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당황스러웠다. 예술영화전용관 하이퍼텍나다(이하 나다)가 개관한 지 10주년을 맞아 잔치판이라도 벌어질 줄 알았다. 그런데 인터뷰가 시작되자마자 나다를 후원하고 있는 동숭아트센터의 김옥랑 대표와 극장을 운영하고 있는 영화사 진진의 김난숙 대표가 얼마 전 나다를 정리하려고 했다고 고백한다. ‘하이퍼텍나다’하면 대학로 문화의 최정점에 위치한 공간이라는 인상 때문이었을까. 단 한번도 나다가 없어질 거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 두 대표의 고백을 들었을 때 혼란스러웠다. 하이퍼텍나다가 개관한 2000년부터 인연을 맺은 김옥랑, 김난숙 대표를 동숭아트센터에서 만나 ‘하이퍼텍나다의 10주년’에 관한 소회를 들었다.
-하이퍼텍나다가 올해로 10주년이다. =김옥랑 지난 10년 동안 힘들게 여기까지 올라왔는데, 앞으로 나갈 일을 생각하면 막막한 기분이다. 그만큼 힘들다는 거다. =김난숙 사실 얼마 전 극장 운영이 중단될 뻔했다. 김옥랑 대표께서 ‘10년 동안 하이퍼텍나다만의 독특한 지점을 만들지 못했다’, ‘하이퍼텍나다 말고도 다른 예술영화관이 많은데, 이들과 똑같은 방식으로 운영하는 건 아닌 것 같다’고 하셨다. 동숭아트센터의 후원이 없으면 운영될 수 없는 극장이기에 정리하는 것까지 얘기가 끝났다. 어느 날 밤 10시에 ‘다시 해보라’는 전화가 왔다.
-다시 해보라고 한 이유는 뭔가. =김옥랑 동숭아트센터에서 추진하는 문화사업을 전부 김옥랑이 하라는 법이 없잖나. 동숭아트센터 영상사업부의 팀장이었던 김난숙 대표에게 처음부터 나다를 맡긴 것도 그래서다. 사실 문화 공간은 운영하기가 힘들다. 남들보다 한수 앞을 내다보고 일반인을 가이드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비전이 있어야 하는데, 김난숙 대표에게 ‘비전이 있냐’고 물어봤지. ‘없다’고 하더라. 정리하기로 결정하고 나서 밤에 한참을 고민했다. 과연 끝까지 유지하는 게 의미가 있는 건가, 하이퍼텍나다는 쉽게 문을 닫으면 안되는 공간이지 않나. 그래서 전화를 걸었다. 열심히 해라, 단 2년이라는 기한을 주겠다. 지금부터 모든 걸 본인이 책임지고 운영해야지.
-예전과 달리 지금의 젊은 관객은 예술영화에 관심이 없는 게 사실이다. =김옥랑 <씨네21>도 마찬가지지만 때로는 우리가 먼저 이슈를 만들 필요가 있다. 최근 20년 가까이 된 동숭아트센터 건물을 리모델링해 ‘꼭두박물관’을 만든 것도 그래서다. 엄마들이 아이들의 손을 잡고 와서 꼭두 문화체험을 하고, 전시장을 둘러보고, 함께 식사까지 하고 집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했다. 하이퍼텍나다 역시 다른 식의 접근이 필요하다. ‘우리 영화 트니까 너희들 이거 보러와’ 하는 시대는 끝났다.
-그 점에서 강구하고 있는 대안은 뭔가. =김난숙 그걸 지금부터 공부하고, 고민해야 한다. 분명한 건 현재의 젊은 관객은 이전처럼 인문학적으로 접근하는 게 어렵다는 것이다.
-나다에 대한 인상은 늘 새로움이었다. 10년 전 나다를 처음 찾았을 때 기억이 난다. 좌석마다 문화예술인들의 이름이 달려 있는 것하며, 상영이 시작되면 커튼이 상영관 오른쪽에 있는 커다란 창을 가리면서 점점 어두워지는 건 나다에서만 볼 수 있는 풍경이다. =김난숙 원래 상영관이 있는 공간이 커피숍이었다. 극장으로 리모델링하는 과정에서 가장 고민했던 건 방음이었다. 다른 극장과 달리 외벽이 유리잖아. 그래도 당시 일반 관객은 ‘획기적’이라는 반응이 대다수였다. 그게 김옥랑 대표님의 공간 연출이지만 실무자인 내게는 여전히 방음이 중요하다. (웃음) =김옥랑 이게 김난숙 대표와 나의 차이점이다. 실무자다보니 너무 현실적이고 확실한 것만 신경 쓴다. 문화와 관련한 일을 하는 사람은 때때로 ‘문화’라는 허허벌판에서 모험할 수 있는 긍정적인 마인드가 있어야 한다.
-지난 10년 동안 하이퍼텍나다에서 상영한 영화 중 가장 좋아하는 작품은 뭔가. =김옥랑 모흐센 마흐말바프 감독의 <칸다하르>. 영화의 첫 장면, 하늘에서 다리가 잘린 사람들의 상반신이 낙하산을 타고 내려오는데, 그 풍경이 너무 절절하더라. =김난숙 에드워드 양 감독의 <하나 그리고 둘>. 아이의 눈을 통해 인생을 이야기하는 게 너무 좋았다. 12월23일부터 내년 1월12일까지 열리는 ‘나다의 마지막 프로포즈’의 한 섹션인 ‘나다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영화’에서 김혜리 기자가 선정한 영화이기도 하다.
-대화를 나누다보니 두분은 참 안 맞는 것 같으면서도 잘 어울린다. =김옥랑 판을 벌이는 사람과 현실적으로 일을 처리해야 하는 사람이 같을 순 없다. 그만큼 다르니까 지금까지 함께 올 수 있었던 게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우린, 잘 어울린다.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