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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도의 긴장감, 폭풍전야의 기운이
남다은(영화평론가) 사진 백종헌 2010-12-16

두 번째 방문 _ 핑크돌즈 쇼케이스 백스테이지

핑크돌즈 멤버들이 신곡 발표를 앞두고 쇼케이스 직전에 모여 마음을 다지는 장면을 촬영 중이다. 이 장면 이후로, 영화의 전반적인 기운이 급변한다.

며칠 뒤 다시 찾아간 촬영현장은 세종아트홀 혼. 핑크돌즈 멤버들이 신곡 발표를 앞두고 쇼케이스 직전에 모여 마음을 다지는 장면을 촬영 중이다. 말하자면 이 장면 이후로, 핑크돌즈의 상황뿐만 아니라 영화의 전반적인 기운이 급변하기 때문에 영화 전체 균형상 일종의 중심추 역할을 하는 장면이다. 큰언니 은주가 나머지 멤버들을 다독이며 챙기고 동생들은 처음으로 은주의 말을 경청한다. 짧은 시간이지만 조명, 포그, 인물들의 움직임, 대사, 시선의 리듬이 잘 맞아야 하고, 비좁은 공간 안에 모인 네 사람의 대사와 리액션을 가까이에서 담아 극도의 긴장감을 쌓아올려야 하기 때문에, 아무래도 연기력이 부각될 수밖에 없다. 극 속의 은주처럼 실제로도 나머지 배우들의 연기를 챙기는 여유로운 은정에 비해, 신인배우들의 연기는 어딘지 서툰데 귀엽다. 이 병아리 같은 배우들이 이후 그로테스크하게 망가져가는 과정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소화해냈을지, 백지에 어떻게 한순간 검은색이 칠해질지 호기심이 생긴다.

한 대사를 여러 버전으로 찍어보고, 김선이 배우 사이를 분주하게 오가며 직접 연기 시범을 해보이고 나서, 두 감독이 모니터 앞에 앉아 의견을 나눈다. 확실히 테이크가 갈수록 이들의 연기도 자연스러워진다. 하지만 김곡이 엄지손가락을 들어올리면 김선은 한번 더 가자고 요구하고, 김곡이 고개를 끄덕이면 김선은 입을 삐죽거린다. 이 어리고 아리따운 배우들과 곡사는 어떤 방식으로 소통하고 있을까. “배우와의 호흡은 다른 파트와의 호흡과 언제나 상관적이에요. 배우도 스탭이죠. 다만 몸이 도구일 뿐이고요.” 맞는 말이지만, 왠지 이 냉정한 소신을 배우들이 듣는다면 상처를 입을 것 같다. “감독님들이 연기에 대해 특정한 주문을 하지는 않는 편이에요. 모니터도 보여주지 않고요. 그래서 내 연기가 어떤 방향으로 가고 있는 건지 확인할 수 없어서 많이 불안해요.” 분장실에서 만난 함은정은 무심한 감독들에 대한 여배우로서의 서운함을 언뜻 내비치면서도, 곡사와의 작업에 대한 주변 영화인들의 기대를 즐기는 듯 보였다.

아이돌에 대한 이야기니만큼, 쇼케이스 현장에 영화의 상당부분이 할애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화이트>에서 드라마만큼 중요한 건 춤과 노래다. 윤미희 이사와 유영석 PD는 그 쇼케이스 현장만큼은 아마도 <미녀는 괴로워>보다 잘 나왔을 거라고 장담한다. “일단은 가장 트렌디한 음악과 춤을 보여줘야 해서, 지금 가장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작곡가 신사동 호랑이와 안무가 하우신씨를 제일 먼저 섭외했어요. 여배우 네명의 무대의상만 해도 30벌씩 총 720벌 정도가 되니까, 저예산 블록버스터죠. (웃음) 함은정이나 신지 역을 맡은 메이다니는 기본적으로 춤을 잘 추지만, 세연이나 아라는 거의 몸치나 다름없어서 연기연습보다 춤연습이 시급할 정도였죠.” 말이 춤이지, 콘티에 그려진 이들의 안무는 사랑스러운 율동이 아니라, 자동화된 고난이도의 몸 꺾기, 그중에서도 목 돌리기로, “목을 옥죄는 것 같은 느낌”에 포인트를 주기 위함이라는데, 상상만으로도 잔혹하다. 의지를 벗어난 육체. 게다가 이 영화에서는 귀신도 목을 꺾는다. 아이돌의 한이 이 끔찍한, 그러나 눈을 뗄 수 없는 죽음의 목 꺾기 스펙터클로 형상화되는 셈이다. 윤미희 이사의 말은 설득력이 있다. “10년 전 <여고괴담>에서 학교에 원한이 서렸다면, 이제는 무대에 대한 욕망에 원한이 서리는 거죠. 걸그룹을 지탱하는 환상과 시기, 그리고 이들의 상승과 몰락을 즐기는 자본과 대중의 정서는 이 시대의 호러에 더할 나위 없이 어울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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