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빈방 집에 녹색으로 뜨개가 된 실내화가 하나 있다. 한쌍 더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했나보다. 하얀색으로 뜨개질된 슬리퍼가 생긴 꿈을 꾸고 많이 좋아하다가 깼다.
4월. 자술서 글과 작업을 보며 다정한 사람인 줄 알았으나 그 호감의 자장 밖에 있는 사람이나 시간엔 어찌 그리 냉정한지…. 그렇다면 그 다정함은 연기? 아니, 자기애가 강한 사람이 스스로의 어느 시절을 안쓰러워하는 마음이, 사람들의 수요와 궁합이 맞은 거지.
5월. 이렇게는 계속할 수 없어요 궁여지책의 작업만이 줄 수 있는 아름다움. 한계 때문에 우회하다 보니 나오는 의외의 샛길. 그걸 카피하기 어려운 이유는, 말로 표현 못할 영험함 때문이 아니라 옵션이 없었음을 인지한 사람들의 묘한 문화적 할인 등의 시너지 때문.
6월. 홍어의 맛 “뭐랄까, 생선계의 f(x)랄까요. 그 맛을 설명하려면 책을 한권 쓰고 부록을 한번 낸 뒤 월간잡지에 소개글을 쓰고 그 고료로 다시 홍어집에 가서 한입 두입 츄우 츄츄츄츄츄츄우.”
7월. 웃어요 이 웃음에는 조롱도 냉소도 없지만 이해받지 못한 외로움의 무게가 부드럽게 실려 있다. 웃음은 사랑에 대한 애도가 이루어진 뒤 인물의 내면에서 자연발생한 것이 아니라 일시적으로 고안되어 애도를 지연시켰을 뿐.-김성중 단편 <개그맨>에 대한 강지희 평론가의 해설 중에서
8월. 올해 한국영화의 경향이 심약한 개인에 끼친 영향 엄청 폭력적인 꿈을 꾸다 이른 시간 기상. 시대미상 도로를 사이드카로 질주하다 일본군 트럭과 충돌, 한 병사의 목을 비틀고 자전거로 도주, 그러다 순사들에 쫓겨 빙판 착지. 뜬금없이 러시아군까지 합세해 서로의 목을 따는 피의 살육전, 내 무기는 옷걸이로 만든 꼬챙이.
10월. 오지랖의 이해와 실제 아는 이들의 작업을 지지하고 전파할 때 더 흥이 난다. 그다지 이타적이거나 선의로 뭉친 사람도 아닌데 종종 돋는 이런 에너지의 동기는? 어쩌면 이 품앗이가 실제 내 경력과 직결되지 않는 데서 나오는 호기 아닐까. 즉 노동이 아닌 여가선용의 쾌락. 어떤 프로젝트의 훈수꾼 위치가 유리한 이유, 그리고 훈수꾼이 실제 담당자 앞에서 겸손해야 할 이유. 자기 경력과 직결되지 않는 오지랖질에서 대의명분을 내세울 때 우리는 수고롭다기보다는 취미와 과업의 간격에서 재미보고 있는 거니까. 실제로 종일 그 과업에 임하는 이들은 쾌감은 적고 리스크는 크다.
11월. 니나 내나 사려 깊지 않은 리뷰를 스스로 감당 못할 앎과 어휘를 동원해 날리곤 하는 이들은 실은 그 장르를 누리려는 게 아니라 그냥 해당 예술가를 괴롭혀서 자신의 답보 상태를 극복하고픈 것 아닐까.
12월. 소득신고 창의력에 대한 대가가 아니라 자신이 보유한 창의력에 대한 근거로서 그간의 수입 증빙이 필요한 시절에 대한 새삼스러운 각성. 독립영화도 마찬가지.
1월. 진작부터 이런 얘기들이 하고 싶었다 건대 후문 백반집인 황소식당에선 기본 반찬으로 메추리알과 생선구이를 깔아주는데 그중 해물된장엔 항상 대여섯개의 오다미가 들어 있어서 오도독 씹는 느낌이 좋다. 수저도 깔끔하게 종이포장해 내온다. 상수역 근처 상수동카페에는 신발을 벗고 올라갈 수 있는 다다미 2장만한 공간이 있는데 거기 책꽂이에 기대어 한 소큼 잠을 청하면 머리가 개운하다. 진한 초코 반죽 사이로 무화과육이 씹히는 브라우니가 별미. 한성대입구역에서 돈암동 방향으로 가다보면 골목 안쪽에 송림원이라고 조그만 중식당이 있다. 이 집의 특기는 ‘짜장면’과 푸짐한 오향장육. 몇 안되는 식탁 주위를 대단한 맛집 블로거들이 아닌 그저 동네 중고생들이 차지하고 자장면을 흡입하는 모습은, 뭐랄까 염세에 빠졌던 신학생이 천진한 모녀에게 괜한 설을 풀다 되레 깨달음을 얻는 체호프 단편의 한 장면 같다. 농담이다. 그냥 무슨 이유에서인지 모든 게 제자리로 돌아온 것 같아 안심되는 풍경이란 얘기다. ‘사슬의 양쪽 끝. 한쪽 끝을 건드리자 다른 한쪽 끝이 떨리는.’
이제는 문을 닫은 식당들도 얘기하고 싶다. 신설동 대광고등학교에서 보문쪽으로 올라가는 왼쪽 길에는 간판이 기억나지 않는 작은 식당이 있었다. 전주에서 먹는 것과 비슷한 급의 콩나물해장국을 맛볼 수 있었는데 다른 메뉴인 제육볶음도 꽤 넉넉히 주시던 기억. 외대 앞에서 회기로 가는 길 왼편 아파트 단지 초입의 상가에는 주인 혼자 운영하는 사천탕면집이 하나 있었다. 이미 완성된 맛이라기보다는 주인도 손님도 각자의 과도기를 조용히 응원하며 언젠가 일품이 되길 기다리는 느낌의 면식. 어느 날 가보니 간판이 내려져 있었다. 상왕십리에서 청계천 내려가는 길에 있던 한층짜리 돼지갈빗집. 동네 명소 특유의 남다른 소스맛에 부추, 간, 천엽 등의 서비스가 푸짐했지만 위생은 좀 불량했다. 한번은 오랜만에 외식을 하는데 새앙쥐 한 마리가 손님들 사이를 누볐던 황당한 기억. 그걸 냉큼 손으로 잡고는 무안한 마음에 괜스레 걸지게 웃던 주인 아주머니. 지금은 해당 지역 절반이 철거되어 재개발을 기다리는 중이다. 인걸은 의구하되 매식의 산천은 회전이 잦다.
한편, 무상급식이 화제다. 내 영화들이 무상급식되는 풍경을 생각해본다. 참 좋다. 보조금이 필요하겠다.
영화보다 중요한 일에 종사하고 있는 분들을 생각해본다. 가령 소방공무원들, 노인들을 상대로 대소변을 받아내고 속옷과 시트를 갈아주는 분들, 화상 전문 클리닉을 택한 의사들, 많이 알려지지 않은 나라의 문화와 역사를 번역해 소개하는 분들, 보육 노동자들, 통기타를 만드는 분들, 시베리아에 집을 짓는 분들, 상하수도를 신중하게 관리하는 분들, 노조를 조직하는 분들, 전철을 몰면서 매 구간 플랫폼을 살피며 문을 개폐하고 앞차와 뒤차의 간격을 조절하는 분들, 좋은 가락을 악보에 옮기는 사람들, 염전에서 일하는 분들, 백반집의 주방을 살뜰히 관리하는 분들.
각 직업의 대표들을 모아 이웃에 기여한 순으로 줄을 세우면 영화인의 대표는 어디쯤 서게 될까. 현재 직업의 종류는 3만여종쯤 된다 하니 충무로 대한극장 앞에서부터 1m 간격으로 세우기 시작하면 수원 가기 전쯤에 열이 끝날 텐데(그렇다면 의왕쯤에는 성공학 강사나 군수업자들이 서 있겠다). 영화감독과 제작자와 편집자와 배급업자와 홍보전문가와 촬영감독과 색보정기사와 녹음기사는 한 무리가 되어 인덕원쯤을 헤매려나, 아니면 그중에서도 어떤 이들은 군포쯤에, 어떤 직군은 사당쯤에 서 있으려나(영사기사, 편집자, 동시녹음기사, 몇몇 시나리오작가분들은 총신대입구쯤에 서 계실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자학의 멘트도 믿는 구석이 있으니 뱉을 수 있다. 침몰하는 배의 선원 중 그래도 정신승리의 기회는 부여받은 우리. 대열 제일 앞쪽의 시민들도 가끔은 영화를 보거나 잡지를 뒤적일 테니까. 그분들이 남산 한옥마을이나 명동쯤에서 우리가 만든 이야기를 화제로 삼거나 다음 약속의 매개로 삼거나, 가끔 정말 아주 가끔이지만 공명하는 사연이 담긴 이미지들을 보며 문득 좋은 한숨들을 쉴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