라고 말했다. 한편 링컨센터 필름소사이어티는 <웨이 백> 특별 상영 뒤 관객과의 질의응답 시간 외에도 ‘이브닝 위드 피터 위어’라는 대화 프로그램을 따로 마련해 위어 감독의 커리어 전반에 걸친 심도있는 자리를 마련했다.
중간에 세 작품이나 무산됐지요
피터 위어 감독
GODLIS/Film Society Lincoln Center
-오랜만의 신작이다. 그간 무슨 일이 있었나. =(웃음) 그동안 쉰 것은 아니다. 꾸준히 집필과 작업을 해왔다. 사실 프로젝트 세개가 무산되는 바람에 시간이 많이 지났다. 그러다가 슬라보미르 라비츠의 <롱 워크>를 알게 됐고, 과연 이 책에 서술된 시베리아에서부터 인도까지의 대탈출이 가능한지에 호기심을 갖게 됐다. 원래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역경을 이겨낸 생존자들의 이야기를 좋아한다. 누구나 포기하기는 쉽지 않은가, 하지만 생존자들을 끝까지 지탱해주는 인간 내면에 잠재한 무엇인가를 보여주고 싶었다.
-이번 영화도 제작이 수월한 내용은 아닌 것 같다. =세 작품이 무산된 뒤라서 우선 1년간 디벨로프먼트 기간을 가진 뒤 오픈마켓에 내놓았다. 제작을 원하는 곳이 세 회사나 나왔다. 문제는 배급이었다. 요즘 스튜디오들은 저예산 독립영화 부서를 없애고 있는 중이었기 때문이다.
-배우들의 연기력을 끌어내는 능력이 있는 것 같다. 특별한 방법이라도 있나. =난 연극 무대 출신이 아니다. 그래서 배우가 특별히 원하지 않는 한 리허설은 없다. 내가 배우들을 위해서 해주는 것은 작품에 몰입할 수 있도록 로케이션, 의상, 조명, 손톱에 낀 먼지까지 세세히 준비하는 것이다. 모든 준비가 완벽하면 연기에 몰입하지 못하는 배우는 거의 없다고 생각한다. (웃음) <마스터 앤드 커맨더: 위대한 정복자>에서도 실제 대포 소리를 큰 스피커를 통해 최대 음량으로 틀어놓고 촬영했다. 그러니 배우들이 연기를 하고 있다는 것을 잊는 것 같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