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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 웃음으로 기억되리, 영원히
주성철 2010-12-07

레슬리 닐슨 Leslie Nielsen 1926-2010

‘총알 탄 사나이’라는 절묘한 별명으로 기억되는 사나이, 그리고 평생 흰머리로 살았을 것만 같은 웃긴 아저씨 레슬리 닐슨이 세상을 떴다. 1926년 캐나다에서 태어나 2차세계대전 중 공군으로 종군한 경험이 있는 그는 전쟁 이후 라디오 아나운서로 일을 시작해(목소리가 좋은 이유가 있었다) TV와 영화계로 진출했다. 외신에 따르면 지난 11월28일 그는 미국 플로리다주의 한 병원에서 폐렴 합병증으로 가족과 친지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평화롭게 숨을 거뒀다. 인터넷에는 추모의 글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영화비평가 로저 에버트는 고인의 명복을 빌며 레슬리 닐슨의 <벤허>(1959) 스크린 테스트 유튜브 영상을 링크해 올렸다. 로마시대의 의상을 걸치고 부리부리한 눈으로 또박또박 대사를 읊는 그 모습이 그저 신비롭게 다가온다. 그리고 <할리우드 리포터>에는 그와 수많은 영화를 함께했던 데이비드 주커 감독의 생생한 추모글도 올라와 있다. <에어플레인>(1980) 당시 그를 캐스팅한 뒷이야기부터 이른바 ZAZ사단(데이비드 주커와 제리 주커, 그리고 짐 에이브럼스)의 공동 연출이 아닌 이후 개인 연출 작품에서 그와 함께했던 얘기까지 소상하게 추억하고 있다.

사실 지금 우리가 기억하는 레슬리 닐슨은 당시 <에어플레인>과 <특급비밀>(1984) 같은 작품으로 신선한 바람을 일으켰던 ZAZ사단을 경유해서다. 그전까지 그는 주로 진지한 드라마 배우였다. <에어플레인> 당시 캐스팅 디렉터가 레슬리 닐슨을 추천했을 때도 데이비드 주커와 짐 에이브럼스는 <포세이돈 어드벤처>(1972)의 선장 정도로 그를 기억하고 있었다. 지금에 와서 <포세이돈 어드벤처>를 다시 보면 책임감 넘치는 그의 진지한 모습이 무척 생경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그들은 레슬리 닐슨을 만나 얘기를 나누고 시나리오를 함께 읽으며 그의 독특한 오프비트(offbeat) 스타일 개그에 흠뻑 빠져들었다.

레슬리 닐슨은 자기는 웃지 않으면서 남을 웃기는, 이른바 버스터 키튼 스타일의 대표적인 코미디언이었다. 데이비드 주커와 함께한 <총알 탄 사나이>(1988∼) 시리즈가 대표적이다. 사소한 일이건 큰일이건 뒷목을 자라목으로 만들며 뻣뻣하게 같은 강도로 깜짝 놀라는 표정, 황당한 순간마다 능청스럽게 카메라를 쳐다보는 그 얼떨떨한 모습, 그리고 그 나이대에 딱 알맞을 정도로만 액션을 구사하는 몸 개그도 발군이었다. <총알 탄 사나이>에서 야구 경기를 지속해야 하기에 심판으로 위장해 제멋대로 판정을 내리고, <총알 탄 사나이2>에서 영화 속 환경보호론자 박사를 가짜라고 착각한 나머지 엉덩이를 벗겨 이건 가짜 점이라면서 마구 때를 밀며 괴롭히며, 그외 이루 말할 수 없는 명장면들을 낳았다.

이후 레슬리 닐슨은 환갑이 넘은 나이에도 클린트 이스트우드, 숀 코너리, 잭 니콜슨 못지않게 당당한 단독 주연배우로 활동했다. 아니, 클린트 이스트우드나 숀 코너리도 그보다 3살 어리고 잭 니콜슨은 그보다 10살 이상 어리니 당시 그 나이로 할리우드 메이저영화의 주인공을 맡는 경우는 사실상 그가 거의 유일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리포제스트>(1990), <못 말리는 드라큐라>(1995), <스파이 하드>(1996), <미스터 마구>(1997), <롱풀리 어큐즈드>(1998) 등은 모두 국내에서 와이드 릴리즈 개봉을 한 영화들이었다. 2000년대 들어 그의 전성기는 끝났지만 데이비드 주커가 다시 <무서운 영화3>(2003)부터 이 시리즈의 메가폰을 이어받자 <무서운 영화4>(2006)까지 코믹한 대통령 역할로 출연했다. 이때가 이미 여든살의 나이였고 이후 <슈퍼히어로>(2008) 등 몇편의 영화에 더 출연했다. 그렇게 환갑이 다 돼서야 코미디언으로서의 새로운 전성기를 구가했던 백발의 노배우가 안타깝게 세상을 떴다. 그는 우리에게 언제나 ‘깜놀’한 얼굴의 총알 탄 사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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