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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회와 순환의 중간지점인 그 곳 <토일렛>

제목이 영화를 거의 설명하려 들지 않아 ‘불립문자’와 같은 오기가미 나오코의 영화들. <요시노 이발관>에서 아이들의 바가지머리는 이후 프랑스의 최신 유행이 되어 마을 안팎을 ‘순환’한다. <카모메 식당>은 담백한 솔푸드를 팔고, 때론 그냥 나눠주며 돈의 소유에 집착하지 않는다. <안경>은 산이 아닌 해변 민박집에서 사색하는 일종의 템플스테이다. <토일렛>에서 레이의 로봇장난감은 그가 모든 걸 바쳐 만들어 섬기는 동시에, 그를 지키는 불상과 다름없다. 이젠 눈치채야 한다. 그의 영화는 불교적이다.

연구실 직원 레이(알렉스 하우스)가 입는 옷은 연구실 흰 가운과 단 한 종류의 셔츠, 바지뿐이다. 단조로운 삶을 사는 그의 유일한 행복은, 로봇장난감을 조립해 방에 전시하는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가 세상을 떠난다. 갑자기 그와 함께 살게 되는 사람들은 은둔형 외톨이 형, 버릇없는 여동생, 그리고 엄마의 부름으로 일본에서 온 할머니(모타이 마사코)다. 할머니는 화장실에서 나올 때마다 의미불명의 한숨을 쉰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까닭에 친할머니인지조차 확인되지 않는 그녀에게 그 이유를 들을 순 없다. 레이는 화장실이 일본과 달라서일 거라는 힌트를 얻는다. 죽은 엄마와 산 남매 사이에서, 할머니는 남매의 삶이 변하는 계기가 된다. 엄마와 할머니의 연락과정은 생략돼 있어, 죽은 엄마가 저세상에서 할머니를 갑자기 보낸 것처럼 느끼게 한다. 그렇게 엄마의 마음은 할머니를 통해 전달되고, 이승과 저승은 마치 윤회처럼 이어진다. 할머니는 그 경계에 승려처럼 서 있다. 영어를 모르는 그녀가 남매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은 정확하게, 언어가 필요없는 ‘염화미소’의 경지다.

<토일렛>은 죽은 물질이 다시 생명이 되는, 윤회와 순환의 중간지점인 화장실을 바라본다. 영화가 시작하며 엄마는 땅에 묻힌다. 그 순간 땅으로 향해야 할 ‘토일렛’은 제목이 돼 나무 위로 떠오른다. 이는 화장실의 속성인 순환이 하늘에 속한 원리이며, 그 원리대로 죽음이 나무의 재료가 되어 새 생명으로 변한다는 것이다. 할머니는 이곳 화장실이 낯설어 순환이 잘 안되는 듯 답답한 한숨을 쉬지만, 그녀 자신도 그 윤회의 저쪽으로 들어갈 것임을 잘 알고 있다. 오기가미 나오코는 불교적 외양을 거의 드러내지 않은 채, 그 원리가 만인의 삶과 도처에 잠재된 방식을 줄곧 탐구해왔다. <토일렛>에서 그 잠재성은 더 깊어졌다. 하나의 주제에 계속 경주하는 것은, 그것이 평생 걸어가야 이해에 도달할 수 있는 대상인 까닭이다. 그는 자신의 영화처럼 구도의 길을 가는 감독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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