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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현진의 미드앤더시티] 하와이가 이 드라마를 응원합니다?!
안현진(LA 통신원) 2010-12-24

평화롭고 즐거운 하와이를 배경으로 한 특별수사팀 이야기 <하와이 파이브-오>

본토와 분리되어 육로로는 닿을 수 없는 섬은, 내게는 예측 불가능의 공간이다. 접근성이 제한되어 있다는 점에서 우선 만만하지 않고, 바다의 상황에 따라 기후가 예민하게 변화했던 상황을 몇번 경험한 적이 있다. 배편이 끊어지면 ‘발이 묶이는’ 고립과 단절의 이미지도 이 연장선에 놓인다. 그래서인지 나는 섬보다는 육지로 여행을 많이 다녔다. 내가 가본 섬은 일본을 제외하면 제주도가 다인데, 하와이, 홍콩, 마카오 등 관광지로 인기가 많은 섬들이 아무리 화려한 치장으로 손짓을 해도, 그 화사함 뒤에 배가 올 때까지는 떠날 수 없다는 구속이 도사린 듯해서 발을 디디는 순간부터 불안을 떨칠 수 없을 것 같았다. 비행기가 추락한 뒤 아무도 떠날 수 없었던 <로스트>의 미궁 같던 섬을 떠올려보라.

추억의 외화 <5-0수사대>의 전통을 잇다

한데 <로스트>에서 마음대로 떠날 수 없었던 위험한 그 섬이 <하와이 파이브-오>에서는 평화롭고 즐거운 리조트의 면모를 과시하기 시작했다. 얼마 전 하와이로 신혼여행을 다녀온 이라면 꽃으로 엮은 튼실한 목걸이와 훌라댄스가 행복하게 떠오를 하와이는, 태평양 한가운데 크고 작은 100여개의 섬들이 모여 이룬 제도(諸島)다. 미합중국을 구성하는 50개 연방 주 중에서 가장 늦게 합류한 젊은 주로 미국령이되 역사, 문화, 지리 등 여러 가지 면에서 독립적인 특성을 지녔다. 10월21일 <CBS>에서 첫 방영을 시작해 이제 막 중간 반환점을 지난 수사물 <하와이 파이브-오> 역시 이러한 미국스럽지 않은 정취를 십분 활용하는 드라마다. 모든 로케이션이 하와이 현지에서 진행되는 화려한 제작여건 덕분에 <로스트>가 보여준 음흉한 섬은 간데없고, 하와이 관광청에서 만든 홍보영상을 보는 듯 꾸며진 아름다움이 돋보인다. 비취빛 바다의 수평선에는 서핑보드 위의 남녀 한쌍이 지나고, 바나나잎으로 감싼 통돼지구이는 밤하늘의 별빛을 받으며 익어간다. 하와이어로 우렁차게 소리를 지르는 원주민의 목소리는 그 크기만큼이나 매혹적으로 귀를 사로잡는다. “독도는 우리 땅”을 노래하려면 “하와이는 미국 땅”부터 불러야 하던데, 미국 땅이라면 마땅히 있어야 할 맥도널드 간판 대신에 야자수와 부서지는 파도가 화면을 채운다.

<하와이 파이브-오>는 1968년부터 1980년까지 모두 12개 시즌이 방영된 장수 프로그램 <5-0수사대>(라고 쓰고 ‘오공수사대’라고 읽는다)의 속편 격인 TV시리즈다. 오리지널 TV시리즈의 첫 방영일(1968년 9월20일)로부터 무려 46년하고도 한달 뒤에 리메이크 겸 속편이 방영된 셈이니, 2010년 가을 리메이크가 방영되기로 결정됐을 때 이 TV시리즈에 쏟아졌던 관심은 이해하고도 남는다. 리메이크의 주인공은 자신이 쫓던 테러리스트에 아버지를 잃은 해군 소령 스티브 맥가렛(알렉스 오로플린)으로, 장례식을 위해 호놀룰루로 돌아온 그는, 부친과의 특별한 인연을 암시하는 주지사의 제안으로 하와이에 남아 ‘파이브-오’라는 특별수사팀을 꾸리게 된다.

태평양의 중심이라는 국제적 요지에 위치한 하와이의 안보에 대한 주지사의 우려로 만들어진 이 특별한 팀은 해군 사관학교를 졸업하고 해군 정보부에서 복무한 뒤 해군 특수부대까지 거친 인재 스티브를 중심으로 뉴저지에서 전근 온 형사 대니 윌리엄스(스콧 칸), 부패사건에 연루되어 경찰제복을 벗어야 했던 친 호 켈리(대니얼 대 김), 그리고 친의 사촌동생이자 호놀룰루 경찰학교를 갓 졸업한 코노 칼라카와(그레이스 박)까지 4명으로 이루어졌다. 주지사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기는 하지만 사실 이 팀이 특별한 목적을 수행한다기보다는 주지사가 맡으라는 사건에 그때그때 배치되기 때문에 외교대사의 경호부터, 지역 유지의 납치, 테러 위협 등 다양한 종류의 사건이 팀을 거쳐간다.

한국에서도 ‘추억의 외화’로 주저없이 꼽히는 <5-0수사대>의 적자(嫡子)임을 인정받으려는 듯, 2010년 TV시리즈는 곳곳에서 1968년 TV시리즈와의 연결점을 드러낸다. 시청자가 가장 먼저 발견할 연결점은 바로 오프닝 주제곡인데, 오리지널의 주제곡보다 길이만 30초 정도 짧을 뿐 오리지널 주제곡의 연주자들까지 불러모아 녹음한 이 주제곡만으로도 <하와이 파이브-오>는 그 혈통을 증명한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5-0수사대>를 보고 자란 세대는 아니다. 미국에서 1968년부터 12년 동안 방영했다고 하는데 나는 시리즈가 완전히 마무리되고 이듬해인 1981년에 태어났다. 인터넷을 뒤져보니 한국에서는 KBS1에서 1971년 매주 화요일 저녁 8시에 <5-0수사대>를 편성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러니까 한국에서 <5-0수사대>가 인기리에 방영될 때도 나는 세상에 없었다는 것이다. 신기한 사실은 <5-0수사대>는 몰라도 전통적인 행진곡풍의 오프닝 테마곡은 이미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밴드의 행진곡이나 축제의 응원곡으로 많이 쓰여서일까, 드럼소리와 함께 “빰빰빰빰~빠암 빰~”으로 시작하는 이 노래는 언제 어디서라도 손나발을 만들어 부를 수 있을 정도다.

“똑똑한 스크립트, 잘 빠진 연출”

<5-0수사대>의 유산은 스티브와 대니(대노라는 별명으로 불림)의 각별한 관계에서도 드러난다. ‘배트맨과 로빈’보다는 ‘스타스키와 허치’에 가까운 이 짝패는 첫회부터 복장, 식성, 수사방식 등 하나하나 맞지 않아 말다툼으로 일관했다. 한데 첫 단추가 잘못 끼워졌는데도 에피소드가 거듭할수록 둘은 썩 괜찮은 우정을 쌓기 시작한다. “체포해, 대노”(Book’em, Danno)라는 스티브의 대사는, 오리지널 시리즈에서는 에피소드의 문을 닫는 마지막 대사였던 것으로 유명한데 리메이크에서도 종종 등장한다. 물론 리메이크에서는 모든 에피소드가 ‘체포해, 대노’로 끝나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내가 ‘체포해, 대노’라고 하는 건 애정의 표시야”(스티브)라든지 “괜찮다면, 이번엔 제가 체포하고 싶습니다”(코노) 등의 대사는 <하와이 파이브-오>가 <5-0수사대>의 양분에서 자라났음을 알려준다. 이 모든 소소한 재미가 <5-0수사대>를 모르는 사람에게는 그저 스티브와 대니의 알콩달콩한 파트너십으로만 보이니(물론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좋지만) 조금은 아쉽다. 한 가지 더 아쉬운 점이 있다면 대니얼 대 김이 연기하는 친 호 켈리가 어떤 연유로 부패경찰의 낙인이 찍혔는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에피소드에서 다뤄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한국계 배우가 두명이나 메인 캐릭터로 등장하는 건 분명 반가운 일이지만, 그들의 캐릭터들도 좀더 비중있게 그려지기를 바라본다.

<하와이 파이브-오>는 하와이라는 공간적 배경을 노골적이리만큼 반복적으로 시청자에게 주입시키기 때문에 공간과 이야기가 어떻게 향응하는지를 뜯어보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사실 <하와이 파이브-오>가 리메이크된다는 소식에 가장 큰 환호를 보낸 사람은 하와이 주민들이라고 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관광객을 중심으로 대부분의 경제가 돌아가는 곳이니 방송·영화 등의 엔테테인먼트 프로덕션이 들어오면 주 경제에 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2010년 9월, 와이키키의 한 해변에서 무료로 열렸던 파일럿 시사회 뒤, 현지 매체인 <호놀룰루 스타 애드버타이저>는 드라마의 내용에 대해서는 “똑똑한 스크립트, 잘 빠진 연출, <5-0수사대>의 향수만으로 롱런을 점치기엔 불안”이라고 예의상 언급하는 수준에 멈추었으나, 앞으로 <하와이 파이브-오>가 지역에 가져다줄 경제성장에 대해서는 <로스트>의 실적과 비교하며 큰 기대를 내비쳤다. <로스트>가 하와이 주에 벌어준 수입이 4억달러에 이르며, 현지 비용과 인건비만해도 200만달러였라고 하니, 시즌당 22회 에피소드로 구성될 <하와이 파이브-오>의 롱런 여부가 궁금한 것도 당연한 심사였을 거다.

그나저나 대니얼 대 김은 <로스트>가 끝나자마자 또 <하와이 파이브-오>라니 개인적으로는 너무하다 싶다. 연이은 캐스팅으로 증명된 인기가 배우에게는 좋을지 몰라도, 섬에 고립되어 떠날 수 없었던 <로스트>의 징크스라도 걸린 걸까. 역시 섬은 음흉하다고 할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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